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특별법, 국가가 자본과 공범돼 산업재해 가담하겠다는 것”

- 양은정 건강한노동세상 상임활동가 - “일자리 으뜸기업 선정된 스태츠칩팩코리아, 1년 만에 간 녹아내린 청년 노동자” - “장기간 노동 허용하자는 반도체특별법, 이미 장기간 노동에 시달리는 반도체 노동자” - “특성화고교ㆍ대학, 노동 환경과 조건 아닌 취업률과 매출액에만 관심”

2025-03-05     최창영 기자
양은정 건강한노동세상 상임활동가(왼쪽에서 두 번째)

[로리더] 양은정 건강한노동세상 상임활동가는 4일 “반도체 산업에서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산업재해 문제가 해결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반도체 특별법은 국가가 자본과 공범이 되어 산업재해라는 범죄에 가담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며 반도체 특별법에 반대했다.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과 재벌 특혜 반도체특별법 저지ㆍ노동시간 연장 반대 공동행동은 이날 오전 11시 국회 앞에서 “스태츠칩팩코리아 현장실습생 독성간질환 산업재해 규탄” 및 “현장실습생 생명과 건강을 밟고 세운 반도체산업, 노동자 안전과 건강 위협하는 ‘반도체 특별법’ 반대”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스태츠칩팩코리아 현장실습생 독성간질환 산업재해 규탄” 및 “현장실습생 생명과 건강을 밟고 세운 반도체산업, 노동자 안전과 건강 위협하는 ‘반도체 특별법’ 반대” 기자회견

이 자리에서 첫 번째 발언자로 나선 건강한노동세상 양은정 상임활동가는 “스태츠칩팩코리아는 지난 2015년 경기도 이천에서 인천광역시 영종도 경제자유구역으로 이전해 명실상부한 인천의 대표 반도체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면서 “인천시에서도 스태츠칩팩코리아를 앞세워 반도체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계획을 마련하겠다며 지자체 차원의 지원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고 배경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양은정 상임활동가는 “2020년에는 인천시 산업평화대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고교 졸업생과 실습생 등 청년 노동자가 88%에 이르는 청년 일자리 창출에 기여했다며 2023년 대한민국 일자리 으뜸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면서도 “그러나 이면에는 2020년 19살 특성화고 현장 실습생으로 입사해 유해 화학 물질에 노출되고 강제적인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 끝에 1년 만에 간이 다 녹아내리는 산업재해를 당한 청년 노동자가 있다”고 말했다.

양은정 상임활동가는 “반도체 제조 공정은 수많은 화학 물질을 취급한다”면서 “재해자가 근무한 공장에서 사용한 솔더 페이스트(솔더 파우더와 플럭스를 섞어 만든 납땜 재료), 플럭스(납땜 과정에서 금속 산화물을 제거하는 데 사용되는 산성 혼합물) 등은 간 독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납, 구리, 주석, 은 등과 해로운 휘발성 유기화학물 성분을 포함하고 있고, 고온 작업에 의해 벤젠, 포름알데이드 등 백혈병 유발물질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양은정 건강한노동세상 상임활동가(오른쪽)

건강한노동세상 양은정 상임활동가는 “세정실은 아세톤, 이소프로필알코올 등 유기용제 냄새로 코를 찌르는 듯한 역한 냄새가 진동했다”면서 “세척 기계가 있었으나 생산 속도에 맞춰 사용할 수가 없어서 손으로 직접 닦아야 했다”고 전했다.

양은정 상임활동가는 “역한 냄새와 독한 화학물질로부터 지켜주는 것은 고작 얇은 덴탈 마스크와 얇은 비닐장갑이었고, 이마저도 매번 찢겨 사실상 맨손으로 세척 작업을 진행했다”고 덧붙였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언급되는 사례인 스태츠칩팩코리아에서 근무하던 ‘선우’ 씨(가명)는, 반올림 등 기자회견 주최 측에 따르면, 2020년 10월 당시 18세에 고등학교 3학년으로 울산 모 마이스터고교에 재학하면서 현장실습생 신분으로 스태츠칩팩코리아에 입사했다.

선우 씨는 2021년 1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정규직으로 전환돼, 실습생 때와 마찬가지로 ‘칩 어태치(Chip Attach, 반도체 칩에 전자기판을 부착) 공정’에서 일했다. 그러던 중 2021년 10월, 몸에 이상증상이 처음 생기고, 같은 해 12월 23일 회사에서 조퇴하고 병가를 낸 뒤, 28일 서울아산병원에서 ‘급성간염을 동반한 독성간질환, 무형성 빈혈’을 진단받았다.

“스태츠칩팩코리아 현장실습생 독성간질환 산업재해 규탄” 및 “현장실습생 생명과 건강을 밟고 세운 반도체산업, 노동자 안전과 건강 위협하는 ‘반도체 특별법’ 반대” 기자회견

독성간질환 등의 진단 직후, 선우 씨에게 급성 간부전과 간성혼수 등 위급한 상황이 발생했고, 이듬해인 2022년 1월 간 이식 수술을 받았다. 당시 수술을 한 의료진들은 ‘간이 완전히 녹아내려 형체가 없었다’고 설명했고, 조직검사가 불가능할 정도로 완전히 손상된 상태라고 전했다. 선우 씨는 간 이식 이후에도 평생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 하고, 재이식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다.

선우 씨는 2022년 5월 회사로부터 ‘퇴직’ 처리됐고, 같은 해 9월 선우 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요양급여 신청서를 제출했다. 당시 주치의는 ‘급성간염을 동반한 독성간질환은 작업장에서 노출된 미상의 세척 용제에 의한 가능성이 높다’고 소견을 밝혔다.

그러나 스태츠칩팩코리아 측은 산업재해를 부인하고, 선우 씨의 질환은 음주 습관(특수건강진단표에 일주일에 1번, 하루 4잔 음주한다고 응답한 것을 근거로 의견 제출)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스태츠칩팩코리아에서 근무하다 급성간질환을 앓게 된 선우 씨의 아버지

선우 씨가 제출한 산업재해 신청으로 인해 2023년 10월 직업환경연구원의 역학조사와 사업장 방문 면담조사, 근로자 면담 등이 실시됐으나, 2024년 5월 불승인 처분 통보가 내려졌다.

반올림과 선우 씨 측은 “늦장 대응과 처리 지연, 현장조사 부실 등으로 규명이 안 되고 불승인으로 이어졌다”며 “당시 역학조사에 참여한 피해자를 대하는 회사 태도도 큰 문제였다”고 전했다.

이러한 이유를 근거로 2024년 8월, 선우 씨는 산업재해 요양급여 불승인 처분에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 소장을 접수했고, 현재 1심이 진행 중이다.

반올림 등에 따르면, 위 내용은 2024년 9월, 언론사 ‘셜록’을 통해 보도됐으나, 스태츠칩팩코리아 측은 셜록에 내용증명을 보내 “(선우 씨가 사용한) 세정용액은 물에 불과했고, 독성물질(유기용제)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과 함께 선우 씨가 “코로나19 백신으로 인해 독성간질환이 생겼다”는 주장까지 추가했다.

반올림 측은 회사의 주장에 대해 “백신을 맞기 이전부터 재해자의 몸은 이상증상이 시작됐다”고 반박했다.

양은정 건강한노동세상 상임활동가(오른쪽에서 두 번째)

건강한노동세상 양은정 상임활동가는 “반도체 산업은 고도로 자동화된 첨단 기술을 사용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노동집약적”이라며 “수많은 공정과 처리 과정에서 다양한 작업조건이 요구되며, 이는 노동자들에게 반복적인 스트레스와 물리적 피로를 초래한다. 매주 생산하는 제품이 수시로 바꿈에 따라 작업내용과 취급하는 화학물질도 수시로 바뀌었다”고 강조했다.

양은정 상임활동가는 “안전보건 교육에서 기억나는 것은 ‘친환경 제품이니 직접 닿거나 마시지 않으면 안전하다’는 말뿐”이라며 “안전 보건 교육 실태가 이러하니 바뀐 작업 방식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뤄질 리 만무했다”고 전했다.

양은정 상임활동가는 “그저 생산용지와 필요한 용액 등이 적힌 종이에 의존해 업무를 해야 했다. 하루 중 수면시간을 제외하면 삶의 절반 이상의 시간을 일터에서 보낸다”면서 “이러한 현실에서 노동 환경과 조건은 단순히 업무 수행의 차원을 넘어 노동자의 삶과 건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스태츠칩팩코리아 현장실습생 독성간질환 산업재해 규탄” 및 “현장실습생 생명과 건강을 밟고 세운 반도체산업, 노동자 안전과 건강 위협하는 ‘반도체 특별법’ 반대” 기자회견

건강한노동세상 양은정 상임활동가는 “따라서 반도체 산업의 안전보건에 있어 중요한 것은 단순히 어떤 화학물질을 사용하느냐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어떤 작업조건에서 다뤄지고 어떤 작업환경에서 일하고 있느냐도 함께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은정 상임활동가는 “어떤 화학물질을 사용하고 있는지를 넘어서 노동자가 화학물질의 유해 위험성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지, 사업장에서 제대로 관리 감독하고 있는지, 국소 배기장치 등 환기시설을 제대로 갖추고 가동하고 있는지, 사용하는 화학물질을 이 공정 과정을 통해 화학반응을 일으켜 또 다른 유해 물질을 발생시키지 않는지, 교대제 근무, 야간노동, 장시간 노동 등으로 인한 신체 리듬의 변화와 직무 스트레스 등 일터의 노동 조건, 환경 등을 종합해 사업장의 안전보건 관리와 노동자 건강관리가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은정 상임활동가는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 그리고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반도체 특별법은 반도체, 2차 전지, 디스플레이, 바이오 등 국가 첨단 전략 산업의 업무 중 연구, 개발 등에 대해서 노동시간 제한 규제를 풀어 장시간 노동을 허용하고 휴게와 휴일 등 규정을 적용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면서 “그러나 재해자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스태츠칩팩코리아의 노동자들은 안전보건 교육은 물론 기본적인 업무 습득을 위한 교육도 제대로 받을 수 없어 넘쳐나는 생산량에 쫓겨 장시간 노동에 이미 시달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양은정 상임활동가는 “장시간 노동은 그 자체로도 해롭지만, 반도체 산업에서 유해 화학물질과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노출되는 빈도와 강도가 장시간 노동과 더불어 높아진다는 점에서 더욱 해롭다”면서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과로사, 반도체 산업에서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산업재해 문제가 해결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반도체 특별법은 국가가 자본과 공범이 되어 산업재해라는 범죄에 가담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양은정 건강한노동세상 상임활동가(가운데)

건강한노동세상 양은정 상임활동가는 “인천시도 마찬가지로, 반도체 R&D 지원사업, 배터리, 바이오, 반도체 투자 유치를 위해 기업에는 조세 감면 등 온갖 특혜를 베풀어 주고 있으면서 정작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의 안전보건 목표인 ‘모든 종사자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사업장 조성’에는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양은정 상임활동가는 “인하대, 인천대 등과 같은 인천지역 거점대학, 인천반도체고등학교 등과의 산하 협력을 맺고 있지만, 관심 있는 것은 인천의 청소년 청년 노동자가 일하게 될 곳의 노동 환경과 조건이 아니라 지역 경제를 홍보할 수 있는 취업률과 매출액과 같은 것뿐”이라고 덧붙였다.

양은정 상임활동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가 드러나야 한다. 먼저 스태츠칩팩코리아에 열악하고 유해 위험한 노동 환경에 문제가 더욱 드러났으면 한다”면서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보상, 그리고 또 다른 더 많은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재해 방지 대책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양은정 상임활동가는 “나아가 고도화 찬반이라는 화려한 수식어 이면에 고통받는 현장실습생 청소년 노동자, 청년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세상에 드러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스태츠칩팩코리아 현장실습생 독성간질환 산업재해 규탄” 및 “현장실습생 생명과 건강을 밟고 세운 반도체산업, 노동자 안전과 건강 위협하는 ‘반도체 특별법’ 반대” 기자회견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는 정의당 서울시당 안숙현 위원장, 진보당 인천시당 용혜랑 위원장, 서울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박내현 활동가, 삼성노동인권지킴이 진창원 활동가, 반올림 정향숙ㆍ김상률 활동가,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우하경 대의원, 김용균재단, 전국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등이 참석했다.

기자회견은 권영은 반올림 상임활동가가 사회를 맡은 가운데, 양은정 건강한노동세상 상임활동가, 이상현 녹색당 대표, 이종란 반올림 상임활동가(노무사), ‘난 다’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활동가, ‘선우’ 씨의 아버지 등이 발언자로 참여했다.

이들은 다음과 같은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스태츠칩팩코리아 현장실습생 간독성 산재 책임져라!”
“유해산업에 현장실습생 취업시키는 교육 정책을 멈춰라!”
“반도체고등학교, 반도체 특성화대학 육성하는 반도체특별법 반대한다!”
“민주당은 반도체특별법 패스트트랙 지정을 철회하라”

[로리더 최창영 기자 ccy@lawlead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