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디스플레이 산재피해자 “남성 노동자 자녀산재도 인정하라”
- “근로복지공단, 아버지의 자녀산재가 법에 없다는 이유로 아이의 아픔을 산재로 불인정” - “2024년 말, 자녀산재법 개정 기다렸는데 계엄 여파로 무산됐다 생각” - “국회 기재위, 조세특례제한법 개정하는 K-칩스법 의결…피해자 보호하는 법은 안 되나”
[로리더] 삼성디스플레이에서 근무하다 산업재해로 자녀가 차지증후군(눈, 심장, 후비공,발달, 생식기, 귀 등에 장애가 생기는 희귀질환) 판정을 받았지만, 자녀의 산재가 인정되지 않은 정OO 씨는 20일 “국회는 기업만 살피지 말고, 그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도 살피라”고 호소했다.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과 ‘재벌 특혜 반도체특별법 저지ㆍ노동시간 연장 반대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은 이날 오전 11시 국회 앞에서 “자녀산재법 개정 촉구 및 산재 심사ㆍ재심사 청구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반올림과 공동행동 등 주최 측은 “자녀산재법이 만들어지기까지 오랜 시간 싸워온 제주의료원 간호사들과 반도체 노동자들의 아픔과 노고가 있었다”면서도 “하지만 해당 법은 이 법 시행일(2023년 1월 12일) 이후 출생한 자녀부터 적용한다고 해 근본적으로 과거 피해자를 배제하는 큰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주최 측은 “또, (산재 신청 당사자로) 임신 중의 노동자, 즉 여성으로만 한정하고 있어, ‘남성 노동자’의 직업환경 영향으로 인한 자녀의 건강손상 문제는 업무와의 관련성을 인정받고도 산재보험의 적용에서 배제됐다”고 꼬집었다.
이날 산업재해 피해당사자로서 기자회견에 참여한 정OO 씨는 2004년 삼성전자 LCD사업부(현 삼성디스플레이)에 입사해 2011년까지 약 7년간 근무했고, 2007년 8월 아이를 가지기 전까지 3년간 근무했다. 정씨가 근무한 공정에서는 13개의 생식독성 물질들에 노출될 수 있다.
정자의 생산주기를 감안할 때, 아버지의 경우 임신 전 3개월의 유해요인 노출이 가장 주요하게 영향을 미치는데, 정OO 씨는 아이 임신 즈음에 평상시와 같은 근무를 했고, 2008년 5월 출생한 아이는 CHARGE(차지) 증후군 판정을 받았다.
차지증후군은 C(눈), H(심장), A(후비공), R(발달), G(생식기), E(귀)에 전반적인 장애가 생기는 희귀 질환으로, 정OO 씨의 자녀는 왼쪽 눈(C) 시신경이 없고 안검하수가 있으며 심장(H)에 방실중격결손, 대동맥 축착, 승모판 기형 등으로 인해 어릴 때 수술을 2차례 진행했다.
정씨의 아들은 발달(R) 측면에서도 키가 또래에 비해 많이 작아 14살인 현재 키는 132cm에 불과하며, 생식기(G)에도 문제가 있어 잠복고환으로 어릴 때 수술을 받았고, 현재도 다른 문제가 남아있다고 전했다.
또한, 왼쪽 귀(E)로는 듣지 못하고, 오른쪽 귀의 청력도 많이 약해 인공와우를 착용하고 있다.
이에 정OO 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을 했으나, 2024년 7월 불승인 결과를 받았다. 정씨는 2021년 자녀의 차지증후군에 대한 산재를 신청했고, 2024년 6월 서울남부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자녀산재의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 천안지사는 같은 해 7월에는 어머니의 산재가 아니라는 이유로 불승인을 통보했다.
정씨는 “질병판정위원회는 아이의 차지증후군이 제가 일했던 환경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고 판단했다”면서도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보험법에 아버지 자녀산재가 없다는 이유를 들면서 제 아이의 아픔을 산재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현행 산재보험법 제91조의 12(건강손상자녀에 대한 업무상의 재해의 인정기준)에 따르면, 법의 적용 대상으로 “임신 중인 근로자”로 정하고 있고, “이 법을 적용할 때 해당 업무상 재해의 사유가 발생한 당시 임신한 근로자가 속한 사업의 근로자로 본다”고 하고 있어, 남성은 대상이 되지 못한다.
이 같은 내용은 2024년 10월 22일 근로복지공단 등을 대상으로 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박종길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에 한 질의에서도 확인된다.
김주영 국회의원은 정 씨의 사례를 언급하며 “입법미비가 아니냐”고 물었고, 박종길 이사장은 “그렇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정OO 씨는 “산재는 인정하지만 관련법이 없어 산재 적용은 되지 않는다니, 이게 무슨 터무니 없는 얘기냐”면서 “산재보험은 일하다 아프게 된 사람들을 보호하는 보험이라고 알고 있다”고 호소했다.
정씨는 “제 아이 또한 제가 일하다가 아프게 태어나 다른 노동자와 다를 것이 없다”면서 “왜 산재보험은 여기 나온 부모들의 자녀들을 외면하는지 그 이유를 도저히 모르겠다”고 개탄했다.
정OO 씨는 “작년(2024년) 말에 자녀산재법 개정 소식을 기다렸는데, 계엄 여파로 무산됐다”면서 “저는 계엄으로 인해 저희 법 뿐만 아니라 모든 법 논의가 중단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정씨는 “며칠 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반도체 법인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심의 의결했는데, 그렇다면 저희 법도 얼마든지 다룰 수 있는 것 아니냐”면서 “기업에 혜택을 주는 법만 되고 피해자 보호하는 법은 안 되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정씨는 “이번 개정안(K칩스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반도체 기업의 세제혜택이 더 늘어나고 삼성전자도 그 혜택을 보게 된다”며 “국회는 여당 야당은 기업만 살피지 말고 그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도 살피라”고 자녀산재법 개정안의 신속한 의결을 촉구했다.
22대 국회에서는 아버지(남성 노동자)의 자녀산재를 인정하도록 하는 개정안이 장철민ㆍ김주영ㆍ이용우 국회의원(모두 더불어민주당)에 의해 발의된 상태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은 권영은 반올림 상임활동가가 전체 사회를 맡은 가운데, 천지선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조승규 노무사(반올림), 유청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공동행동 건강권팀장), 강미희 한국노총 금속노련 여성국장, 우하경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 대의원, 정향숙 씨(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자) 등과 산업재해 피해 당사자 3인(유OO 씨, 정OO 씨, OOO 씨/이슬아 노무사 대독)가 발언자로 참석했다.
이들은 다음과 같은 구호를 제창했다.
“과거 피해자 배제하는 태아산재법 개정하라!”
“노동자 건강 파괴하는 반도체 특별법 반대한다!”
“반도체 노동자 자녀 건강권 외면하는 국회를 규탄한다!”
[로리더 최창영 기자 ccy@lawlead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