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성민 작가 “양비론의 함정”

2025-05-23     로리더
신성민 작가

<양비론의 함정>

최근 국민의힘 내홍을 다루는 보수 일간지들의 사설을 읽을 때마다 불편한 마음이 든다. 이들은 대선을 앞두고 유력 인사들이 서로 내부 총질을 하거나 비협조로 일관한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나경원, 한덕수, 권성동 사이에 슬며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를 끼워 넣는다. 모두가 문제라는 식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에서 이 같은 양비론(兩非論)은 본질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든다. 진짜와 가짜를 섞어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교활한 수법이다. 의(義)와 불의(不義)를 가리는 문제에서 “둘 다 문제”라고 말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명확하게 당부당을 가려 옳은 편의 손을 들어줘야 한다.

보수진영의 위기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일으킨 자초위난으로 시작됐다. 민주당의 무도한 줄탄핵과 국정운영 방해가 원인이라 해도, 불법 계엄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링 위에서 다투는 상대가 반칙을 했다고 관중을 향해 총을 난사하거나, 경기장을 불태우는 행위는 용납되지 않는다.

그동안 국민의힘 지도부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실정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했다. 오히려 매사 두둔하고 감싸기 바빴다. 치명적 자충수로 판명된 계엄에 대해서도 친윤 중진들은 누구 하나 바른 소리를 내지 않는다. 권력이 국민이 아닌 권력자 개인에게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통령 후보 경선을 블랙코미디로 만든 뒤, 막판에 한덕수 전 총리와의 억지 단일화를 완력으로 밀어붙였다. 새벽 3시에서 4시 사이에 원포인트로 후보자 접수를 진행하는 공당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권력이 민의에서 나오지 않고, 권력자 의중에서 나오는 것이라 믿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러한 어리석음은 화를 불렀다. 국민의힘이 스스로 공정과 상식을 저버린 결과, 민주당에 대한 비판은 무뎌질 수밖에 없다. 이재명 후보 비호를 위해 민주당이 법치를 무너뜨리는 모습을 목도해도 민심이 국민의힘으로 돌아서지 않는다. 친윤 세력에 대한 불호(不好)가 민주당에 대한 불호(不好)를 상회하기 때문이다.

반면 한동훈 전 대표는 친윤 세력과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당대표 시절 상습적으로 격노하는 ‘불통’ 대통령에 직언을 하고, 잘못된 점을 바로잡으려 노력했다. 초유의 불법 계엄 사태에서도 당당히 해제에 앞장섰으며, 탄핵에도 찬성했다. 야당이 아닌 여당 대표가 이런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이익이 아닌 공의를 택하면 막대한 개인적 손해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전 대표는 견리사의(見利思義)에 충실했다. 충직한 공복의 자세다. 사당화되어 버린 민주당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모습이기도 하다.

현 시점에서 보수 정신의 종자 씨는 한동훈 전 대표가 담지하고 있다. 정치권에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헌법정신과 시민의 자유를 떳떳하게 주장할 수 있는 유일한 인사이기 때문이다. 국민적 심판을 받고 파면당한 윤석열 전 대통령이나, 보신을 위해 법치를 파괴하고 지록위마(指鹿爲馬)와 위인설법(爲人設法)을 일삼는 이재명 후보 모두 얻을 수 없는 명분이다.

지금도 한 전 대표는 불법 계엄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외치고 있다. 상식적인 주장이다. 이 전제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보수진영의 회생은 요원하다. 정론지를 표방하는 언론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다 같이 애써 외면하는 중이다. 그동안 친윤 세력의 정치 공작과 ‘한덕수 띄우기’ 행태에 부역해 온 과오를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다. 그래서 비겁한 양비론으로 “모두가 잘못”이라며 어물쩍 넘어가려 한다.

그러나 변치 않는 사실이 하나 있다. 말은 말이고, 사슴은 사슴이다. 언젠가 짙게 드리운 그림자가 걷히면, 진실이 드러날 것이다. 언론사가 스스로 민심을 좌우할 수 있다 믿는 것은 착각이다. 권력도 심판을 받지만, 언론도 심판받는다. 민심을 담지 못하는 언론은 여론도, 사회적 공기(公器)도 아니다. 바람보다 먼저 눕는 ‘괴벨스의 주둥이’에 불과하다. 국민은 권력에 아부하는 펜이 아닌, 정론직필을 원한다.

<위 글은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