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천NCC 위기 탈출…한화 “정도경영 원칙대로” vs DL “묻지마 지원”
[로리더] 효자 기업이었던 ‘여천NCC’의 경영 부진으로 대주주인 DL과 한화그룹이 갈등을 겪고 있다. DL이 입장문을 내며 언론에 호소하자, 한화그룹은 즉각 DL이 국세청으로부터 받은 추징금 내역을 제시하며 직격했다.
여천NCC는 한화솔루션(옛 한화석유화학)과 DL케미칼(옛 대림산업)이 각사 나프타분해시설(NCC)을 통합해 합작한 석유화학업체로 업계에서는 랭킹 3위에 있다.
석유화학업계는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직격탄을 맞았는데, 특히 여천NCC는 올해 초 국세청 세무조사에서 DL에 판매하는 에틸렌 등의 제품에 대해 ‘저가 공급’으로 법인세 등 추징액 1006억원을 부과받으며 경영난에 봉착했다.
지난 3월 여천NCC의 시황 악화 등에 따른 요청으로 DL과 한화가 각각 1000억원씩 증자를 실행했으나,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다.
추가 지원을 통해서라도 여천NCC의 부도를 막아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가진 한화는, 지난 7월 한화솔루션이 1500억원 대여를 승인해 여천NCC는 부도 위기를 넘겼다.
이에 DL케미칼도 11일 2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승인했다. 대주주 DL㈜도 DL케미칼에 대한 1778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참여를 승인했다.
이날 ‘DL. 여천NCC 정상화를 제대로 실행할 것’이라는 입장문을 낸 DL은 “여천NCC의 대주주로서 책임경영을 실천하고, 여천NCC의 제대로 된 정상화와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DL은 “여천NCC에 대한 정확한 경영상황 판단도 없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돈을 지원한다는 것이 주주와 경영진으로서 올바른 판단인지 의문”이라며 “한화 측의 주장과 같이 아무런 원인 분석 없이 증자만 반복하는 것은 여천NCC 경쟁력에 해악을 끼치는 ‘묻지마 지원’이며, 이는 공동 대주주로서 무책임한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이자, 배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목소리를 냈다.
DL은 “DL의 경우 여천NCC가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단가로 에틸렌을 거래하며, 여천NCC의 자생력을 키우고자 했다”며 “반면 한화는 여천NCC가 손해볼 수밖에 없는 가격만을 고수하는 등 자사에게 유리한 조건만 고집했다”고 한화를 비판했다.
하지만 한화그룹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먼저 한화그룹은 추가 지원을 통해서라도 여천NCC의 부도를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DL에 앞서 한화솔루션이 지난 7월 여천NCC에 1500억원 규모의 추가 자금 대여를 승인했다.
한화는 12일 “‘정도경영, 원칙대로’ 한화 VS ‘국세청 세무조사 결과 무시’ DL”이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내며 조목조목 구체적으로 반박했다.
한화는 “DL은 시장원칙과 법을 위반하고서라도 자신들에게 유리한 조건을 관철시키겠다는 의도로, 부도 위기에 놓인 여천NCC에 대한 즉각적인 자금지원을 거부하면서 여천NCC를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며 “원료공급계약 협상에서 자신들의 의사가 관철되지 않자 불합리한 주장을 하면서 객관적인 사실관계마저 왜곡하고 있다”고 직격했다.
한화에 따르면 여천NCC는 올해 초 국세청 세무조사에서 DL에 판매하는 에틸렌, C4R1 등의 제품에 대해 ‘저가 공급’으로 법인세 등 추징액 1006억원을 부과받았다.
한화는 “국세청은 이 거래가 시장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거래된 것이고, 이를 통해 DL이 부당한 이익을 취한 것으로 봐 법인세 추징액을 부과한 것”이라며 “전체 1006억원 중 DL과의 거래로 발생한 추징액이 962억(96%), 한화와의 거래 44억원(4%)”이라고 밝혔다.
세무당국의 추징금 부과에 대한 책임이 DL측에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DL은 “여천NCC의 자생력 확보와 직결되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인 원료가 공급계약에 대해서 한화는 자사 이익 극대화만 주장하고 있다. DL은 에틸렌 가격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판단”이라며 “하지만 가격 하한을 없애자는 한화의 입장이 고수되면서 가격협상은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화그룹은 “에틸렌은 한화와 DL에 함께 공급하는 제품인데, 국세청은 한화의 거래가격을 시가로 인정했고, 한화보다 저가로 공급받은 DL에 대한 거래를 모두 부당하다고 판단해 한화 대비 저가 거래금액에 대해 법인세를 489억원 부과 추징했다”고 반박했다.
한화는 또 “C4R1는 DL에게만 공급하는 제품으로 국세청은 DL에 대한 공급가가 시가 대비 낮다고 판단해 저가 공급액에 대해 법인세 등 361억원을 추징했다”고 덧붙였다.
한화는 시장원칙에 따라, 객관적이고 공정한 조건으로 원료공급계약을 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화는 “향후 불공정한 거래조건으로 인한 부당한 이득을 방지해 과세 처분, 불공정거래 조사 등으로 인한 법 위반 리스크 해소해야 한다는 원칙”이라며 “한화는 국세청이 한화에 대해 과세처분한 결과를 수용해 한화에 대한 계약 조건도 공정하게 시정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한화는 “DL 주장대로 불공정거래 조건을 이어갈 경우 여천NCC는 국세청으로부터 또 다시 과세 처분 등을 당해 거액의 손실이 초래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며 “따라서 한화 및 DL은 시장원칙에 따라 공정한 거래조건으로 여천NCC와 거래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화는 시장원칙에 따라 거래조건을 정하고, 거래조건의 적정성에 대해 외부 전문가의 객관적인 검증을 받을 용의가 있다고 전했다.
DL은 “공동 대주주인 한화그룹의 무책임한 ‘모럴 해저드’로 여천NCC의 경쟁력과 자생력이 무너지고 있다”며 “한화의 주장대로 원료가 공급 가격 계약이 진행되면 여천NCC의 부실은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화그룹은 “DL이 여천NCC를 지원하겠다는 명확한 의사 표명 없이 내용이나 용처가 불분명한 유상증자 사실을 공개하며 합작사인 한화솔루션을 근거 없이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입장을 언론에 공개적으로 표명한 것에 대해 유감”이라고 반박했다.
한화는 “DL은 지금이라도 시장원칙과 법에 따라 공정하고 객관적인 조건에 의한 원료공급계약 협상을 신속히 마무리해 줄 것을 요청한다”며 “그보다 앞서 여천NCC의 주주사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급박한 부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자금지원에 동참해 여천NCC 임직원과 지역사회, 석유화학업계의 불안을 해소해 줄 것을 호소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여천NCC지회가 12일 서울 을지로 한화빌딩 앞에서 “한화그룹의 여천NCC에 대한 신뢰와 지원에 깊이 감사드립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펼치며 한화에 감사를 표시해 눈길을 끌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