[로리더] 대한적십자사가 집집마다 적십자 회비 납부용 지로통지서를 보낼 수 있도록 ‘주소’와 세대주 ‘성명’을 제공하는 관련 법규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적십자사 지로통지서가 전국의 세대주에게 발송될 수 있었던 근거 규정인 적십자법 및 시행령이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첫 판단이다.

대한적십자사조직법(적십자법) 제8조 제1항, 제3항은 대한적십자사로 하여금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대해 적십자사의 회비 모금 등을 위해 필요한 자료의 제공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자료제공 요청을 받은 국가 등은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그 자료를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적십자법 제8조 제2항은 적십자사가 요청할 수 있는 자료의 범위를 대통령령에서 정하도록 위임하고, 적십자법 시행령 제2조 제1호는 그 자료의 범위에 세대주의 성명 및 주소를 포함시키고 있다.

적십자사는 2020년도 적십자회비 모금을 위해 행정안전부에 위 조항들을 근거로 전국의 만 25세 이상 만 75세 미만 세대주(20대 단독 세대주ㆍ고지 제외 요청자 제외)의 성명과 주소를 요청했다.

행정안전부장관은 2019년 10월 31일 적십자사에게 위 자료(성명, 주소)를 제공했다. 제공된 자료는 2019년 기준 전국의 세대주 총 1766만 2388건이다. 적십자사는 제공받은 자료를 바탕으로 1만원의 적십자회비 지로통지서를 발송했다.

지로통지서를 받은 A씨 등은 “적십자사는 회비모금을 위해 정보주체인 세대주의 동의 없이 세대주의 성명과 주소를 국가 등으로부터 제공받을 수 있으므로, 과잉금지원칙에 반해 청구인들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헌재)
헌법재판소(헌재)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지난 2월 23일 대한적십자사조직법 제8조 및 시행령의 ‘회비모금’ 부분 등에 관한 위헌확인 심판청구에 대해 재판관 7 대 2의 의견으로 기각 또는 각하했다.

헌재는 “적십자사조직법 자료제공조항 및 시행령 조항은 적십자 회비모금을 위해 국가 등이 보유하고 있는 자료를 적십자사에 제공하도록 하는 것으로서 궁극적으로는 적십자 사업의 원활한 운영에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헌재는 “우리나라는 제네바협약의 체약국으로서 정부가 적십자사의 활동을 지원해야 할 의무가 있는 점, 적십자사가 정부의 인도적 활동에 대한 보조적 역할을 수행하는 점, 특히 남북교류사업이나 혈액사업 등 다른 공익법인들이 수행하지 못하는 특수한 사업들을 수행하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와 같은 입법목적은 정당하다”며 “또한 이러한 정보를 적십자사에 제공하는 것은 입법목적 달성을 위한 적합한 수단”이라고 밝혔다.

헌재는 “자료제공조항과 시행령 조항을 종합하면 자료제공의 목적은 적십자회비 모금을 위한 것으로 한정되고, 제공되는 정보의 범위는 세대주의 성명과 주소로 한정된다. 이때 ‘주소’는 지로통지서 발송을 위해 필수적인 정보이며, ‘성명’은 사회생활 영역에서 노출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정보로서, 다른 위험스러운 정보에 접근하기 위한 식별자(識別子) 역할을 하거나, 다른 개인정보들과 결합함으로써 개인의 전체적ㆍ부분적 인격상을 추출해 내는데 사용되지 않는 한 그 자체로 언제나 엄격한 보호의 대상이 된다고 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헌재는 “한편, 적십자사는 ‘개인정보보호법’상 공공기관에 해당하므로, 적십자사는 개인정보처리자로서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해야 하며, 위반 시 과태료나 형사처벌에 처해질 수 있다. 또한 성명과 주소는 주민등록사항이므로, 적십자사가 주민등록전산정보자료를 이용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주민등록법과 같은 법 시행령을 준수해야 한다”며 “이를 종합하면 자료제공조항 및 시행령 조항은 청구인들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에 대한 제한을 최소화하고 있으며 법익의 균형성도 갖추었다”고 봤다.

헌재는 “따라서 자료제공조항 및 시행령 조항이 과잉금지원칙에 반해 청구인들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며 합헌 결정했다.

◆ 이선애 재판관ㆍ문형배 재판관의 ‘성명’에 관한 반대의견

이선애ㆍ문형배 재판관은 “시행령 조항은 적십자사가 세대주의 주소뿐만 아니라 성명의 제공을 국가 등에 요청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성명이 주소와 함께 제공될 경우 ‘누가 어디에 살고 있는가’를 알 수 있게 돼 결합된 정보의 가치는 훨씬 커지게 되므로 개인정보가 악용되거나 유출되었을 경우의 위험성도 함께 높아진다”고 말했다.

두 재판관은 “특히 시행령 조항은 정보제공의 대상이 되는 세대주의 범위를 한정하지 않고 있음에 따라 적십자사는 전국의 모든 세대주의 정보 제공을 요청할 수 있고, 그 양은 매우 방대하다”며 “그런데 적십자법 및 같은 법 시행령에는 적십자사가 개인정보를 남용하거나 유출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전혀 마련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두 재판관은 “자료제공의 목적은 적십자회비 지로통지서 발송을 위한 것이고, 각 세대별로 지로통지서가 발송되기만 하면 되고 반드시 세대주 본인에게 송달되어야 할 필요는 없으므로 지로통지서 발송에는 세대별 주소만 필요할 뿐, 세대주의 성명은 불필요하다”고 밝혔다.

재판관들은 “실제로 적십자사는 지로통지서 및 봉투에 ‘적십자회비 모금’을 위한 것임을 명확하게 표시하고 있어, 적십자회비를 납부하고자 하는 의사가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지로통지서에 세대주의 성명이 기재돼 있지 않더라도 적십자회비 납부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으므로 적십자회비 모금이라는 목적 달성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두 재판관은 그러면서 “시행령 조항이 회비모금의 목적으로 세대주의 성명까지 적십자사에 제공하도록 한 것은 개인정보자기결정권에 대한 과도한 제한으로서 침해의 최소성을 충족하지 못했으며 법익의 균형성도 갖추지 못했다”며 “따라서 시행령 조항 중 ‘성명’에 관한 부분은 과잉금지원칙에 반해 청구인들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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