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차별 없다’던 LG “조끼 입으면 화장실 불가”…변호사들 “차별”
- LG트윈타워 보안요원 “화장실 가려면 노조 조끼 벗어라” - “ ‘내 눈앞에 조끼 입고 돌아다니는 놈 하나라도 보이면 알아서 하라’는 지시 내리지 않았을까” - 반복되는 대기업의 화장실 출입 저지 - 변호사들 “노조 활동 방해, 헌법 행동자유권 침해”
[로리더] LG전자가 발간한 2023-2024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LG전자는 “회사 고유의 ‘노경관계(노동자-경영자 관계)’ 개념인 상호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경영진 및 근로자 공동의 가치창출을 도모하고, 경영진과 근로자 공동의 주요 노경 이슈를 논의하기 위해 다양한 채널을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2018년, 취임하면서 “그동안 LG가 쌓아온 고객가치 창조, 인간존중, 정도경영이라는 자산을 계승ㆍ발전시키겠다”는 다짐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런데 서울 여의도에 있는 LG트윈타워에서 5월 26일, LG전자와 그 자회사 소속 노조 조합원들이 LG트윈타워 화장실을 이용하려고 하자 건물 보안요원들이 막아서는 일이 발생했다.
LG그룹은 구본무 회장이 ‘LG 의인상’을 제정해 시민들에게 수상하며 사회공헌활동을 하면서도, 정작 자회사 등 직원들에게는 단지 노조 조끼를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급한 용무인 화장실 이용조차 못하게 하는 비인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어 외부의 시선이 차갑다.
실제로 변호사들은 슬로건 ‘사랑해요 LG’의 이 같은 행태에 대해 차별행위로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노조활동 방해 등의 지적이 나왔다.
이날 11시 30분,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 소속의 LG전자지회, LG케어솔루션지회, 하이텔레서비스지회, LG하이엠솔루텍지회, LG하이프라자지회는 LG트윈타워 앞에서 ‘진짜 사장’ LG전자와 교섭하자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예정돼 있었다.
기자회견을 준비하던 노조 조합원들이 오전 11시경 LG트윈타워 내 화장실을 이용하려고 하자 LG전자가 입주한 LG트윈타워 보안요원들은 “노조 조끼를 벗지 않으면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다, 노조 조끼를 벗으면 화장실을 이용해도 된다”며 조합원들을 막아섰다.
이에 조합원들은 “공중화장실법상 트윈타워 1층 화장실은 개방화장실”이라며 “누구의 지침으로 화장실 이용을 막느냐”고 따졌고, 건물 보안요원들과 노조 조합원들 간 실랑이가 이어졌다.
공중화장실법과 공중화장실법 시행령에 따르면, 바닥면적의 합이 2000㎡(제곱미터) 이상인 건축물에 설치된 화장실은 공중이 이용하도록 제공해야 한다.
LG트윈타워의 바닥면적은 2000㎡ 이상의 건축물에 해당한다.
LG그룹이 2022년 발간한 ‘다양성 방침 Version 1.0’에 따르면, LG그룹은 “결혼 여부, 임신 여부, 종교 또는 신념, 성적 지향, 사회적 또는 경제적 계층, 교육, 정치적 성향, 노조 활동, 군 복무 등 임직원의 다양한 취향과 선택을 지지하며 이를 근거로 차별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LG그룹은 이렇게 노조 활동을 근거로 차별하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다.
또, LG전자는 2024년 발간한 ‘LG전자 인권 원칙 V1.0’에서도 “성별, 인종, 피부색, 성적 지향, 성 정체성, 출신 민족/국가, 장애, 임신, 결혼여부, 종교, 정치적 사상, 노동조합원 여부, 사회적 출신, HIV/AIDS 병력 등 개인적 특성으로 인해 남보다 적은 임금, 승진 누락 등의 불리한 처우를 받지 않아야 한다”고 스스로 “차별 및 괴롭힘 금지” 원칙을 세웠다.
여기에도 분명히 노동조합원 여부로 불리한 처우를 받지 않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LG전자는 조합원들이 LG트윈타워 건물에 들어와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았다. 실제로 이날 LG그룹 자회사 소속 조합원들은 LG트윈타워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하는 불편을 겪었다.
이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특정 복장을 했다는 이유로 개방화장실의 출입을 막는 것은 차별 소지가 있다고 지적한다.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신하나 변호사는 “집회 및 시위와 관련한 복장을 착용했다는 이유로 화장실 출입을 차단한 것은 헌법 제10조에서 보장하는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누구에게나 열린 곳이라면, 조끼를 입은 노동자에게도 당연히 열려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비판했다.
민변 노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신하나 변호사는 그러면서 “(개방화장실 출입 차단은) 차별행위이므로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이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2022년 6월, 국가인권위는 금속노조 조끼를 입었다는 이유로 조합원들과 판결문을 발급받기 위해 방문한 금속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장의 종합민원실 출입을 막은 서울남부지방법원의 행위를 ‘과잉 제지’라고 판단하고, ‘직무교육’ 시행을 권고한 바 있다.
이날 LG트윈타워 화장실 출입을 저지당한 뒤 기자회견 시작 직전, 이규철 금속노조 서울지부 조직국장은 “LG트윈타워 앞을 여러 번 왔는데, 올 때마다 그놈의 화장실 때문에 맨날 싸운다”면서 “여기 앞에서 출입을 막는 사람들이 어디 소속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들이 정말 금속노조가 싫어서 그러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규철 조직국장은 “대충 짐작은 가는데, 아마 LG의 구광모 회장이 금속노조를 그렇게 싫어하는가 보다”면서 “‘내 눈앞에 조끼 입고 돌아다니는 놈 하나라도 보이면 알아서 하라’는 지시를 내리지 않았을까 싶다”고 추측했다.
기업이 노동조합 조합원들의 개방화장실 출입을 저지하는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2023년 9월에는 서울 여의도 63스퀘어(63빌딩) 앞에서 피케팅을 하던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사무금융노조) 한화생명지회 조합원들의 화장실 출입을 사측이 막은 적도 있다.
이후 한화생명서비스는 한화생명지회 조합원들이 ‘성실교섭촉구’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조끼를 입고 있었다는 이유로 사내 시상식에 입장하는 것을 거부하고, 시상식이 열리던 일산 킨텍스 주차장에 출입했다는 이유로 지회장 등을 고소하기도 했다.
기업들이 ‘노조 조끼를 입은 조합원’들의 개방화장실 출입을 저지하는 것에 대해 이주한 변호사(민변 민생경제위원회)는 “현행법으로만 봤을 때는 (화장실 출입을 넓은 의미의) 노조활동으로 해석해서, 노조활동 방해로 문제 제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LG가 노조 조합원들의 화장실 이용을 가로막는 것에 대해 이주한 변호사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나아가 이주한 변호사는 “(LG트윈타워 보안요원들이) 정당한 이유 없이 무력을 행사해서 조합원들을 막은 것이라면 폭행 등으로도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본지는 LG전자가 이에 대한 입장(반론)을 전해오면 반영해 드립니다>
[로리더 최창영 기자 ccy@lawlead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