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삼성전자노조 ‘이면합의’ 지적한 간부 ‘제명’ 징계 가혹 효력정지
수원지법 “징계양정의 정도가 지나치게 가혹해 무효로 볼 여지도 있다” 가처분 인용
[로리더]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 조합원 보다 집행부 전임자들의 임금을 더 주기로 한 삼성전자와 ‘이면 합의’를 비판하는 간부를 ‘제명’ 징계했으나, 법원이 “징계양정의 정도가 지나치게 가혹해 무효로 볼 여지도 있다”며 제동을 걸었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은 삼성전자 소속 근로자들로 구성된 노동조합이다. 우하경은 전삼노 조합원이자 대의원이고, 한기박은 전삼노 조합원이자 기흥지부장이다.
지난 3월 삼성전자와 전삼노는 평균 임금 인상률 5.1%(기본인상률 3.0%, 성과인상률 2.1%) 등을 골자로 하는 2025년 임금ㆍ단체협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이후 전삼노 집행부가 전임자 임금(처우개선)에 대해 조합원이나 대의원들에게 보고도 없이 사측과 구두로 별도 협상을 통해 확정한 사실과 조합원들의 평균 인상율 보다 높은 임금 인상율로 합의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파문이 일었다.
이에 전삼노 한기박 기흥지부장, 우하경 대의원을 비롯한 간부들은 이면 합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합의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중징계였다.
전국삼성전자노조는 지난 4월 24일 운영위원회(징계위원회)를 개최해, 이면 합의에 대한 공개 비판이 반조직행위, 명예훼손 등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우하경 대의원과 한기박 기흥지부장에 대해 ‘제명 및 피선거권 3년 제한’ 징계처분을 결의했다.
한기박 지부장의 구체적인 징계사유를 보면 ▲대의원 모욕 강제퇴장 ▲사내 익명게시판 여론선동ㆍ명예훼손ㆍ업무방해 ▲간담회 영상 무단공개ㆍ2차 편집물 유포 등이다.
이에 우하경 대의원과 한기박 지부장이 반발했다.
특히 간담회 영상 무단공개 징계사유에 대해 이들은 “지난 4월 3일 기흥지부 간담회에서 진행되었던 내용을 촬영했고(사전 영상촬영 및 회의록 게시 예정 알림), 해당 영상은 전삼노 내 갈등 상황과 운영상의 문제점을 보다 많은 조합원들과 공유함으로써, 조합 운영의 투명성과 조합원들의 알권리를 위한 공익적인 목적으로 촬영됐다”고 밝혔다.
이들은 “전삼노 집행부가 사측과 별도 임금 인상율 합의로 인해 조합의 신뢰가 무너지고 투명한 운영이라는 기본 원칙이 깨진 상태였기 때문에, 집행부의 일방적인 운영 방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조합 운영의 투명성과 조합원들의 알권리를 위한 영상 기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특히 간담회는 조합을 살리기 위한 논의의 자리였고, 공적 지위에 있는 간부나 지부장 등은 일정 수준의 공개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우하경 대의원과 한기박 기흥지부장은 “징계사유가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설령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징계양정이 부당하게 과다하므로 징계처분은 무효”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냈다.
소송 진행 중인 지난 6월 26일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징계위원회는 우하경 대의원에 대한 징계처분(제명 및 피선거권 제한 3년)을 취소했다.
수원지방법원 제31민사부(재판장 신우정 부장판사)는 7월 3일 한기박 기흥지부장이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을 상대로 낸 징계효력정지 가처분에 대해 “본안판결 확정 시까지 한기박에 대한 제명 및 피선거권 3년 제한 징계처분의 효력을 정지한다”며 한기박 지부장의 손을 들어줬다.
우하경 대의원에 대해 재판부는 “채무자(전삼노)가 우하경에 대한 징계처분을 취소함에 따라 효력이 상실됐으므로, 그 효력 정지를 구하는 가처분은 신청의 이익이 없어 부적법하다”며 각하했다.
재판부는 먼저 “조합원으로서의 지위 자체를 박탈하는 제명 등의 수단에 의한 제재는 해당 조합원의 명예에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초래할 뿐 아니라, 조합원으로서 향유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권리를 박탈하는 점 등에 비추어, 제명이 조합원의 비위사실에 비추어 현저히 가혹하거나 객관적 타당성이 결여된 경우에는 무효”라고 전제했다.
재판부는 “채무자(전삼노)는 채권자(한기박, 우하경)들을 비롯한 일부 조합원들이 전삼노 집행부에 대해 사측과의 이면합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문제를 제기하자, 채권자들을 내부 문제 제기 주도 세력으로 봐 징계처분을 내린 것으로 파악된다”고 지적했다.
징계사유 중 ‘간담회 영상 무단공개ㆍ2차 편집물 유포’ 행위에 관해 재판부는 한기박 지부장과 우하경 대의원의 주장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한기박은 조합 집행부의 일방적이고 비민주적인 운영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조합 내부 상황을 조합원들에게 알리기 위해 간담회 참석자들에게 ‘영상 녹화 후 업로드 예정’인 사실을 고지한 뒤, 간담회 영상을 촬영 및 게시했다”고 짚었다.
재판부는 이어 “비록 한기박의 행위가 간담회 참석자들의 음성권 등을 침해할 소지가 있기는 하나, 간담회 영상 촬영ㆍ유포 경위 및 간담회가 단순한 사적인 모임이 아니라, 전삼노 임원들이 참석한 공적인 회의 자리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기박의 간담회 촬영 및 게시, 유포 등의 행위가 조합이나 조합원의 명예를 훼손했다거나 반조직행위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위 징계사유를 포함한 징계사유를 모두 살펴보더라도, 이는 업무 과정에서의 단순 실수 내지 과오에 해당하거나, 조합의 내부 상황을 알리기 위한 공익적 목적에 따른 행위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설령 징계사유가 일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전삼노 규약은 징계의 종류를 경고, 조합원 권리 및 자격 정지(최대 1년 이내), 직위 해임, 제명으로 구분하고 있고, 그중 ‘제명’은 노동조합의 구성원 자격을 완전히 박탈하는 가장 높은 수준의 징계로서, 그 처분에 있어서는 노동조합의 목적 달성의 관점에서 도저히 용납하기 불가능한 정도에 이를 것이 요구된다”고 짚었다.
재판부는 “한기박에 대한 주된 징계사유는 전삼노 집행부의 업무추진 내용을 조합원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과정에서 집행부와 마찰을 빚었기 때문인바, 비위행위의 내용 및 경위 등에 비추어 한기박의 조합원 자격을 보유하게 하는 것이 조합설립 목적에 현저히 반한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 등을 종합하면, 이 징계처분은 징계양정의 정도가 지나치게 가혹해 무효라고 볼 여지도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재판부는 가처분 보전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한기박이 전삼노를 상대로 본안소송을 제기해 승소하더라도 가집행선고를 붙일 수 없고, 본안판결 확정 시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점, 그때까지 한기박은 의결권, 피선거권 등 조합원이 가지는 권리를 행사할 수 없게 되는데, 이로 인한 손해는 금전적인 배상만으로는 완전히 회복되기 어려운 성질인 점, 반면 한기박이 본안판결 확정 시까지 임시로 조합원 지위를 유지하더라도 전삼노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 등이 발생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 점 등을 종합하면, 이 가처분 신청은 보전의 필요성도 인정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한편, 이 사건으로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 3기 집행부 전원이 사퇴했고, 전삼노는 비상대책위원회 체재로 운영되고 있다. 전삼노가 작년 7월 삼성전자가 사상 최초로 총파업을 할 당시 조합원이 가장 많았으나, 4일 현재 전삼노 조합원 수는 2만 9713명으로 계속 줄고 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