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성민 작가 “위기십결(囲碁十訣)”
<위기십결(囲碁十訣)>
당나라 현종의 기대조(황제의 대국 상대)였던 왕적신(王積新)은 바둑을 두는 사람이 새겨야 할 열 가지 교훈을 남겼다. 위기십결로 알려진 이 가르침은 널리 전파되며 다양한 분야에서 영감을 주고 있다.
바둑에 비유할 때 현재 국민의힘은 곤마(困馬)에 물린 상황이다. 8명의 예비후보가 나와 1차 경선을 치르고 있지만, 민심은 싸늘하다. 그러나 궁즉통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위기십결을 적용하며 헤쳐 나갈 방안이 있는지 한번 궁리해 본다.
먼저 부득탐승(不得貪勝)이다. 너무 이기려고 욕심 부리면 안 된다. 의욕이 앞서면 조급한 마음이 생기고, 자꾸 무리수를 두게 된다. 그러다 큰 실수를 범할 수 있다. 경선 과정에서 제살깎아먹기를 하거나, 과도한 충돌은 금물이다. 자칫 본선에서 상대에게 공격 빌미만 제공할 수 있다. 급할수록 신중하게 처신하며 순리대로 일을 풀어야 한다.
둘째는 입계의완(入界宜緩)이다. 상대방의 경계를 넘을 때는 신중해야 한다. 지금은 보수진영의 중층 구조가 무너져 빅텐트가 와해된 상황이다. 중도층이 대거 이탈하고, 강성층은 갈 길을 잃은 채 좌충우돌하고 있다. 잃어버린 표심을 되찾기 위해선 자극적이고 거친 언사를 삼가야 한다. 그렇게 하면 달아난 표심을 영영 회복할 길이 없다. 조용히 민심과의 교집합을 찾아 은밀하게 닻을 내려야 한다. 여기서 정치력이 발동된다.
셋째는 공피고아(攻彼顧我)다. 적을 공격하기 전에 먼저 나를 살펴야 한다. 이번 조기 대선은 자당 출신 대통령이 일으킨 계엄 사태 때문에 열린다. 따라서 국민의힘은 선거에 앞서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비상계엄과 관련해 떳떳하고 자유로운 인물이 아니면, 당선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봐야 한다.
넷째는 기자쟁선(棄子爭先)이다. 작은 돌 몇 개를 버리더라도 선수를 취해야 한다. 사소한 쟁점에 함몰되면 넓은 시야를 보여주지 못한다. 본선을 염두에 둔 굵직한 담론을 선점해 핵심 어젠다를 주도할 필요가 있다. 국민이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바는 명징하다. 국민의 평범한 일상을 뒷받침하고, 기업들이 국제 무대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뒷배가 되어달라는 것이다. 비본질적 이슈에 집착하는 모습은 하지 않는 게 좋다.
다섯째는 사소취대(捨小取大)다. 작은 이익을 탐내지 말고, 대세에 부합하는 요소를 취해야 한다. 지역구에서 싫은 소리 듣지 않으려고, 국민의 엄중한 명령을 외면하는 인사들이 있다. 다음 총선이나 지방선거 명분을 ‘의리’에서 찾으려는 계산이다. 이 같은 소리(小利)에 연연하면 절대 이 난국을 극복할 수 없다. 작은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큰 민심을 취해야 한다.
여섯째는 봉위수기(逢危須棄)다. 하수는 돌을 아끼고 상수는 돌을 버린다. 때로는 버리는 게 얻는 길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후보는 18일 “윤석열 대통령을 과거로 놔드리자”라고 했다. 본선에서 예상되는 민주당의 공격은 단순하다. “이번 계엄과 탄핵사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반복적으로 물을 것이다. 여기서 당당하게 말할 수 없으면 필패다.
일곱째는 신물경속(愼勿輕速)이다. 경망스러운 행동은 금물이다. 이번 대선은 촉박하게 진행된다. 민심을 다독일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하지만 그럴수록 신중해야 한다. 반(反)이재명 정서에 매달리는 행동도 자제해야 한다. 경쟁자의 그림자처럼 행동하면 안 된다. 내가 상대보다 낫다는 점을 다른 층위에서 논하면서, 직관적으로 와닿게 만들어야 한다.
여덟째는 동수상응(動須相應)이다. 말을 움직일 때는 서로 호응할 수 있도록 연결해야 한다. 정치에서 고립은 죽음이다. 중도 확장성을 염두에 두면서, 점이 아닌 선을 이어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 줌도 안 되는 세력의 눈치만 보다가는 당도, 사람도 망가진다.
아홉째는 피강자보(彼强自保)다. 적이 강할 때는 일단 안전을 택해야 한다. 한밤중의 홍두깨 같은 계엄 사태로 여당은 사지에 몰렸다. 이럴수록 당내 정치적 자산을 보호하고, 그들을 통해 새로운 명분을 세워 나가야 한다. 정치는 명분이다. 명분을 뺏기면 다 잃는다.
마지막은 세고취화(勢孤取和)다. 세력이 약하면 조화를 취해야 한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구석에 몰릴수록 더 외골수같이 행동하며 고립을 자처한다. 그런 행동은 용기가 아니다. 두려운 마음에 외쳐대는 단말마에 불과하다. 너른 품을 보여줘야 한다. 화해와 통합의 리더십으로 민심을 엮어내지 못하면 세력을 형성할 수 없다. “정치는 결국 세(勢)”라던 김영삼 대통령의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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