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정의연대 “상법 개정안 거부권…개미투자자 외면, 재벌 나팔수 자처”

2025-04-11     김길환 기자

[로리더] 금융정의연대(상임대표 김득의)는 11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지난 3월 1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상법 개정법률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주주권 보호와 자본시장 선진화를 외면한 결정”이라며 “수많은 개미투자자의 염원을 외면하고, 재벌의 나팔수가 되기를 자처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상임대표

금융정의연대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으로 ‘조기 대선’ 정국이 본격화된 지금, 정치권은 이 사안을 정쟁의 도구가 아닌 구조개혁 과제로 다뤄야 한다”며 “국회는 입법부의 책임을 다해 재의결에 나서야 하며, 각 당의 대선 주자들 또한 상법 개정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이를 대선 공약에 반영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번 상법 개정안은 기업의 이사가 충실해야 하는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넓히고, 전자 주주총회의 병행 개최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다.

금융정의연대는 “이 가운데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전체 주주’로 확대한 조항은 이사가 지배주주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는 것을 법적으로 제한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대변하도록 한 장치로, 국내 대기업의 고질적인 문제인 지배주주 중심의 불투명한 경영을 견제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연대는 “이는 이미 영미 등 선진국에서는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가 명문 또는 법원의 판례를 통해 확립된 원칙이고, 금융감독원 또한 지난 3월 19일 발표한 자료에서 상법 개정안의 내용을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평가했다”고 덧붙였다.

금융정의연대는 “그간 줄기차게 ‘글로벌 스탠다드’를 강조해 온 한덕수 대행이 이번 상법 개정안을 반대한 것은 매우 의아한 일”이라며 “한덕수 대행은 지난 1일 국무회의에서 ‘기업의 경영 의사결정 전반에서 이사가 민사ㆍ형사상 책임과 관련한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된다’며 ‘국가 경제 전체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소송 남발 등을 우려하며 상법 개정안에 반대했던 재계의 논리와 판박이”라고 지적했다.

금융정의연대는 “사실상 정부가 수많은 개미 투자자들의 요구를 외면하고, 재벌 대기업의 소원 수리에 나선 셈”이라며 “특히 ‘소송 남발’이라는 재계와 정부ㆍ여당의 우려는 침소봉대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금융정의연대는 “집단소송제가 도입된 증권ㆍ금융 분야에서 소송 남발은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다”며 “집단 소송을 제기하기 위한 요건 자체가 까다롭고, 입증책임과 비용 부담이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당초 상법 개정안에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 2일 한국거래소가 개최한 ‘2024년도 증권ㆍ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이사회가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액주주의 이익을 책임있게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상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또한 지난 5월 27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상법상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를 도입하는 방안에 대해 법무부 및 금융위원회와 공청회를 거쳐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금융정의연대는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전체 주주로 확대하는 안을 정부가 직접 낸 것”이라며 “러다 한국경제인협회 등 8개 경제단체가 상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히자마자 돌연 입장을 바꿨다. 이는 정부 여당의 상법 개정안 거부가 대기업의 나팔수를 자처한 결과이며, 동시에 수많은 개미투자자의 염원을 헌신짝처럼 버린 것이라 볼 수 있다”고 질타했다.

금융정의연대는 “정부ㆍ여당은 상법 개정안 대신 자본시장법 개정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대안이나 절충안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상법 개정안은 모든 주식회사에 적용되는 반면,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상장기업에만 한정된다. 즉 비상장 기업, 대기업의 지주회사 등에는 적용되지 않아, 대주주 전횡을 견제하고자 하는 상법 개정안의 핵심 취지를 반영하지 못한다.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상법 개정안의 대안이 될 수 없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금융정의연대는 “남북 관계만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아니다. 국내 기업의 불투명한 지배구조 역시 외국인 투자자들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등 한국 시장이 저평가되는 핵심 요인”이라며 “국회는 상법 개정안을 재의에 부쳐, 시장 신뢰를 회복할 기회를 반드시 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상법 개정안에 대해 “시장의 공정한 룰의 확립이라는 측면에서 더 이상 피해 가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금융정의연대는 “임기 내내 ‘공정’을 외쳐온 정부ㆍ여당이 자본시장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이번 상법 개정안 통과에 협조하지 않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며 “이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주도한 더불어민주당 또한 조기 대선을 이유로 재의결을 미루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여선 안 된다. 현실적으로 재의결이 어렵다 하더라도, 입법부로서의 책무를 방기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금융정의연대는 “그러나 정부의 거부권 행사와 국회의 책임 방기로 사실상 현 정부 내 입법 추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며 “금융정의연대는 상법 개정안을 조기 대선의 주요 의제로 격상해 논의할 것을 촉구한다. 각 당의 대선 주자들은 상법 개정안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고, 핵심 개혁 과제로서 대선 공약에 반영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