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배임죄 폐지’ vs 국민의힘 공방…경실련, 참여연대 우려 목소리
“대통령 면소용” vs “경제형벌 합리화” vs “재벌 면죄성 폐지”
[로리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7월 배임죄 등 경제형벌 재검토를 지시한 가운데, 여야와 시민계가 배임죄 폐지를 두고 열띤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논란의 포문은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열었다. 그는 9월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더불어민주당의 배임죄 폐지 방침에 대해 “배임죄를 없애버려 이재명 대통령이 ‘면소 판결’(을) 받게 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면소란 ▲확정 판결 ▲사면 ▲공소시효 완성 ▲법령이 바뀌어 형이 폐지되는 등 소송 요건이 사라져 선고 없이 재판이 종결되는 것을 뜻한다.
한동훈 전 대표는 “민주당 정권은 이재명 대통령 한 사람 구하기 위해, 배임죄 없애서 이 나라를 개판 만들겠다는 것”이라며 “머릿속에는 자기 재판 막을 생각뿐이고, 자기 재판 막으려 뭐든 하려는 가장 위험한 정권”이라고 비난했다.
현재 이재명 대통령은 이른바 ‘대장동 개발 사건’에 휘말려 있다. 검찰은 이재명 성남시장 시절 경기도 성남시 대장동 개발 사업 당시 화천대유 회사에 이익을 몰아주고 성남도시개발공사에 4895억원대 손해를 끼쳤다는 혐의(배임)로 기소했다.
이틀 후인 9월 23일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 모두발언에서 “배임죄 폐지는 민생경제 회복과 기업 활동 정상화를 위한 시대적 과제”라면서 “찬성한다면 민생경제협의체 안건으로 상정해 정기국회 내에 신속히 처리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이어 허영 더불어민주당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배임죄 폐지 목적이 이재명 대통령을 면소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한동훈의 주장은 배임죄 도입의 역사도, 법도 모르는 정치검사의 억지”라며 한동훈 전 대표를 비판했다.
허영 부대표는 “배임죄는 군사독재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기업을 길들이고 통제를 하기 위한 도구”라면서 “배임죄를 악용하고 남용했던 정치검사 시절의 습관을 버리지 못한 채 논리도 없이 정쟁만 쫓는 모습이 안쓰럽다”고 저격하기도 했다.
그는 “이복현 전 금감원장뿐만 아니라 국민의힘 고동진ㆍ송석준ㆍ심동욱 최고위원들도 배임죄 완화 내용이 담긴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면서 “국민의힘도 이재명 대통령 면소를 위해 법안을 발의한 것인지 되묻는다”고 반박했다.
허영 부대표는 “법원행정처 사법연감 분석에 따르면 배임횡령죄 무죄율은 평균 6.7%로 전체 형사범죄 무죄율 3.2%의 두 배”라면서 “무고한 사람들이 수없이 법정에 서야 했던 현실은 무시한 채 대통령 흠집내기만 외친다”고 배임죄 폐지의 당위성을 설명하기도 했다.
허영 부대표는 그러면서 “민주당이 배임죄 폐지를 추진하고 민사처벌을 강화하는 것은 형사ㆍ민사의 이중처벌 부작용을 바로잡고 경제형벌을 합리화해서 더 나은 기업 환경을 만들겠다는 의지”라고 풀이했다.
반면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24일 논평에서 “민주당은 배임죄 폐지를 내세우며, ‘경제계를 억압해 온 독재 정권의 유산’, ‘재계의 오랜 숙원’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궤변에 불과하다”며 “민주당이 진짜로 노리는 건 이재명 대통령 부부를 배임죄로부터 구해내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고 주장했다.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배임죄는 군사 독재의 산물이 아니라, 1953년 형법 제정 당시부터 존재했다”며 “건국 직후부터 있었던 죄를 뜬금없이 독재의 유산이라고 몰아세우는 건, 쇠고랑 찰 것 같으니 쇠고랑 자체를 없애자는 억지”라고 말했다.
배임죄 논쟁 불씨는 시민계로 번졌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전날 김병기, 허영 국회의원의 발언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의 비상경제점검TF 회의에서 언급한, 배임죄를 포함하는 경제형벌 재검토 지시에 이어지는 행보”라면서 “배임죄 폐지 논의는 정말 어렵게 진행된 상법상 이사 충실의무 강화의 취지도 몰각시키고 자본시장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 이유에 대해 경실련은 “배임죄 폐지 논의는 한국 자본시장의 기본 질서를 뒤흔들고, 기업 오너와 경영진의 전횡을 사실상 방치하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며 “한국 재벌과 대기업의 소유지배구조 현실을 고려할 때, 배임죄는 기업 경영자들의 권한 남용을 견제하는 핵심 장치”라고 폐지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어 배임죄에 대해 “총수 일가의 편법 승계, 일감 몰아주기, 부당 합병 등 자본시장 질서를 교란시킨 중대한 사건들에서 최소한의 책임 추궁 수단”이라며 “배임죄 폐지는 곧 재벌 총수와 대기업 경영진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임죄가 없는 해외에 대체 법령이 존재하는 사실도 피력했다. 경실련은 “미국의 경우 민사상 징벌배상제도와 디스커버리 제도가 존재해 소유경영자든 전문경영자든 고의나 중과실의 불법행위로 회사나 주주에게 끼친 손해를 끼치면 무거운 책임이 부과된다”면서 “제대로 된 징벌배상 및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 없는 현재 우리나라의 배임죄 폐지 수순은 주주의 권리와 자본시장 투명성을 훼손하는 어불성설”이라고 규탄했다.
경실련은 마지막으로 “배임죄 폐지 논의는 즉각 중단하고, 더 시급하고 중요한, 민사상 징벌배상 및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과 추가적인 재벌ㆍ대기업의 소유지배구조 개선 입법에 나서라”고 정부와 국회에 촉구했다.
같은 날 참여연대 역시 비슷한 취지의 논평을 냈다.
참여연대는 “사문화된 상법상 배임죄와 달리, 형법상 배임죄는 총수 일가와 지배주주의 전횡을 실무적으로 억지하고 있다”면서 “이를 폐지하면 지배주주의 사익 추구 행위를 처벌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며 배임죄 폐지 반대 의견을 냈다.
참여연대는 “배임죄를 없애는 대신 민사 제도를 강화하겠다는 것이 민주당 입장”이라면서 “정작 구체적인 해결책은 내놓지 못하면서 연내 전면 폐지만 주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상황에서 배임죄부터 없애면 지배주주가 가장 큰 수혜를 입는다”고 주장하면서 “지배주주가 기업에 손해를 입혀도 기업은 민사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희박하며, 소송 제기 근거 자료를 구하기 어려운 기업 내 다른 이해관계자들도 소송 제기가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참여연대는 “배임죄 폐지는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의 취지에 역행하며, 개정의 실효성을 저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며 배임죄를 폐지하는 것은 재벌 총수 일가의 숙원일 뿐”이라며 “시민이 바라는 것은 공정 경제와 경제 민주화임을 기억하라”고 정부여당에 요구했다.
[로리더 최서영 기자 csy@lawlead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