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올림 이종란 “반도체 특별법, 산업의 유해성 간과…얼마나 더 희생?”

- “삼성의 황유미 씨부터 시작된 반올림, 18년간 수백명의 반도체 노동자들의 사망제보” - “스태츠칩팩코리아, 독성간질환으로 죽음의 고비 넘긴 선우 씨에 ‘코로나19 백신, 음주 습관 탓’하며 작업 환경상 영향 부인” - “반도체 특별법, 반도체고교ㆍ반도체특성화대학 등으로 젊은이들을 유해한 반도체 산업으로 이끌어”

2025-03-04     최창영 기자
이종란 반올림 활동가(왼쪽)가 발언하고 있다.

[로리더] 반도체특별법저지공동행동에서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종란 반올림 활동가는 4일 “2007년 3월 6일, 고(故) 황유미 씨가 스물셋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그를 대신해서 아버지가 삼성을 상대로 싸울 사람들을 찾아 나서면서 반올림이 결성됐고, 그로부터 18년이 흘렀다”면서 “18년동안 반올림은 수백 명에 달하는 암 피해자들, 희귀질환 피해자들, 사망제보를 들어야만 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과 재벌 특혜 반도체특별법 저지ㆍ노동시간 연장 반대 공동행동은 이날 오전 11시 국회 앞에서 “스태츠칩팩코리아 현장실습생 독성간질환 산업재해 규탄” 및 “현장실습생 생명과 건강을 밟고 세운 반도체산업, 노동자 안전과 건강 위협하는 ‘반도체 특별법’ 반대”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스태츠칩팩코리아 현장실습생 독성간질환 산업재해 규탄” 및 “현장실습생 생명과 건강을 밟고 세운 반도체산업, 노동자 안전과 건강 위협하는 ‘반도체 특별법’ 반대” 기자회견

이 자리에서 반도체 현장실습노동자들의 직업병 피해사례 및 반도체 특별법 폐기 촉구를 위해 마이크를 잡은 이종란 활동가는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화학 물질로 세척 업무를 하던 고 황유미 씨는 고작 (입사) 1년 8개월 만에 백혈병이 발병했고, 당시 그의 나이는 21살이었다”면서 “황유미 씨도 스태츠칩팩코리아에서 일한 ‘선우’ 씨처럼 18살, 고등학교 3학년 때 삼성전자에 취업했다”고 설명했다.

이종란 활동가는 “당시 반도체 공장의 여성 노동자들은 모두 고등학교 3학년 때 취업했는데, 고작 17~18세의 나이로 고향을 떠나 회사와 기숙사를 오가면서 위계적인 반도체 공장에서 찍소리도 못하면서 일했다”면서 “공장 시스템은 갓 취업한 10대 후반의 노동자에게 혹독했다”고 말했다.

이종란 활동가는 “그렇게 일하고 백혈병이 발병했지만, 황유미 씨는 병이 생긴 이유를 화학 물질 노출로 인한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하고, 그저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면서 “고 황유미 씨는 서늘한 클린룸에서 땀이 날 정도로 일했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종란 반올림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이종란 활동가는 “산업재해라는 의심은 황 씨의 아버지가 했는데, 이는 황 씨와 함께 일한 동료도 똑같은 급성 백혈병으로 숨졌기 때문”이라며 “2007년 3월 6일, 황 씨가 스물셋의 나이에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그를 대신해 아버지가 삼성을 상대로 싸울 사람들을 찾아 나서면서 반올림이 결성됐다”고 회상했다.

이종란 활동가는 “그로부터 18년이 흘렀고, 18년 동안 반올림은 수백 명에 달하는 암 피해자들, 희귀질환 피해자들의 사망 제보를 들어야 했다”며 “고작 20대, 30대에 치명적인 암과 희귀질환에 걸려 죽어간 수많은 이들이 너무나 많다”고 말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이종란 활동가는 “이것이 우리가 마주한 반도체 산업의 진실”이라며 “정부의 역학 조사 결과에서도 반도체 노동자들이 암과 백혈병, 생식 질환 등의 발병률과 사망률이 높다는 것이 확인됐지만, 아무런 대책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종란 반올림 활동가가 발언하다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그러면서 이종란 활동가는 “우리는 반도체 산업의 무분별한 확장을 반대한다”며 “탐욕스러운 대기업에 반도체 생산이 맡겨져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보다 이윤을 앞세워 병들고 죽어가는 상황은 한 번도 멈춘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종란 활동가는 “스태츠칩팩코리아에서 일하다가 독성 간 질환으로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긴 ‘선우’ 씨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코를 찌르는 냄새가 나는 세정실에서 얇디얇은 마스크에 의지해서 독성 화학 물질을 흡입하고 손가락 허물이 벗겨지도록 세정 업무를 했음에도 회사는 뻔뻔하게 산재를 은폐하며 세정약품 대신에 그저 물만 사용했다고 거짓말한다”고 주장했다.

이종란 활동가는 “국가도 책임이 크다. 사건이 발생한 지 한참 지나서 역학 조사를 했지만, 회사가 보여준 것 이상의 조사를 하지 못했다”면서 “고등학교 3학년 현장 실습생은 그저 학교에서 선생님이 추천한 기업에 아무 저항 없이 취업을 나가고 유해 물질 취급현장에서도 알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고 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스태츠칩팩코리아 현장실습생 독성간질환 산업재해 규탄” 및 “현장실습생 생명과 건강을 밟고 세운 반도체산업, 노동자 안전과 건강 위협하는 ‘반도체 특별법’ 반대” 기자회견

이종란 활동가는 “선우 씨도 주문형 반도체 생산에 있어서 매주 화학 약품이 바뀌었고, 이 화학 물질들의 성분이 무엇인지 몸에 해로운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면서 “정부와 여야 정치권은 반도체 산업의 유해성을 너무도 쉽게 간과하지만, 선우 씨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빈번하게 화학물질이 바뀌고 너무 많은 화학물질이 사용된다”고 강조했다.

이종란 활동가는 “삼성 반도체 기흥공장에서만 천여 가지의 화학 물질이 사용된다”면서 “스태츠칩팩코리아에서만 환경부 고시에 따르면 365가지의 화학물질이 사용되고, 단일 물질로 구분하면 111가지나 된다. 이 중에서 간에 독성이 있는 물질은 26가지”라고 밝혔다.

이종란 활동가는 “그러나 정부의 작업 환경 측정은 고작 15가지이며 그마저도 형식적으로 하기에 그쳤다”면서 “회사에서 관심이 있는 것은 오로지 생산성과 달성 매출”이라고 규탄했다.

이종란 활동가는 “선우 씨에게 독성 간염이 발생하자 회사는 코로나19 핑계를 대고 평범한 음주 습관을 탓하면서 작업 환경상 영향에 대해서는 굳건히 부인했다”고 주장하며 “부실한 역학조사 탓에 산재가 불승인된 선우 씨는 이에 불복해서 현재 산재 인정을 위한 행정소송 중에 있다”고 전했다.

스태츠칩팩코리아에서 근무하다 급성간질환을 앓게 된 선우 씨의 아버지

반올림 등 기자회견 주최 측에 따르면, ‘선우’ 씨(가명)는 2020년 10월 당시 18세에 고등학교 3학년으로 울산 모 마이스터고교에 재학하면서 현장실습생 신분으로 스태츠칩팩코리아에 입사했다. 선우 씨는 2021년 1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정규직으로 전환돼, 실습생 때와 마찬가지로 ‘칩 어태치(Chip Attach, 반도체 칩에 전자기판을 부착) 공정’에서 일했다. 그러던 중 2021년 10월, 몸에 이상증상이 처음 생기고, 같은 해 12월 23일 회사에서 조퇴하고 병가를 낸 뒤, 28일 서울아산병원에서 ‘급성간염을 동반한 독성간질환, 무형성 빈혈’을 진단받았다.

독성간질환 등의 진단 직후, 선우 씨에게 급성 간부전과 간성혼수 등 위급한 상황이 발생했고, 이듬해인 2022년 1월 간 이식 수술을 받았다. 당시 수술을 한 의료진들은 ‘간이 완전히 녹아내려 형체가 없었다’고 설명했고, 조직검사가 불가능할 정도로 완전히 손상된 상태라고 전했다. 선우 씨는 간 이식 이후에도 평생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 하고, 재이식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다.

선우 씨는 2022년 5월 회사로부터 ‘퇴직’ 처리됐고, 같은 해 9월 선우 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요양급여 신청서를 제출했다. 당시 주치의는 ‘급성간염을 동반한 독성간질환은 작업장에서 노출된 미상의 세척 용제에 의한 가능성이 높다’고 소견을 밝혔다.

그러나 스태츠칩팩코리아 측은 산업재해를 부인하고, 선우 씨의 질환은 음주 습관(특수건강진단표에 일주일에 1번, 하루 4잔 음주한다고 응답한 것을 근거로 의견 제출)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스태츠칩팩코리아 현장실습생 독성간질환 산업재해 규탄” 및 “현장실습생 생명과 건강을 밟고 세운 반도체산업, 노동자 안전과 건강 위협하는 ‘반도체 특별법’ 반대” 기자회견

선우 씨가 제출한 산업재해 신청으로 인해 2023년 10월 직업환경연구원의 역학조사와 사업장 방문 면담조사, 근로자 면담 등이 실시됐으나, 2024년 5월 불승인 처분 통보가 내려졌다. 반올림과 선우 씨 측은 “늦장 대응과 처리 지연, 현장조사 부실 등으로 규명이 안 되고 불승인으로 이어졌다”며 “당시 역학조사에 참여한 피해자를 대하는 회사 태도도 큰 문제였다”고 전했다.

이러한 이유를 근거로 2024년 8월, 선우 씨는 산업재해 요양급여 불승인 처분에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 소장을 접수했고, 현재 1심이 진행 중이다.

반올림 등에 따르면, 위 내용은 2024년 9월, 언론사 ‘셜록’을 통해 보도됐으나, 스태츠칩팩코리아 측은 셜록에 내용증명을 보내 “(선우 씨가 사용한) 세정용액은 물에 불과했고, 독성물질(유기용제)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과 함께 선우 씨가 “코로나19 백신으로 인해 독성간질환이 생겼다”는 주장까지 추가했다.

반올림 측은 회사의 주장에 대해 “백신을 맞기 이전부터 재해자의 몸은 이상증상이 시작됐다”고 반박했다.

이종란 반올림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이종란 활동가는 “10대의 몸은 유해물질 노출의 영향을 더 크게 받고 암이나 질환에 노출될 확률이 너무 높다고 한다”면서 “그런데도 정부와 국회는 반도체 특별법 안에 반도체 고등학교 육성, 반도체 특성화 대학 등 10대와 20대의 젊은이들을 유해한 반도체 산업으로 이끌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종란 활동가는 “얼마나 더 젊은이들이 희생돼야 하는가”는 물음을 던지며 “삼성 서울반도체에서 일한 이가영 씨도 28살에 림프종으로 세상을 떠났다. 서울 반도체에서 일하던 대학생 현장 실습생들은 방사선 피폭으로 손가락에 심한 화상을 입었고 평생 암 피해가 생기지 않을까 불안에 떨어야 한다”고 피해자들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이종란 활동가는 “갤럭시 폰을 만들던 승환 씨는 21살에 백혈병이 발병해 지금도 투병 중”이라며 “20대 비정규직 파견 노동자로 휴대폰 부품을 만들던 노동자들은 메탄올에 중독돼 6명이나 실명을 당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이종란 활동가는 “이처럼 너무 많은 청년들의 피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싼 인력, 더 젊고 문제 제기하기 힘든 현장 실습생, 10대, 20대 인력으로 반도체 산업을 키우겠다고 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선을 그었다.

이종란 반올림 활동가가 피해 사례를 언급했다.

이종란 활동가는 “민주당은 52시간 적용제외 조항을 제외하고 반도체 특별법을 패스트트랙 신속 처리 안건으로 지정했다”면서도 “그러나 우리 반올림과 반도체 특별법 저지 공동행동은 이러한 민주당의 패스트트랙 지정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그 이유로 이종란 활동가는 “반도체 특별법은 온갖 재벌 특혜 내용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라며 “K-칩스법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깎아준 법인세만 6조원 규모고, 용인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에는 무려 600조원의 공적 자금을 들여서 전력과 용수 등 공공재를 무한대로 퍼주려 한다”는 내용을 지적했다.

이종란 활동가는 “하루 80만 톤에 드는 물을 충당하려고 신규 댐 14개를 증설한다고 한다”면서 “반도체 칩 생산이 늘면 온실가스 배출도 그에 따라 늘어난다. 이에 따라 이렇게 재벌 특혜, 기후위기 주장, 환경 파괴하는 반도체 특별법에 반대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국회에는 현재 이철규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대표 발의한 반도체 특별법과,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대표 발의한 반도체 특별법이 제안돼 있다. 재계와 정부에서 요구하는 주52시간제 적용제외 조항은 이철규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는 있고, 김태년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두 법안 모두 반도체 특성화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육성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고 황유미 씨와 선우 씨 모두 고등학교 현장실습생 신분으로 각각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과 스태츠칩팩코리아에 입사했다.

이종란 활동가는 “노동자들에게는 건강하게 일할 권리가 보장되지 않은 채 자본의 이윤 몰입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것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스태츠칩팩코리아 현장실습생 독성간질환 산업재해 규탄” 및 “현장실습생 생명과 건강을 밟고 세운 반도체산업, 노동자 안전과 건강 위협하는 ‘반도체 특별법’ 반대” 기자회견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는 정의당 서울시당 안숙현 위원장, 진보당 인천시당 용혜랑 위원장, 서울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박내현 활동가, 삼성노동인권지킴이 진창원 활동가, 반올림 정향숙ㆍ김상률 활동가,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우하경 대의원, 김용균재단, 전국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등이 참석했다.

기자회견은 권영은 반올림 상임활동가가 사회를 맡은 가운데, 양은정 건강한노동세상 상임활동가, 이상현 녹색당 대표, 이종란 반올림 상임활동가(노무사), ‘난 다’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활동가, ‘선우’ 씨의 아버지 등이 발언자로 참여했다.

이들은 다음과 같은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스태츠칩팩코리아 현장실습생 간독성 산재 책임져라!”
“유해산업에 현장실습생 취업시키는 교육 정책을 멈춰라!”
“반도체고등학교, 반도체 특성화대학 육성하는 반도체특별법 반대한다!”
“민주당은 반도체특별법 패스트트랙 지정을 철회하라”

[로리더 최창영 기자 ccy@lawlead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