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직장 우월적 지위로 성희롱ㆍ괴롭힘은 인격권 침해…엄격 제재”
- 서울행정법원, 직장 관련 판결에 헌법적 가치 설시 눈길 - “한국부동산원 성희롱 부장 해고 정당, 중노위 결정 부당”
[로리더] 여직원들에게 지속적인 성희롱 발언과 직장 내 괴롭힘을 가했던 상사에 대한 해고는 정당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특히 다음과 같이 강조한 판결한 부분이 주목을 받는다.
“직장 내에서의 성희롱이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직장 내 괴롭힘은 근로자의 기본권 실현의 공간에서 역설적으로 피해근로자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행위이므로, 엄격하게 제재할 필요가 있다. 그로써 사용자가 더 적극적으로 근로환경을 건전하게 유지함과 동시에 근로자의 인격권 등을 보장할 수 있게 된다”
◆ “너 자고 만남 추구해?” 여직원 수치심 준 한국부동산원 부장
판결문에 따르면, 2023년 4월 한국부동산원의 지방 지사의 직원 BㆍC씨는 부장(A)의 갑질 및 성희롱 피해 상당을 요청했고, 한국부동산원은 A부장에게 자숙을 권고하고, BㆍC씨에 접근을 금지했다.
피해자들이 2023년 5월 성희롱 및 직장 내 괴롭힘 피해에 대해 한국부동산원 본사 보고를 요청하자, 한국부동산원은 A부장을 타 지사로 발령하는 방식으로 분리조치를 하고, 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또한 조사위원회는 노무법인에 성희롱에 대한 조사를 의뢰했다. 조사 결과 ▲신체 접촉 ▲부적절한 사적 질문 ▲성적 언행 ▲2차 가해 ▲업무상 위력 행사 등 A씨의 성희롱 및 직장 내 괴롭힘 행위 다수가 인정됐다.
한국부동산원은 2023년 7월 성희롱 심의위원회를 개최했고, A부장도 참석해 소명하며 의견을 진술했으나, 심의위원회는 징계사유로 인정했다.
한국부동산원은 2023년 8월 인사위원회를 개최했는데, A부장은 참석해 “징계사유에 해당하는 행위를 한 사실이 없거나, 성희롱 또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인사심의위원회는 조사위원회가 사실로 인정한 징계 사유를 받아들여 A씨의 ‘해임’을 의결했다.
사유는 ▲A씨가 성희롱이나 괴롭힘 사실을 대부분 인지한 것으로 보이는 점 ▲성희롱 횟수가 많고, 성희롱과 직장 내 괴롭힘 비위가 경합돼 징계양정상 가중 대상이며 ▲부장의 지위에서 부하직원을 관리감독하고 모범을 보여야 하는 위치에 있어, 오히려 비위행위를 자초한 면도 있고 ▲성희롱과 직장 내 괴롭힘은 엄하게 처벌돼야 하며 ▲종합직 4급인 A씨가 대부분의 사실을 부인해 반성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 점 ▲향후 유사사례의 재발 방지와 공직기강 확립을 위해 엄하게 책임을 묻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해서다.
이에 A씨가 재심을 청구했으나, 한국부동산원 인사심의위원회는 2023년 9월 “해임 후 중대한 사실관계가 발견되지 않았다”며 기각했다.
이후 A씨는 OO지방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했지만, 지노위는 “징계사유 및 징계양정이 적법하다”고 판정했다. A씨는 이에 불복해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했다.
◆ 중노위, 징계 뒤집어…“일부 성적 언행만으로는 해고 과도”
사건의 흐름은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서 뒤집혔다. 중노위는 2024년 5월 징계 사유 중 A부장이 피해자에게 “너 자고 만남 추구해?”라는 성적 언행을 한 행위, 다른 피해자에게 연애 관련 질문을 하고 “결혼은 했지만, 연애를 하고 싶다”라고 말한 행위만 인정하고, 나머지는 인정되지 않으며, 인정되는 징계사유만으로는 해고가 과도하다고 판정했다.
이번에는 한국부동산원 측에서 중앙노동위원회장을 상대로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을 걸었다. 중노위 재심 판정이 위법하며, A씨 해고가 정당했다는 이유에서다.
한국부동산원은 “▲B씨와 C씨에 대한 성희롱 및 직장 내 괴롭힘 행위는 모두 징계사유에 해당하고 ▲비위행위의 횟수 ▲고위직인 A씨의 지위 ▲수차례 양성평등 교육을 받았던 점 ▲다른 피해자들도 존재하는 점 ▲A씨가 반성하지 않는 점 ▲노동조합이 A씨의 복귀를 반대하는 점 등을 종합할 때 해고는 징계양정에서도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참가인 자격으로 중노위 편에 선 A씨는 부당해고를 주장했다.
◆ 서울행정법원 “부당해고 아냐”
서울행정법원 제12부(재판장 강재원 부장판사)는 2025년 9월 25일 한국부동산원이 중앙노동위원장을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판정을 취소한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2024구합72056).
A씨에 대한 해고가 부당해고에 해당한다고 본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판정은 위법하다고 판단해서다.
재판부는 먼저 “직장 내 성희롱에서의 ‘성적 언동’이란 남녀 간의 육체적 관계 또는 남성이나 여성의 신체적 특징과 관련된 육체적, 언어적, 시각적 행위로서, 사회공동체의 건전한 상식과 관행에 비추어 볼 때, 객관적으로 상대방과 같은 처지에 있는 일반적이고도 평균적인 사람으로 하여금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할 수 있는 행위를 뜻한다”고 대법원 판례를 언급했다.
또 “‘직장 내 괴롭힘’이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말한다”고 대법원 판례를 짚었다. (2020다270503)
재판부는 그러면서 “참가인(A부장) 징계사유에 관한 B씨와 C씨가 성희롱 및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어 신빙성을 인정할 수 있고, 이들의 진술을 뒷받침하는 직장 동료들의 진술 및 증거들이 있어, 이를 종합할 때 징계사유는 모두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참가인의 B씨와 C씨에 대한 성희롱 관련 질문이나 발언은 동기나 의도와 관계없이 그 자체로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피해자들은 “성희롱 관련 발언이 입사 초기부터 꾸준히 있어 많이 불괘했다”,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정신적 충격으로 성희롱 정신상담센터와 상담한 적도 있다”고 진술했다. 피해자 중에는 심한 스트레스 등으로 진단받고, 1년간 휴직했는데, “복직 후에도 두렵고 고통받고 있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참가인의 피해자들에 대한 성희롱 비위가 시작된 시점과 각 언행의 시기 등을 종합하면, 징계사유 기재 언행은 성적 함의를 가진 것으로서 객관적으로 상대방과 같은 처지에 있는 일반적이고도 평균적인 사람으로 하여금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발언에 해당하고, 해당 발언을 들은 피해자들이 성적 굴욕감이나 수치심을 느꼈다고 진술한 사실도 인정되므로, 직장 내 성희롱 행위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분명하게 거부의 의사를 수회 밝혔음에도, 참가인이 계속 동일한 발언을 한 점 등을 고려할 때, 직장에서의 지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 “재량권 범위 벗어난 위법한 징계처분 아냐”
재판부는 “징계권자가 내부 양정 기준을 정하고 그에 따라 징계했다면, 정해진 지이계양정기준이 합리성이 없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해당 징계처분이 사회통념상 현저하게 타당성을 잃었다고 섣불리 단정해선 안 된다”고 대법원 판례를 들었다.
재판부는 “객관적으로 상대방과 같은 처지에 있는 일반적이고도 평균적인 사람의 입장에서 봐 어떠한 성희롱 행위가 고용환경을 악화시킬 정도로 매우 심하거나 또는 반복적으로 행해지는 경우, 사업주가 사용자책임으로 피해 근로자에 대해 손해배상책임을 지게될 수도 있을 뿐 아니라 성희롱 행위자가 징계해고되지 않고 같은 직장에서 계속 근무하는 것이 성희롱 피해 근로자들의 고용환경을 감내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 올 수도 있으므로, 근로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근로자에게 책임이 있다고 봐 내린 징계해고처분은 객관적으로 명백히 부당하다고 인정되는 경우가 아닌 한 쉽게 징계권을 남용했다고 봐서는 안 된다”고 대법원 판결을 제시했다.
한국부동산원 임직원 행동강령은 ‘임직원의 성희롱 및 성폭력 행위’,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한 직장 내 괴롭힘 행위’를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참가인(A부장)이 주장하는 사정(징계를 받은 적이 없고, 모범직원으로 표창을 받은 바 있으며, 상당 기간 성실하게 근무한 사실)을 모두 고려하더라도, 이 사건 해고가 사회통념상 현저하게 타당성을 잃어 재량권의 범위를 벗어난 위법한 징계처분이라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징계사유는 적어도 ‘비위의 정도가 심하고 중과실이거나, 비위의 정도가 약하고 고의가 있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파면~해임’의 징계를 할 수 있고, 성희롱과 직장 내 괴롭힘은 별개의 비위행위이므로 가중할 수도 있다”며 “따라서 이 사건 해고는 징계양정 기준에 부합하고, 징계양정기준이 위법하다거나 명백히 불합리하다고 인정할 특별한 사정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이 사건에서 인정되는 성희롱 횟수나 직장 내 괴롭힘 행위의 횟수가 적지 않고, 상당 기간 지속됐고, 또한 피해자들은 참가인(A)과 업무적으로 상하관계에 있으며, 나아가 B씨의 성희롱 피해는 인턴으로 근무할 당시에 가해진 것도 있어 근로관계 등에서 취약한 지위에 있던 피해자가 가해행위에 대해 제대로 대응할 수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따라서 징계사유의 불법성 내지 위법성은 상당히 크다”고 A부장을 지적했다.
재판부는 “참가인이 진정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전제에서 반성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참가인은 여전히 무의식적이고 반사적인 신체 반응으로서 신체 접촉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물론 이는 자신의 방어권을 행사하는 것이므로 위 주장 자체에 어떤 법률적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없으나, 피해자들의 진술뿐만 아니라 피해자들과 같은 사무실에 근무한 다른 직원의 명확한 진술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입장을 유지하는 것은 양정에 불리한 사정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짚어줬다.
◆ 법원, 헌법 가치 설명 눈길
특히 재판부는 이번 판결을 둘러싼 헌법적 가치도 판결문에 설시해 눈길을 끈다.
재판부는 “직장은 기본권인 직업의 자유가 실질적으로 실현되는 공간으로, 직장에서의 근로 제공은 직업의 자유 행사이고, 이를 통해 인격이 발현되고, 개성 또한 신장되며, 다른 한편으로 근로의 자유라는 기본권도 함께 행사돼 현실화 된다”며 “직장 내 비위행위에 대한 징계에 관련된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법률관계는 근로기준법 등 사법적 영역에 적용되는 개별 법률에 의해 1차적이고도 종국적으로 규율되어야 함은 당연하고도 마땅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렇더라도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의 관계에서나 근로자에 대한 징계가 소송에서 다투어질 때 법원이 재판청구권을 구현하는 과정 등에서도 헌법적ㆍ기본권적 가치는 반영해야 하므로, 성희롱 및 직장 내 괴롭힘은 단순히 근로관계에서 발생하는 비위행위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기본권 보장 내지 보호라는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성희롱 등은 양 당사자를 전제로 하는 것이므로 성희롱이나 직장 내 괴롭힘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징계대상자의 직업의 자유나 근로의 권리가 과도하게 제한되거나 침해되어서는 안 되지만, 직장 내에서의 성희롱이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직장 내 괴롭힘은 근로자의 기본권 실현의 공간에서 역설적으로 피해 근로자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행위이므로, 그 비위사실이 객관적으로 분명하게 인정되는 경우에는 엄격하게 제재할 필요가 있다”며 “그로써 사용자가 더 적극적으로 근로환경을 건전하게 유지함과 동시에 근로자의 인격권 등을 보장할 수 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이 사건 징계사유의 일부만을 인정하면서 그 사유만으로는 징계양정이 과중해 해고가 부당해고에 해당한다고 본 중노위 재심판정은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한편, 참가인 자격이었던 A씨는 이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로리더 최서영 기자 csy@lawlead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