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아파트 10층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러 간 남편이 추락해 사망한 사건에서, 보험사는 의도적으로 뛰어내린 ‘고의 자살’을 주장했으나, 법원은 “특별이 자살을 의도한 정황을 찾기 어렵다”며 유족에게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2011년 4월 생명보험회사와 피보험자(보험사고 발생해 손해를 입은 자)를 남편(B)으로, 수익자를 자신으로 종신보험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재해’를 직접적인 원인으로 사망했을 경우 보험수익자(보험금을 받는 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하는 가입금액 1억원의 무배당 재해사망특약이 담보로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B씨는 2021년 4월 부산의 한 아파트 10층 계단복도 창문에서 주차장 노상으로 추락해 사망했다.

S라이프생명보험 회사가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자, A씨는 보험전문 한세영 변호사(법무법인 한앤율 대표)에게 사건을 의뢰했다.

A씨는 “망인은 외래의 사고로 입은 상해의 직접결과로 사망에 이르렀으므로, 보험회사는 보험계약 중 재해사망특약에 따른 보험금 1억원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며 소송을 냈다.

S라이프생명보험은 “망인은 의도적으로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것이므로, 이 사고는 상법 및 약관에서 정한 면책사유인 피보험자(B)의 고의자살 사고에 해당하므로,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맞섰다.

서울중앙지방법원(서울중앙지법)
서울중앙지방법원(서울중앙지법)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97단독 김재은 판사는 2022년 10월 A씨가 S라이프생명보험사를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소송에서 “피고는 원고에게 1억원 지급하라”며 원고(A) 승소 판결했다.

김재은 판사는 먼저 “보험계약의 보통보험약관에서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를 보험자의 면책사유로 규정하고 있는 경우, 보험자가 보험금 지급책임을 면하기 위하여는 면책사유에 해당하는 사실을 증명할 책임이 있다”며 “이 경우 자살의 의사를 밝힌 유서 등 객관적인 물증의 존재나, 일반인의 상식에서 자살이 아닐 가능성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이 들지 않을 만큼 명백한 주위 정황사실을 증명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2001다49234)를 짚었다.

김재은 판사는 “망인의 사망이 자살인지 여부에 대해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피고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망인이 자살했다는 점이 일반인의 상식에서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명백히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김재은 판사는 “사고 당시 망인(B)은 모친과 함께 모친의 거주지인 아파트 10층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는 모친을 따라 가지 않고 담배를 피우겠다고 말하며 근처 복도계단 창문으로 갔는바, 망인의 추락장소는 망인이 어떠한 목적이나 의도 없이도 일상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소로서 망인이 흡연 목적이 아닌 특별히 자살을 의도한 정황을 찾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한 “망인이 추락한 장소의 창문은 바닥에서 90cm에 못 미치는 높이에 위치해 있고, 가로길이가 70cm, 세로길이가 81cm에 이르는 크기임에도 별다른 안전장치가 없는 구조여서 망인이 일부러 창문을 타넘는 등과 같은 시도 없이도 담배를 피다가 몸의 중심을 잃는 가벼운 부주의에도 추락이라는 큰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장소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S라이프생명보험은 망인이 사망하기 4시간 전 배우자에게 ‘많이 힘들었제 이제 그만 편해져라. 나도 자신이 없네. 나도 이제 그만 편해질게, 너 절대 원망 안 하니까, 엄마랑 싸우지 말고, 모두 다 내려놓자’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을 ‘유서’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재은 판사는 “망인은 문자를 보낸 날 모친과 통화하면서 ‘죽을라고 해도 못 죽겠다’고 말하고, 모친을 만나서 식당 문을 닫을 때까지 기다린 뒤 집에 함께 가는 행동을 보였다”며 “이를 유서를 남기고 막 자살을 시도하려는 사람의 행동이라고 보기는 어려워, 위 문자메시지를 자살의사를 표시한 유서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S라이프생명보험은 “망인이 2017년부터 2021년 4월까지 복합부위통증증후군 증상으로 지속적인 치료를 받았으나, 상태가 계속 악화된 것으로 보이므로 이 역시 자살의 동기가 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재은 판사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복합부위통증증후군으로 인한 고통을 고려하더라도, 2017년부터 위 질병을 앓는 망인이 어느 정도 치료를 받고 있던 상황에서 갑자기 그로 인해 자살의 충동을 느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오히려 망인이 갑작스런 통증 등으로 응급실을 내원하는 등과 같은 사정은 망인의 추락가능성을 의심할 만한 사유로 보일 수도 있다”고 봤다.

김재은 판사는 “망인의 휴대전화가 망인이 추락한 장소와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진 장소에서 발견됐는데, 이는 망인이 추락할 당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어 두지 않고 손에 들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고, 손에 핸드폰을 들고 창문에서 의도적으로 뛰어내린다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한 일이므로, 당시 핸드폰을 든 망인의 후속 행동은 자살이 아닌 다른 어떤 목적의 것이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김재은 판사는 그러면서 “따라서 피고는 보험수익자인 원고에게 보험금 1억원 및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한편, 이 사건은 S라이프생명보험사가 항소해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저작권자 © 로리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