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정완 경희대 교수 “디지털미디어 환경변화에 적응해야”
정완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법전원) 교수
<디지털미디어 환경변화에 적응해야>
오늘날 디지털사회는 신문과 방송이 예전처럼 정보의 문지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자리를 대신할 더 나은 공론장도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전통 미디어와 유튜브 저널리즘은 서로를 비판하며 경쟁하지만, 결국 둘 다 비슷한 경제논리를 따르고 있다. 차이점은 형식과 검증 속도에 있으며, 공통점은 클릭출을 최대한 늘리려 한다는 점이다.
중요한 점은 누가 진실에 더 가까운가가 아니라, 누가 더 천천히 무너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먼저 전통미디어는 집단 취재능력과 체계적 검증절차, 그리고 법윤리적 책임을 갖추고 있다. 편집국의 지성이 작동하며, 서로 다른 출처를 교차검증하고 데스크가 이를 조율하는 시스템이 방파제 역할을 한다. 이 과정은 느리고 비용도 많이 들며, 때로는 오만하게 보일 수도 있다.
권력과의 유착, 출입처 중심 취재, 광고주 의존 문제도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러한 관성은 오보를 줄이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품질은 유지되지만, 반복된 오보가 신뢰를 약화시키고, 브랜드 가치를 위협하고 있다.
반면 유튜브 저널리즘은 신속성과 개인브랜드에 무게를 둔다. 취재원에게 직접 전화해 생방송으로 검증하고, 내부고발을 공개하기도 한다. 크리에이터의 직감과 실험정신이 돋보인다. 접근성은 민주적이며, 참여형 피드백을 통해 탐사에 새로운 정보를 더한다.
하지만 빠른 속도와 직접성은 검증과 반론권을 희생시킨다. 알고리즘은 시청시간을 늘리는 콘텐츠를 우선하고, 과장된 썸네일이 흔한 표현방식이 되었다. 개인화된 신뢰는 충성도 높은 채널을 만들지만, 제도적 신뢰를 대신하지는 못한다. 한 번 큰 실수를 하면 회복이 어렵다.
이 두 미디어의 경제모델은 모두 취약하다. 전통미디어는 광고와 구독수익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으며, 빅테크기업에 의존하는 상황이다. 유튜브는 플랫폼수익규칙에 종속되어 있다. 두 모델 모두 알고리즘에 지배되지만, 차이점은 알고리즘의 투명성에 있다. 전통미디어는 규제 안에 있지만, 유튜브는 대부분 규제 밖에 있다. 공론장은 법과 시장의 사각지대에서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있다.
윤리와 책임에서도 차이가 뚜렷하다. 전통미디어는 정정보도와 손해배상제도가 마련되어 있어 책임소재가 명확하다. 반면 유튜브는 플랫폼의 처벌에 의존하며, 잘못된 정보의 기준도 불투명하다. 검증은 경쟁논리에 묶여 있다. 유튜브 생태계에서는 메타저널리즘이 자연스럽게 생겨나지만, 조회수 경제의 룰 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윤리문제는 도구의 문제가 아니라 거버넌스의 문제이며, 현재 거버넌스는 불완전하다.
제작환경과 노동조건도 비교된다. 전통미디어는 낮은 초봉과 경직된 위계구조로 인재가 유출되지만, 품질관리체계를 갖추고 있다. 유튜브는 자유와 보상으로 인재를 끌어들이지만, 불안정성과 번아웃 문제를 낳는다. 두 쪽 모두 지속가능성이 취약한 상황이다.
따라서 전통미디어는 디지털포맷을 적극 도입하고 검증 및 반론권을 강화해야 한다. 유튜브는 출처공개와 데이터 아카이브 같은 투명성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알고리즘에 대한 사회적 책임도 져야 한다. 플랫폼은 공익노출, 검증절차, 허위정보 축소 로직을 제시해야 한다. 전통미디어는 조사보도를 확대하고, 유튜브 저널리스트들은 플랫폼거버넌스 문제를 다뤄야 한다.
독자와 시청자 역시 책임있는 주체임을 인정해야 한다. 미디어리터러시는 필수이며 출처를 확인하고 썸네일 해석법과 데이터그래프의 함정을 의심하는 능력은 시민의 기초적 기술이다. 구독과 후원이 좋은 콘텐츠를 보상하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아울러 공적 자금과 규제체계를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 공공영역은 방화벽을 강화하고, 민간 전통미디어에는 수익이 낮은 분야에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유튜브 생태계에는 협동조합형 저널리즘을 지원할 방안도 필요하다. 제재는 사후 처벌이 아니라 사전투명성 의무를 중심으로 만들어야 한다.
요컨대 전통미디어가 무너지면 신뢰가 사라지고, 유튜브 저널리즘이 실패하면 허구에 기반한 신화가 커진다. 공론장은 이 두 실패를 상쇄할 학습시스템을 얼마나 빨리 갖추느냐에 달려 있다.
저널리즘은 느린 기술이고, 민주주의 역시 느린 기술을 요한다. 빠름을 곧 지혜로 착각하지 말고, 플랫폼의 빠른 속도를 활용하면서도 검증의 느림을 존중하는 협력이 가능할 때 우리는 단순한 보도에 그치지 않은 진정한 지식을 얻게 될 것이다.
<위 글은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