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혜정 변호사 “직장 스토킹…법원, 사용자 민사 손배책임 인식 부족”
- “법원,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에 서울교통공사 사용자 책임ㆍ안전보호의무 위반 부정” - “직장 내 스토킹이 ‘사적 행위로 인한 예외적 사건’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해” - “범행 수단 상당 부분이 조직 내부 시스템에서 비롯됐다는 점 고려되지 않아”
[로리더]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피해자의 유족이 서울교통공사를 상대로 낸 민사소송에서 1, 2심 모두 가해자의 행위를 ‘개인적 원한에 따른 사적 범행’으로 한정하고, 서울교통공사의 민사책임을 부정한 것에 대해 문혜정 변호사는 “범행 수단의 상당 부분이 ‘조직 내부 시스템’에서 비롯됐다는 점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조순열)는 11월 7일 오후 4시 서울 서초동 변호사회관 정의실에서 ‘직장 내 스토킹과 사용자의 민사책임에 관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가해자에 대한 형사소송과는 별개로 진행된 민사소송에서 사용자인 서울교통공사의 민사적 책임이 인정되지 않은 것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열린 이번 심포지엄에서 첫 번째 발제자로는 문혜정 변호사가 나섰다.
문혜정 변호사(법률사무소 정)는 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 서울지방변호사회 교육위원회 위원,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위촉 폭력예방 통합교육 전문강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문혜정 변호사는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된 이후에 스토킹이 독립된 범죄로 사회적 인식이 크게 변화했고, 2023년에는 법 개정을 통해서 피해자 보호 조치가 강화되는 등 제도적 진전이 있었다”면서도 “그런데도 직장 내에서 발생한 스토킹에 대해서는 여전히 ‘개인 간 사적 갈등’으로 축소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문혜정 변호사는 “스토킹은 성폭력과 마찬가지로 성별 불평등과 권력관계에서 비롯되는 젠더 폭력의 한 형태”라며 “직장 내 스토킹 역시 개인 간의 단순한 갈등이 아니라, 직장 내 젠더 폭력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혜정 변호사는 “특히 직장 내 스토킹은 그 행위로 인해서 피해 근로자의 인격권과 노동권이 침해될 뿐만 아니라, 기업의 생산성과 조직 분위기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다른 스토킹과 구별해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혜정 변호사는 “스토킹 방지법에 따르면, 사용자는 스토킹 예방교육을 실시하는 등 직장 내 스토킹 예방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스토킹의 개념을 법에 따라서 정의하고 있다”면서도 “그런데 현행법상 ‘직장 내 스토킹’의 개념 자체를 명시적으로 정리한 규정은 찾아볼 수 없어, ‘직장 내’라는 범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해석상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문혜정 변호사는 “사무집행 관련성을 근거로 사용자 책임을 인정한 판례를 보면, 법원은 피의자의 행위가 직장 내 지위나 관계를 이용해 업무와 밀접하게 관련해 이뤄진 경우, 그리고 사용자가 이러한 위험을 인지했거나 인지할 수 있었음에도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은 경우, 사용자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며 판례들을 소개했다.
◆법원이 스토킹 행위의 사무집행 관련성 및 사용자 책임을 인정한 사례
서울동부지방법원이 2023년 5월 4일 선고한 판례(2021가합110309 판결)를 보면, 교회 부목사가 전도사인 피해자를 1년간 지속적으로 연락하고 만남을 강요하는 등 스토킹을 한 사안에서 법원은 가해자인 부목사뿐만 아니라 사용자인 교회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도 인정했다.
법원은 교회가 부목사(피고)와 전도사(원고)의 관계가 업무상 상하 관계에 있었고, 개인적으로 연락처를 서로 제공한 바가 없음에도 부목사가 전도사의 연락처를 획득할 수 있게 된 행위가 교회를 매개로 이뤄졌다고 인정했다.
또한 원고에게 행한 강제 추행이나 스토킹이 이뤄진 장소가 모두 교회의 관리 감독이 미치는 공간이었고, 대체로 교회의 사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시간상으로 근접해 발생했기에 사무집행 관련성과 사용자 책임을 인정했다.
◆법원이 스토킹 행위의 사무집행 관련성 및 사용자 책임을 부정한 사례
다음으로 문혜정 변호사는 스토킹 행위에서 사용자 책임이 부정된 사례를 소개했다.
사용자 책임이 부정된 사례인 춘천지방법원 2021년 4월 21일 선고 판례(2019가단57059 판결)를 보면, 업무 시간이 종료된 이후 사적인 술자리에서 발생한 사안이다.
원고가 피고 회사에서 스키강사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동료 직원으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은 사안에서, 동료 직원의 불법행위는 업무시간 종료 후 술자리에서 발생한 것이어서 외형적ㆍ객관적으로 봐도 피고의 사무집행과 관련이 없다고 봤다.
◆법원이 스토킹 행위의 근로계약상 안전보호의무 위반을 인정한 사례
사용자의 안전보호의무와 관련한 사례인 서울고등법원 2007년 11월 15일 선고 판례(2006나80980 판결)을 보면, 가해자인 상급자가 피해자인 하급자에게 지속적으로 접근해 사적으로 만나달라 관계를 요구했고, 이로 인해 하급자가 스트레스를 받았다. 상급자는 야간 당직 후 퇴근하는 피해자를 쫓아가 자신의 차에 태운 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했다.
이 사안에서 피의자 유족들은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법원은 사용자 책임은 부정했지만 근로계약상의 보호의무 위반은 인정했다. 법원은 가해자가 망인에게 성적으로 접근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이러한 행위가 직무권한에 속하지 않고, 외관상 직무권한 내의 행위로 보이지도 않는다며 사용자 책임을 부정했다.
또, 법원은 가해자가 망인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것을 회사가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고 보이지 않아 망인의 사망 자체에 대해서 회사의 보호의무 위반 귀책 사유는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회사는 입사 초기에 미혼의 여성 근로자인 망인에 대해 직장 상급자인 가해자의 부당한 성적 접근과 간섭이 가능하게 취업 환경을 조성해 사용자로서 근로계약상 보호 의무를 다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고 법원은 해석했다.
구체적인 이유를 살펴보면, 망인은 입사 초기부터 인사 관리를 맡고 있는 상급자와 단둘이 접촉할 기회가 주어졌고, 교육 연수를 단둘이 가도록 출장 명령이 내려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계속적인 지도편달을 받게 되는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또, 회사는 산속 깊숙이 있는데, 그런데도 외딴 건물에서 혼자 야간당직 근무를 수행한 다음 밤늦게 퇴근해야 하는 상황에서 아무런 교통편을 제공하지 않아 직장 상급자(가해자)가 차량 제공의 명분으로 망인에게 접근할 여지를 줬다.
또한, 법원은 회사가 이 사건 사고가 발생한 후 가해자를 면직했을 뿐, 징계나 이에 준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원고들(유족)이 이 사건 사고의 실체를 파악하려는 것을 방해해 망인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봤다.
문혜정 변호사는 “법원은 대체로 가해자의 행위가 직무와 무관한 개인적 일탈로 해석되면 사용자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을 보여왔다”면서 “조직의 통제와 감독 범위를 벗어난 개인의 사적 행위로 사건을 규정해 사용자의 책임 범위를 제한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혜정 변호사는 “또, 법원은 사용자의 안전보호의무 위반을 이유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해당 사고가 통상 발생할 수 있다고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요건으로 본다”면서 “따라서 예견 가능성이 없거나, 행위가 개인적 원한에 의한 것으로 평가되는 경우에는 보호의무 위반 역시 인정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2020년 말부터 가해자(서울교통공사 직원)가 같은 공사 직원이자 입사 동기였던 피해자에게 지속적으로 접근을 시도했고, 피해자는 이를 거부하고 경찰에 신고(2021년 10월) 했지만, 오히려 가해자는 이를 이유로 피해자를 협박했다. 피해자는 가해자를 다시 고소했고, 공사는 가해자에 대해 직위해제 처분을 내렸다.
그런데 가해자가 직위해제된 이후에도 내부 전산망에 접근할 권한을 유지하고 있었다. 가해자는 이 전산망을 통해 피해자의 근무지, 근무조, 주소지 등을 확인했고, 이를 이용해 피해자의근무지를 찾아가 2022년 9월 14일, 신당역 여자화장실에서 피해자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이로 인해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서울교통공사에 대해 ‘전(全) 직원에게 다른 직원의 주소지를 검색할 수 있는 접근권한을 부여했고, 직위해제된 직원의 접근권한을 지체없이 말소하지 않는 등 안전 조치를 소홀히 한 사실이 확인된다’는 이유로 360만원의 과태료 처분과 개선 권고 조치를 내렸다.
피해자의 유족은 서울교통공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제기하면서, 공사의 개인정보보호의무 위반과 안전보호의무 위반을 이유로 한 불법행위책임, 근로계약상 보호의무 위반에 따른채무불이행책임, 공동불법행위와 방조책임을 주장했다.
문혜정 변호사는 “그러나 법원은 1심 판결(서울중앙지방법원 2024년 8월 30일 선고, 2023가합89239)에서 유족의모든 청구를 기각했다”면서 “법원은 공사가 직원 간 개인정보 접근권한을 광범위하게 부여해 직위해제된 직원의 권한을 말소하지 않은 사실은 인정되나, 그런 조치 미비와 살인 사건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민사책임을 부정했다”고 설명했다.
문혜정 변호사는 “안전보호의무 위반 관련해서 법원은 ‘범행이 피해자의 업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거나, 직장 내에서 통상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고 예측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구체적으로 가해자의 범행은 피해자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에서 비롯된 것으로, 피해자의 직무 수행이나 업무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었다’는 이유를 들었다”고 판결 내용을 전했다.
문혜정 변호사는 “또, 법원은 사용자가 근로자에 대한 보호의무를 부담한다고 하더라도, 직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특정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라며, 서울교통공사가 2인 1조 근무제를 시행하지 않은 것이 법적으로 위법하다고 단정할 수도 없고, 그러한 조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범행을 방지할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안전보호의무 위반 주장을 부정했다”고 밝혔다.
2심 판결(서울고등법원 2025년 7월 16일 선고, 2024나2044748)에서는 1심 판결을 대부분 유지하면서, 개인정보보호의무 위반으로 인한 정신적 손해에 한해 일부 책임을 인정했다. 사용자 책임 관련해서는 1심과 마찬가지로 ‘비록 범행이 공사 사업장 내에서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단순한 장소적 인접성만으로는 사무 집행 관련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유족은 이에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지난 11월 6일 기각됐다.
문혜정 변호사는 “안전보호의무 위반과 관련해서도 법원은 ‘공사가 2인 1조 근무제를 시행하지 않았고, 보호장비를 충분히 지급하지 않아서 범행 당시에도 피해자는 별도의 보호장비 없이 혼자서 여자 화장실 순회 업무를 하다가 사망해, 피고(서울교통공사)가 피해자를 비롯한 직원들에 대해 사용자로서 안전보호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지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면서도 “그러나 신당역 살인 사건은 개인적인 원한에 따른 계획적인 살인이라는 점에서 극히 이례적인 일로, 공사가 이를 구체적으로 예측하거나 예측할 수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는 이유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문혜정 변호사는 “그러나 개인정보유출로 인한 정신적 손해배상은 인정했다”면서도 “법원은 ‘공사가 직위해제된 직원의 내부망 접근 권한을 제한하지 않은 것은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른 안전성 확보 조치 의무 위반에 해당한다’면서도 이러한 의무 위반과 살인 사건 사이의 인과관계는 여전히 인정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문혜정 변호사는 “법원은 공사가 직위해제된 직원이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한 행위가 피해자의 정신적 손해를 발생시켰다는 점을 인정했다”고 밝혔다.
문혜정 변호사는 “이러한 법원의 판결은 가해자 행위를 개인적 원한에 따른 사적 범행으로 한정하면서 판단해, 조직의 관리체계나 개인정보보호, 안전관리상의 문제를 충분히 검토하지 못했다”면서 “그 결과 범행 수단의 상당 부분이 조직 내부 시스템에서 비롯됐다는 점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아 안타깝다”고 비판했다.
문혜정 변호사는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은 직장 내 스토킹이 개인적 일탈을 넘어서 조직의 관리체계와 개인정보보호ㆍ안전관리 문제와 긴밀히 연결돼 있음을 보여준 사건인데도, 법원은 1, 2심 모두 가해자의 행위를 직무와 무관한 개인적 원한으로 인한 범행으로 규정해 사용자인 서울교통공사의 민사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문혜정 변호사는 “다만, 항소심에서 개인정보보호 의무 위반을 이유로 피해자 측이 입은 정신적 손해에 대해 일부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면서 “직장 내 스토킹 사건에서 개인정보 접근권한 관리 부실이 피해자 인격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음을 명확히 판단했고, 향후 직장 내 젠더 폭력 사건에서도 개인정보보호 의무의 중요성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면서도 문혜정 변호사는 “그러나 여전히 법원의 판단은 사적 행위로 인한 예외적 사건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서 “직장 내 스토킹 사건에서 사용자의 민사책임을 판단하는 데 있어 조직의 예방에 감독의무, 정보 관리 의무 등 전반적인 안전 보호 의무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 좌장은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이사 김수영 변호사가 맡아 진행했다.
개회사는 조순열 서울변호사회장이 부득이한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해, 양윤섭 서울변호사회 총무이사가 대독했다.
발제자로는 문혜정 변호사(법률사무소 정)가 ‘직장 내 스토킹과 사용자의 민사책임 관련 판결 소개’, 박귀천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사용자의 안전보호의무와 예견 가능성’에 대해 발표했다. 세 번째 발제자로 김태선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법전원) 교수를 대신해 민고은 변호사(법률사무소 진서)가 ‘피용자의 동료 직원에 대한 사업장 내 범행과 사용자책임의 성부’에 대해 발표했다.
토론자로는 구미영 박사(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여성고용연구본부 본부장), 김기원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수석부회장), 서혜원 변호사(서울변호사회 관리이사)가 참여했다.
[로리더 최창영 기자 ccy@lawlead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