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삼성물산이 운영하는 에버랜드 테마파크 내에서 셔틀버스, 사파리 월드 버스 등 관광시설용 차량의 운행 업무를 수행한 협력업체 직원들이 삼성물산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법원은 협력업체 직원들과 삼성물산의 묵시적 근로관계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근로자파견관계는 인정해 삼성물산에게 이들의 고용의무를 부담하라고 판결했다. 또한 삼성물산의 정규직 근로자가 받은 임금과 이들이 실제로 받은 임금 차액에 대한 손해배상책임도 인정했다.

서울동부지방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A사는 2011년 설립 당시 삼성물산과 도급계약을 체결하고, 에버랜드 고객과 임직원 수송을 위한 셔틀버스(저상버스), 에버랜드 내 사파리 월드 버스, 로스트 밸리 수륙양용차량, 비상차(소방차, 구급차), 청소차 등을 운행하는 업무 등을 수행했다.

사파리 월드 버스는 호랑이, 사자, 곰 등 육식동물이 사는 동물원 내부를 특수제작된 버스를 타고 가까이서 둘러볼 수 있는 에버랜드의 대표적 관광시설이다. 로스트 밸리 수륙양용차량은 기린, 코뿔소 등 초식동물들이 사는 동물원 내부를 특수제작된 버스를 타고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에버랜드의 대표적 관광시설이다.

A사 근로자들인 신OO씨 등은 각 입사일부터 현재까지 2년을 초과해 에버랜드 내에서 위 셔틀버스 등의 운행 업무를 수행했다. 입사일은 2011년부터 2018년까지 다양하다.

신씨 등은 “형식적으로는 A사와 근로계약을 체결했지만, A사는 사업주로서의 독립성을 결한 삼성물산의 노무대행기관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삼성물산이 원고들을 직접 사용ㆍ지휘해 근로를 제공받았으므로, 원고들과 삼성물산 사이에는 묵시적인 근로계약관계가 성립했다”며 “따라서 A사에 입사한 날부터 삼성물산의 근로자 지위에 있다”는 확인을 구하는 소송을 냈다.

신씨 등은 “원고들과 삼성물산 사이에 묵시적 근로파견관계가 인정될 경우 삼성물산은 원고들의 A사 최초 입사일부터 삼성물산 소속 근로자와 동일한 기준에 따라 산정된 임금과 원고들이 A사로부터 받은 임금을 공제한 차액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현행 파견법에 의해 원고들이 삼성물산의 근로자 지위를 갖게 되거나, 현행 파견법상의 직접 고용의무 조항에 의해 근로자 지위를 갖게 될 경우에는 고용의무 발생 이전 기간에 대하여는 현행 파견법의 차별금지규정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으로서 삼성물산 소속 근로자가 받았던 임금에서 원고들이 A사로부터 받은 임금을 공제한 나머지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신씨 등은 그러면서 “명시적 일부청구로서 각 500만원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의 지급을 구한다”고 밝혔다.

반면 삼성물산은 “A사는 형식적 명목적인 회사가 아니라 독립적인 기업조직을 갖추고 경영상 독립성을 갖춘 사용자로서 자신의 독립된 경영권에 기해 근로자들을 채용하고 임금을 직접 지급했으며, 인사권 및 징계권을 행사하는 등 근로관계 전반에 걸쳐 사용자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행사해 왔으므로, 원고들은 A사의 근로자일 뿐이고, 원고들과 삼성물산 사이에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성립했다고 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삼성물산 또 “원고들은 A사의 지휘ㆍ감독을 받아 근무했고, 삼성물산은 도급인으로서의 지시 이외에 근로파견 관계의 요건인 ‘사용자의 지위에서 지휘ㆍ명령’을 한 사실이 없을 뿐만 아니라, 원고들의 업무인 이 사건 도급업무는 삼성물산 리조트사업부의 본질적 업무와 명확히 구별돼 원고들이 삼성물산의 사업에 편입되지 않았고, A사는 대형버스 및 특수차 운전에 관한 전문성ㆍ기술성을 보유하고 독립적인 기업조직을 갖추고 있으므로, 근로자파견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맞섰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서울동부지방법원
서울동부지방법원

서울동부지방법원 제15민사부(재판장 조용래 부장판사)는 지난 7월 18일 에버랜드에서 셔틀버스 등의 운행 업무를 수행한 A사 근로자 신OO씨 등 9명이 삼성물산을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확인 청구 등 소송에서 “삼성물산은 원고들에게 고용의 의사표시를 하라, 원고들에게 각 500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다만 원고들의 근로자지위확인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고 기각했다.

◆ 원고들과 삼성물산 사이에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성립했는지 여부

재판부는 “삼성물산이 원고들의 근로관계에 전반적인 영향을 미치고, 원고들이 수행하는 업무에 대해 지휘ㆍ명령을 했다고 보이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원고들이 주장하는 사정만으로는 A사의 존재가 형식적ㆍ명목적인 것에 불과하거나, 원고들이 삼성물산에 종속돼 삼성물산으로부터 임금을 지급 받으면서 삼성물산에 근로를 제공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원고들의 주장은 이유 없다”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 원고들과 삼성물산 사이에 근로자 파견관계가 인정되는지 여부

재판부는 “삼성물산의 CS혁신파트는 고객들로부터 A사 소속 근로자들에 대한 근무태도 평가를 받아 A사에 전달하거나, 모니터링(고객으로 가장해 서비스 상태를 점검)을 실시했고, 매 분기마다 A사의 서비스 품질을 평가해 저상버스 운행 부적격자의 경우 파트를 옮기기도 했다”고 밝혔다. CS혁신파트는 에버랜드를 방문한 고객들의 불만사항 등을 관리하며 관련 조치를 시행하는 부서다.

재판부는 “삼성물산은 A사의 현장책임자 등에게 이메일 등으로 근로자들의 업무내용, 업무수행 방법, 업무 시간 및 장소, 근무태도 등에 관한 지시를 하고, A사의 관리직원들은 이메일을 인쇄해 사내에 게시하거나, 네이버 밴드에 개설된 A사의 업무용 밴드에 게시했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무전기 사용 시 일부 채널을 사용하지 말아달라거나, 셔틀버스에서 특정 안내멘트(삼성물산 근로자들의 입수보행 및 휴대전화 사용 금지해달라는 내용)를 해달라는 것 외에도 건조기 산불 대응 비상훈련 시 차량 지원을 해달라는 요청도 포함돼 있었다.

재판부는 “삼성물산 리조트사업부 모 그룹장은 A사 근로자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 청소차 운행 등을 지시했고, 버스 운행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인원수 확인을 지시하기도 했으며, 배차 시간을 조정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삼성물산은 A사 신입사원들을 대상으로 직접 서비스 교육을 실시했고, 정비교육을 실시하기도 했으며, 안전교육이나 화재대응 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고 “A사 근로자들에 대한 삼성물산의 교육은 차량이나 안전과 관련된 교육 이외에도 동물개체 표준화 교육이 이뤄졌고, 동물원 사육사로부터 동물에 대한 주의사항 및 탈출 시 행동요령에 대한 설명을 듣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위 사정들을 종합하면, A사 소속 근로자로서 삼성물산을 위한 업무에 종사한 원고들은 삼성물산으로부터 직ㆍ간접적으로 구속력 있는 지휘ㆍ명령을 받으며 차량운행업무 등을 수행하고, 삼성물산 소속 근로자들과 하나의 작업집단으로 구성돼 실질적으로 삼성물산의 사업에 편입되는 등 원고들과 삼성물산은 근로자파견관계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 삼성물산이 원고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업무수행 자체에 관한 구속력 있는 지시를 하는 등 상당한 지휘ㆍ명령을 했는지

재판부는 “삼성물산 리조트사업부 모 그룹장은 카카오톡 대화방 등을 이용해 특정구간의 청소차 운행을 지시하거나, 차량 운행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차량 이용 인원파악을 지시하건, 배차 시간을 늦추는 등의 업무수행에 관한 구속력 있는 지시를 했다”며 “또한 삼성물산은 수시로 이메일 등을 통해 A사에 지시사항을 전달하고, A사로부터 업무 관련 사항을 보고받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삼성물산이 만든 표준운영절차는 기준을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작업내용, 순서, 인원, 작업시간 등 A사 소속 근로자들의 작업수행에 필요한 일체의 사항에 관해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지시하고 있으므로, 이는 업무수행에 관한 지시로 봄이 타당하다”고 봤다.

또 “A사 소속 근로자들이 위와 같은 삼성물산의 지시사항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거나, 자신의 전문성에 기해 독자적인 결정을 내린 적은 없는 것으로 보이는데, 위와 같은 사정을 종합하면 삼성물산은 A사 소속 근로자들에게 구속력 있는 지시를 내렸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재판부는 “삼성물산의 직원들과 A사 소속 근로자들이 수행하는 업무가 전체적으로 연관돼 있었고, A사 근로자들이 삼성물산의 직원들과 하나의 작업집단으로 구성돼 공동작업을 하는 등 삼성물산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재판부에 따르면 삼성물산은 주말직 사원을 포함해 A사 소속 근로자들의 근태를 A사 측에 전달하거나, 직접 인사와 관련한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또한 삼성물산 리조트사업부 모 그룹장은 A사 현장책임자에게 원고들의 출근 여부를 확인하고, 원고들이 저상버스를 서행할 경우 탄력봉을 치고 나오라거나, 강제퇴근을 시키라는 등의 지시도 했다. 탄력봉은 도로 중앙선에 설치돼 있는 주황색 탄력봉을 말하는데, 1차선에서 서행하는 저상버스를 앞지르기 위해 중앙선을 추월하는 뜻이다.

재판부는 “삼성물산과 A사 사이에 체결한 기숙사 임대차계약서에는 ‘기숙사의 수도광열비는 임차인 A사가 지불한다’고 기재돼 있으나, A사나 근로자들이 전기요금을 포함한 공과금 등을 실제로 지불한 것이 확인되지 않는다”며 “한편 2021년도 도급계약서에는 위 사무실을 무상사용대차하고, 관리비는 삼성물산이 부담한다고 기재돼 있다”고 확인했다.

재판부는 “2021년도 도급계약서에는 저상버스, 청소차, 제설차 등 A사가 운행하는 차량을 A사가 제공하는 것처럼 돼 있으나, 실제로 A사가 운행하는 모든 차량은 삼성물산으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받았을 뿐이고, A사가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독자적으로 보유하고 있었던 물적 시설이나, 고정자산, 필요설비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그리고 A사 차량 운행을 위해 필수적인 주유와 정비서비스 등도 삼성물산이 모두 제공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A사가 소속 근로자들의 4대 보험료를 납부하고, 취업규칙을 정해 인사권과 징계권을 행사했다고 하더라도, 근로자파견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도 위와 같은 자신의 사무를 수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위와 같은 사정만으로 원고들과 삼성물산 사이의 근로자파견관계를 부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판단했다.

◆ 고용 의무 발생

재판부는 “A사는 법인등기부등본상 운송업 등을 영위하는 자이고, 근로자파견사업은 법인의 목적이 아닌 사실이 인정된다”며 “그리고 A사가 근로자파견사업에 관해 고용노동부 장관의 허가를 받았다고 볼 증거도 없다”며 “그럼에도 원고들이 입사 후 현재까지 A사에 근무하며 삼성물산에게 근로자파견의 업무를 제공했으므로, 삼성물산은 파견법에 따라 원고들에 대한 고용의무를 부담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다만 “원고들은 삼성물산이 고용의무가 있음에도 원고들의 근로를 수령해 원고들과 삼성물산 사이에 묵시적으로 근로계약 체결의 의사표시가 있었다고 주장하나, 고용의무가 발생한 상황에서 파견근로를 제공받았다고 하여 바로 근로계약 체결 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고,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근로자지위확인 청구는 이유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 손해배상책임 발생

재판부는 “원고들과 삼성물산은 근로자파견 관계에 있었던 것으로 인정되는 점, 원고들은 삼성물산에 대해 직접 고용의무의 이행을 청구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점, 사용사업주인 삼성물산은 파견근로자인 원고들이 비교대상 근로자인 삼성물산 소속 근로자와 차별 없는 임금을 받도록 할 의무를 부담하는 점 등에 비춰 보면, 삼성물산은 원고들에게 차별이 없었더라면 받았을 임금 상당액을 실제 받은 임금을 뺀 차액 상당의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손해배상액 산정에 대해 재판부는 “원고들이 차별이 없었더라면 받았을 임금 상당액에서 실제 원고들이 지급받은 임금을 뺀 차액이 원고별로 각 500만원을 초과함에는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다”며 “따라서 삼성물산은 원고들에게 정규직 근로자로서 지급받을 수 있었던 임금에서 A사로부터 받은 임금을 공제한 차액으로서 원고들이 구하는 바에 따라 각 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한편, 이번 사건에서 류하경 변호사와 김유정 변호사(법무법인 여는)가 원고들을 대리해 승소 판결을 이끌어 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저작권자 © 로리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