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완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정완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양심’에 따른 재판이 아니라, ‘공정’한 재판을 해야>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양심’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양심이란 인간이 사회에서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도덕적 책임을 생각하는 감정상의 느낌을 말한다. 이는 자기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스스로 평가함을 의미한다. 양심은 인간에게 고유한 불변의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받은 교육과 그의 사회적 지위 등에 의해 후천적으로 형성되며, 개인의 도덕적 성장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양심의 법적 정의가 존재하지 않는 한, 헌법이 규정한 ‘양심’은 법관 스스로 양심에 따라 재판했다고 주장하면 그것이 설사 공정하지 못한 결과를 도출하더라도 그 뿐인 것이다.

종래 재판 중에는 국민을 실망시키는 공정하지 못한 재판이 비일비재하다. 법관의 양심에 따른 재판 결과에 대해 그 불공정함을 말하는 것은 금기시되므로, 모든 재판은 결과의 공정성 여부에 상관없이 법관의 양심에 따른 재판이라는 말로 당연시되고 있다.

헌법 제19조는 국민에 대하여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이 규정은 매우 옳다. 개인의 사상이 정의롭든 정의롭지 않든 개인의 사상을 억압해서는 안 된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 수정헌법 제1조는 ‘표현의 자유’를 규정할 뿐이고, 영국 인권법 제9조는 ‘사상의 자유’를 규정할 뿐이다.

우리 헌법은 왜 ‘양심’이라는 추상적 용어를 규정한 것일까? 생각건대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의식한 용어로 보이는데, 사실 양심의 자유는 사상의 자유와 크게 다르지 않으며 그보다 훨씬 더 넓은 개념이다. 아무튼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갈리는 ‘양심’의 자유라는 표현은 헌법 용어로는 적절치 않다.

그런데 이 양심이라는 용어를 재판에 적용하는 경우 사정은 전혀 다르다. 국민에 대한 재판은 반드시 공정한 결과를 도출해야 하는 절차이므로, 법관 개인의 사상이나 지향성에 따라 불공정한 재판을 가능하게 하는 규정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공정한 재판을 해야 할 법관에게 양심에 따라 재판하도록 하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큰 것이다. 따라서 이 조항을 삭제하거나, 양심에 따른 재판이 아니라 ‘공정한’ 재판을 할 의무를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한 입법일 것이다.

참고로 미국 수정헌법 제6조는 배심제도이긴 하지만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규정하고 있고, 영국 인권법 제6조도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우리 헌법 제27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단순히 규정할 뿐이다.

즉 ‘공정한 재판’이 아니라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만 규정한 것이다. 국민은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고 그 재판은 법관의 양심에 따른 재판인 것이다. 공정한 재판이라는 용어는 전혀 사용하고 있지 않다. 결국 법관이 그의 ‘양심’에 따라 재판할 수 있도록 규정할 뿐이므로 재판 결과의 공정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요컨대, 헌법은 법관의 양심에 따라 재판하도록 규정할 것이 아니라 미국이나 영국처럼 공정한 재판을 하도록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한 입법일 것이다. 중한 범죄자를 무죄나 집행유예로 방면하거나, 반대로 억울하게 기소된 피고인에게 증거도 없이 유죄판결을 내린다면, 도대체 누구에게 정의를 호소할 것인가?

사실, 문제적 재판은 정치적 재판 등 극소수에 해당하지만, 그렇더라도 불공정한 재판이나 여야에 따른 선택적 재판을 하지 못하도록 헌법개정을 포함하여 공정한 재판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입법이 필요하다고 사료된다.

<위 글은 법률가의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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