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법원행정처장에게 성폭행 피해자 사건기록 복사 익명조치 권고

2019-02-18     신종철 기자

[로리더]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최영애)는 법원이 성폭력범죄 가해자 측이 신청한 사건기록 복사본을 교부할 때 피해자 인적사항을 익명 처리하지 않은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정보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한 행위라고 판단했다.

이에 해당 지방법원장에게 사건기록 열람 및 복사 과정에서 성폭력범죄 피해자의 신상정보가 유출되는 일이 없도록 관련 업무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직무교육을 실시할 것을 권고했다. 또 법원행정처장(대법관)에게 ‘재판기록 열람ㆍ복사 규칙’ 및 예규 등을 개정해 성폭력범죄 피해자의 신상정보를 비실명 조치하도록 명문화하는 등 관련 절차 및 규정 정비를 권고했다.

인권에 따르면 성폭력범죄 피해자의 배우자인 진정인(A)은 “법원의 사건기록 열람ㆍ복사 담당자가 가해자 측 변호사에게 피해자의 인적사항이 기재된 사건기록을 복사해 줘 신상정보가 유출됐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법원 담당자는 “형사사건의 재판기록 열람ㆍ복사 시 개인정보가 유출될 경우 발생할지 모를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발생 등 사안의 중요성을 인식해 최대한 재판기록 열람ㆍ복사 규정에 따른 업무처리를 하고자 노력했다”고 밝혔다.

담당자는 “이번 사건의 경우 피해자 관련 재판기록 복사 과정에서 실제로 피해자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는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인권위에 진정한 사정만으로도 본인의 업무 과실로 피해자에게 상처를 준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인권위 조사 결과, 성폭력범죄 사건 가해자 측 변호사 사무실 직원이 2017년 6월과 8월 법원에 사건기록 복사를 신청해 교부받는 과정에서 피해자에 대한 인적사항이 그대로 기재된 사본을 교부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가해자 측 변호사는 사본에 적힌 피해자의 주소, 주민등록번호 등을 보고 공탁금 신청서를 작성해 법원에 제출했고, 진정인(A)은 피해자의 인적사항이 기재된 법원의 공탁 통지서를 수령한 것이다.

인권위 침해구제제1위원회(위원장 최혜리)는 “법원 담당자는 피해자의 신상정보 등을 익명 처리하지 않고 가해자 변호사 측에게 교부했다”며 “비록 피해자의 신상정보가 가해자에게 유출돼 구체적인 위험 상황이 발생한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법원의 행위는 피해자의 신상정보를 가해자가 쉽게 알 수 있는 상황에 노출해 피해자의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 받을 수 있는 상황에 놓이게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이와 같은 법원 담당자의 행위는 개인정보보호법, ‘성폭력범죄 등 사건의 심리ㆍ재판 및 피해자 보호에 관한 규칙’을 위반한 행위로서,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및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다만 재판기록 열람ㆍ복사 규칙 및 예규 등 등 관련 규정에 성폭력범죄 피해자의 신상정보 비실명화 조치에 관한 규정이 명확하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법원직원의 행위가 개인의 부주의에서만 비롯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봤다.

현재 검찰은 사건기록 열람ㆍ복사 신청 교부 시 사건관계인의 명예나 사생활의 비밀, 생명ㆍ신체의 안전, 생활 평온 등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을 경우 그 범위를 제한할 수 있도록 검찰사무규칙에 규정하고 있다.

반면, 법원의 재판기록 열람ㆍ복사 규칙 및 예규에는 이러한 경우를 비실명화 조치 사유에 포함하지 않고 있다.

이에 인권위는 법원 담당자에 주의 조치와 더불어, 성폭력범죄 피해자의 신상정보 유출로 인한 2차 피해 예방을 위해 재판기록 열람 및 복사와 관련된 규정과 절차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