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 회장 출신 김선수 후보자 “대법관 삶은 민변과 단절에서 출발”

2018-07-24     신종철 기자

[로리더] 진보성향의 변호사단체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창립멤버이자 회장을 역임한 김선수 대법관 후보자는 23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대법관으로서의 삶은 민변과의 관계를 단절하는 데에서 출발해야만 할 것 같아 민변에서 탈회했다”고 밝혔다.

이날 국회 대법관 임명동의에 관한 인사청문특별위원회(위원장 진영)에 참석한 김선수 후보자는 모두 발언을 통해 “민변 회원이었던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만, 대법관의 역할과 민변 회원의 역할은 분명히 다르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선수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사진=국회 방송)

김선수 후보자는 “대법원에도 변호사로서 사법서비스의 수요자인 소송당사자와 호흡한 경험을 가진 대법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시대적 요청”이라며 “저는 1980년 이후 최초의 순수 변호사 출신 대법관 후보자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면서도 대법원의 다양성을 요구하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용기를 내어 이 자리에 섰다”고 말문을 열었다.

김 후보자는 “저는 지난 30여년을 노동법 전문 변호사로 일했다. 노동자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법률전문가로서 법적 조언을 제공하고, 때로는 법정에 출석해 그들을 위해 변론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평범한 시민들의 입장에서 바람직한 소송제도와 법관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고민할 수 있었다”며 “노동법뿐만 아니라 형사법, 헌법 영역에서도 여러 선도적인 판결을 이끌어내기도 했다”고 자신을 설명했다.

김선수 후보자는 “그러나 저는 이제 변호사 활동을 마치고 대법관의 직을 수행하고자 이 자리에 섰다”며 “제가 변호사로 일하는 동안 변호사단체인 민변의 회원으로 활동한 점을 이유로 대법관으로서 공정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를 우려하는 견해도 있다고 알고 있다. 저는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민변의 회원이었던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는 “하지만 대법관의 역할과 민변 회원의 역할은 분명히 다르다. 예컨대, 민변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더라도 대법관은 현행 국가보안법을 전제로 판결할 수밖에 없다”며 “저의 대법관으로서의 삶은 민변과의 관계를 단절하는 데에서 출발해야만 할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저는 대법관으로 제청된 직후에 민변을 탈회했다”고 말했다.

또한 노무현 참여정부에서 사법개혁비서관으로 근무한 경력을 근거로 대법관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정치적 중립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심에 대해서도 김선수 후보자는 “저는 현실 정치와 거리를 두고 살아왔다. 정당에 가입한 적도 없고, 정당에 후원금을 낸 적도 없다. 선거 캠프에 관여한 적도 없다”며 일축했다.

그는 “저는 사법개혁비서관으로서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기획추진단장을 겸임했는데, 정무적 업무는 전혀 담당하지 않고 오로지 사법개혁 업무만 수행했다”며 “청와대 안에는 제 자리도 없었다. 저는 실무책임자로서 공동위원장인 한승헌 변호사님과 협의해 위원회의 의결을 통해 개혁 법안을 확정했고, 결과적으로 3대 개혁과제였던 국민참여재판 제도 도입, 법학전문대학원 설립, 형사소송법 전면 개정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내는 데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김선수 후보자는 “저는 변호사로서의 삶을 마감하고 대법관으로서의 삶을 시작하고자 이 자리에 섰다. 변호사로서 인권단체 활동을 하는 지위에서 가졌던 관점과 견해는 대법관 직무를 수행하면서 일정하게 변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 자리에서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제가 대법관으로서 직무를 수행하게 된다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포함한 모든 구성원들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 다양성과 차이를 포용하고 관용하는 사회, 우리 사회의 노동자들이 정당하게 대우받는 사회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공언했다.

<김선수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모두발언 전문>

존경하는 국회인사청문특별위원회 진영 위원장님, 그리고 위원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대법관 후보자 김선수입니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서 대법관 후보자로서 인사말씀을 드릴 수 있게 된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대법원에도 변호사로서 사법서비스의 수요자인 소송당사자와 호흡한 경험을 가진 대법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시대적 요청입니다. 저는 1980년 이후 최초의 순수 변호사 출신 대법관 후보자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면서도 대법원의 다양성을 요구하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하여 용기를 내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를 이 영광스러운 자리에 설 수 있게 해주신 분들이 떠오릅니다. 먼저, 저의 부모님입니다.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던 산간 마을에서 농사를 짓던 부모님께서는 자식 교육을 위해 낯선 도시로 삶의 터전을 옮기셨습니다. 부친은 하역 노동자로, 모친은 영세 공장의 노동자로 생계를 꾸리시면서 제게 학업에 정진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38년간의 타향살이를 마치고 몇 년 전 낙향하신 부모님의 얼굴에서, 저는 우리 사회의 작지만 위대한 발전을 일구어낸 노동자의 삶을 읽습니다.

다음으로 고등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이셨던 후백(後柏) 김창규 선생님이십니다. 저는 선생님께서 윤리 수업 시간에 가르쳐주신 중용(中庸)의 한 구절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습니다. “성자 천지도 성지자 인지도(誠者 天之道 誠之者 人之道)”, 즉 “말이 이루어지는 성, 그 자체는 하늘의 도이고, 성실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사람의 도이다.”라는 가르침대로 모든 일에 정성을 다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저에게 삶의 기본자세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변호사로서 첫걸음을 내딛은 1988년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셨던 고(故) 조영래 변호사님입니다. 고인은 시국사건 외에도 노동, 성차별, 환경, 망원동 수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변호사의 사명을 다하셨습니다. 저는 법정 밖에서는 가치 있는 사건을 발굴하고, 법정 안에서는 정교한 법리로 판사를 설득하셨던 고인을 법률가의 모범으로 삼고 있습니다.

진영 위원장님, 그리고 위원님 여러분. 저는 지난 30여 년을 노동법 전문 변호사로 일했습니다. 노동자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법률 전문가로서 법적 조언을 제공하고, 때로는 법정에 출석하여 그들을 위해 변론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평범한 시민들의 입장에서 바람직한 소송제도와 법관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노동법뿐만 아니라 형사법, 헌법 영역에서도 여러 선도적인 판결을 이끌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제 변호사 활동을 마치고 대법관의 직을 수행하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제가 변호사로 일하는 동안 변호사 단체인 민변의 회원으로 활동한 점을 이유로 대법관으로서 공정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를 우려하는 견해도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민변의 회원이었던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법관의 역할과 민변 회원의 역할은 분명히 다릅니다. 예컨대, 민변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더라도 대법관은 현행 국가보안법을 전제로 판결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의 대법관으로서의 삶은 민변과의 관계를 단절하는 데에서 출발해야만 할 것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저는 대법관으로 제청된 직후에 민변을 탈회했습니다.

위원장님, 그리고 위원님 여러분. 제가 사법개혁비서관으로 근무한 경력을 근거로 대법관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정치적 중립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심하는 분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현실 정치와 거리를 두고 살아왔습니다. 정당에 가입한 적도 없고, 정당에 후원금을 낸 적도 없습니다. 선거 캠프에 관여한 적도 없습니다. 다만 저는 노동자의 삶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는 노동법 개정과 노동정책의 실현을 위해 저의 전문성이 도움이 된다면, 누구의 요청에도 적극적으로 응했습니다. 노동에 관심 있는 여야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국회의원들의 모임에 자문위원으로 참여했습니다. 2017년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원회에는 기본권분과 자문위원이 되어 노동권 조항 개정안 마련에 힘을 보탰습니다. 중앙노동위원회 심판담당 공익위원으로 5년간 활동하면서 제가 참여한 판정이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고 논란이 된 적은 없었습니다. 저는 사법개혁비서관으로서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기획추진단장을 겸임했는데, 정무적 업무는 전혀 담당하지 않고 오로지 사법개혁 업무만 수행했습니다. 청와대 안에는 제 자리도 없었습니다. 저는 실무책임자로서 공동위원장이신 한승헌 변호사님과 협의하여 위원회의 의결을 통해 개혁 법안을 확정했고, 결과적으로 3대 개혁과제였던 국민참여재판 제도 도입, 법학전문대학원 설립, 형사소송법 전면 개정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내는 데 기여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공직자의 기본자세를 가다듬고, 여러 기관과 단체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면서 정책목표를 달성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었으며, 사법제도 전반과 사법개혁의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 고민하고 식견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제가 대법관의 직무를 수행하는 데 큰 자양분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위원장님, 위원님 여러분. 저는 변호사로서의 삶을 마감하고 대법관으로서의 삶을 시작하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변호사로서 인권단체 활동을 하는 지위에서 가졌던 관점과 견해는 대법관 직무를 수행하면서 일정하게 변화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자리에서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제가 대법관으로서 직무를 수행하게 된다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포함한 모든 구성원들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 다양성과 차이를 포용하고 관용하는 사회, 우리 사회의 노동자들이 정당하게 대우받는 사회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아무도 앞서 걷지 않았던 전인미답의 길을 가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솔직히 두렵습니다. 제가 걷는 걸음걸음은 뒤에 이 길을 걸을 사람들에게는 길잡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바쁘신 가운데 청문회를 준비하신 진영 위원장님과 위원님 한분 한분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국민의 이름으로 제게 주시는 질문에 대하여 성심성의껏 답변하겠습니다. 저에 대한 질책도 겸허하게 받아들여 경책(警策)으로 삼겠습니다. 오늘의 청문회를 제 자신을 되돌아보고 새롭게 거듭날 수 있는 기회로 삼겠습니다. 위원장님과 위원님 여러분 앞에서 성실하게 청문에 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