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완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법전원) 교수
정완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법전원) 교수

<장발장은행, 확대ㆍ운영되어야>

경찰청에 따르면 생계형절도범죄 가운데 피해금액이 10만 원 이하인 소액절도사건은 2019년 4만 8597건에서 2020년 5만 3074건, 2021년 5만 4987건으로 증가했고, 아울러 노인절도 피의자도 2019년 1만 5086명에서 2020년 1만 6496명, 2021년 1만 8339명으로 늘었다고 한다.

이처럼 먹고사는 문제로 절도를 범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고 이들에게는 대체로 벌금이 부과되지만 생계형절도인 만큼 벌금도 내지 못하는데, 이 경우 교도소에서 강제노역을 하게 된다.

이처럼 벌금을 내지 못해 강제노역에 처하게 된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어 벌금을 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가 이른바 장발장은행이다.

2015년 한 사회단체가 유명소설 주인공 이름을 따 설립한 이 단체는 이자나 담보 없이 1인당 최대 300만 원까지 대출해 주는데 정식은행이 아니라 기부금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기금이 소진되면 더 이상 대출은 불가능하다.

벌금형을 선고받은 자가 벌금을 못 낸다는 이유로 더 중한 형벌을 받게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처분이다. 벌금을 못 내는 것이 범죄가 아닌 이상 적절한 조치로 대체되어야 하며, 강제노역과 같은 엄한 처벌보다는 훈방 등 선처를 통한 교화가 바람직하다.

이러한 역할을 하는 기관이 경미범죄심사위원회이다. 생계형범죄 등 경미범죄를 대상으로 전과자 양산을 막기 위해 설치된 이 기구는 한순간의 실수를 이유로 전과자로 만드는 대신, 즉결심판이나 훈방조치를 통해 사회복귀를 도우려는 취지로 2018년부터 전국에 확대ㆍ시행되었는데, 경찰ㆍ법조분야 전문위원들이 범죄피해의 정도와 죄질을 고려하여, 형사입건사건은 즉결심판으로 감경처분하고, 즉결심판사건은 훈방조치로 감경처분을 내리고 있다.

생계형범죄는 경기가 안 좋은 때일수록 많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들에 대하여 몰인정한 기계적 처벌을 반복해서는 안 되며 억울하지 않도록 처분하는 조치가 행해져야 한다.

벌금 낼 돈이 없어 교도소에 가게 되는 생계형범죄자를 구제하기 위하여 설립된 장발장은행은 많은 이들이 기부한 성금으로 운영되고 있고 이 은행의 도움을 받은 사람은 현재까지 1,124명에 이르고 있는데, 과거 이들이 대출금을 갚지 못하여 곧 문을 닫게 될 거라는 우려가 있었으나 대출금 상환비율은 50%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생계형범죄의 경우 범죄자의 사정을 고려하여 처벌보다는 갱생의 기회를 주는 것이 사법기관의 진정한 역할이 되어야 하지만, 별다른 정책이 없는 상황에서 형편이 어려워 벌금조차 못 내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민간에서 출범한 것이 바로 장발장은행이지만, 기부금만으로 운영되어 신청자의 절반도 대출받지 못하고 있다. 생계형범죄에 쉽게 노출되는 경제적 약자를 위한 국가의 제도와 사회의 적극적 관심이 필요하다.

장발장은행의 설립취지는 한마디로 벌금제도 개혁이다.

범죄자의 소득과 재산에 따라 벌금을 다르게 내게 하는 것은 합당한 처분이다. 수백억 원의 벌금에 처해진 재벌의 경제범죄에 대해 벌금 대신 하루 수백만 원의 가치로 노역에 처해지는 것이 현 상황임을 감안할 때, 생계형범죄자에게 별다른 기준없이 하루 3~400만 원의 벌금에 처해진 경제적 약자를 무조건 강제노역에 처하는 것은 결코 합당하지 못하다.

벌금을 내지 못해 교도소에 갇히는 사람이 한 해 평균 4만여 명에 이르는데, 가난이 가중처벌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단순명료한 원칙을 국가기관이 아닌 민간 사회단체에 불과한 장발장은행이 8년째 실천해 오고 있다.

고령층의 생계형범죄도 매년 늘고 있는데 지난해 7천여 명의 현대판 장발장들이 감경처분으로 구제되었다고 한다. 생계형범죄의 반복을 막으려면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라 장발장은행의 역할과 같은 사회적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 혹시라도 기부금 부족으로 장발장은행의 역할이 멈춰지지 않도록 국가사회의 적극적 지원이 계속돼야 할 것이다.

<위 글은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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