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 근무, 암 투병 중 ‘7세 딸 자폐 진단’에 엄마의 호소

- “삼성 LED라인 근무하다 낳은 딸, 자폐성 장애에도 최소한의 조사도 없이 산재 ‘불승인’” - “근로복지공단, 바로 알기 어려운 자녀의 장애에 ‘신청기간 경과’ 이유로 단칼에 불승인” - “반도체특별법 얘기에 마음이 씁쓸…아프고 병든 반도체 노동자는 쓸모없는 존재인가” - “저에게 필요한 산재법은 개정 안 하고, 기업에게 필요한 반도체특별법만 집중해 참담”

2025-02-21     최창영 기자
삼성 산업재해 피해자 정OO 씨와 유OO 씨, 유청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로리더] 삼성그룹 전자 계열사에서 일하다가 본인과 자녀가 재해를 입은 산업재해 피해자들은 입을 모아 “우리에게 필요한 산재보험법은 개정도 안 하고, 기업에게 필요한 법만 집중하고 있으니 마음이 우울하고 참담하다”면서 태아산재법(자녀산재법) 개정안의 신속한 의결을 촉구했다.

반올림과 ‘재벌 특혜 반도체특별법 저지ㆍ노동시간 연장 반대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은 20일 오전 11시 국회 앞에서 “자녀산재법 개정 촉구 및 산재 심사ㆍ재심사 청구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반올림과 공동행동 등 주최 측은 “자녀산재법이 만들어지기까지 오랜 시간 싸워온 제주의료원 간호사들과 반도체 노동자들의 아픔과 노고가 있었다”면서도 “하지만 해당 법은 이 법 시행일(2023년 1월 12일) 이후 출생한 자녀부터 적용한다고 해 근본적으로 과거 피해자를 배제하는 큰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주최 측은 “또, (산재 신청 당사자로) 임신 중의 노동자, 즉 여성으로만 한정하고 있어, ‘남성 노동자’의 직업환경 영향으로 인한 자녀의 건강손상 문제는 업무와의 관련성을 인정받고도 산재보험의 적용에서 배제됐다”고 꼬집었다.

삼성 산업재해 피해자 정OO 씨와 유OO 씨, 유청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이날 산업재해 피해당사자로서 기자회견에 참여한 유OO 씨는 1997년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 입사해 약 18년 동안 근무했고, 2009년 9월경 자녀를 임신하기 전까지 같은 공장에서 근무하다 임신 10개월 동안 화성캠퍼스 LED EDS 공정에서, 출산 후에는 2016년까지 약 5년간 기흥공장 LED 공정에서 근무했다.

유씨가 근무한 기흥공장 반도체 3라인은 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처음 세상에 알린 고(故) 황유미 씨가 근무했던 곳과 동일한 유해 공정으로, 벤젠과 휘발성 유기화합물 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유씨는 2010년 7월 28일 첫 딸을 출산했으나 2세가 될 무렵 ‘눈 맞춤’이 적고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음이 발견돼 만 7세가 되던 2016년 1월경 자폐성 장애 2급을 판정받았고, 유씨 본인 역시 2022년 1월 대장암 진단을 받아 현재까지 항암치료를 지속하고 있다.

이에 유씨는 2024년 11월 11일, 근로복지공단에 본인의 대장암과 함께 딸의 자폐성 장애에 대해서도 함께 산업재해 신청을 했지만 한 달여 만인 12월 12일 ‘법상 신청기간 경과’를 근거로 불승인됐다.

삼성 산업재해 피해자 정OO 씨와 유OO 씨, 유청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

유OO 씨는 “LED 공정 유해물질들의 정체를 찾아 조사하기 위해 복잡하고 까다로운 과정이 있을 것이라 상상했고, 그런 절차로 인해 스트레스로 힘들어질 수 있으니 각오를 단단히 했다”면서도 “그런데 이렇게 접수하자마자 단칼에 거절을 당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고, 정말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너무나 막막한 심정”이라고 밝혔다.

유 씨는 “과거에도 법이 없었지만, 역학조사는 이뤄졌다고 들었다”면서 “그런데 왜 지금은 최소한의 조사도 하지 않고 불승인을 한 것이냐, 이렇게 바로 신청과 동시에 불승인이라니, 철저하게 무시당한 기분이고 정말 더 큰 마음의 상처만 남았다”고 답답해했다.

특히 유씨는 “충분한 조사를 하고도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고 설득했다면 모를까, 이렇게 아무 조사도 없이 곧바로 불승인된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다”며 “동료들도 젊은 나이에 암이 많이 생겼고, 후배 중에는 난소암으로 사망한 사례도 있고, 발달장애 등 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사례도 여럿”이라고 강조했다.

삼성 산업재해 피해자 유OO 씨

이에 유OO 씨는 국회의원들에게 “법을 빨리 개정해 산재신청을 할 기회를 충분하게 줘야 한다”며 “아이의 학습능력을 알게 되기까지는 태어난 후 최소 몇 년은 걸리고, 초등학교에 입학할 즈음에서야 (지적장애나 발달장애의 유무를) 알 수도 있다. 그리고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고 해도, 그게 과거 내가 일한 유해한 업무로 인한 것인지를 곧바로 연결해서 알아차리기는 어렵다”고, 충분히 산재를 신청할 기회를 열어달라고 호소했다.

유씨는 “최근 반도체특별법에 관한 얘기가 계속 언론에 나오는데, 마음이 씁쓸하다. 아프고 병든 반도체 노동자는 더 이상 쓸모없는 존재인 것이냐”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산재보험법은 개정도 안 하고, 기업에게 필요한 법만 집중하고 있으니 마음이 우울하고 참담하다”고 한탄했다.

삼성 산업재해 피해 당사자인 정OO 씨와 유OO 씨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유OO 씨는 그러면서 “부디 산재보험법 개정이 하루라도 빨리 돼서 제대로 조사가 이뤄져 산재로 인정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유씨 사례와 같이 ‘법상 신청기간 경과’를 이유로 제대로 된 조사도 없이 불승인 결정이 나는 사례를 개선하기 위한 법안으로는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2024년 10월 31일 발의한 사례가 있으며, 이는 과거 피해자 산재신청 기간을 법개정 시행일로부터 3년까지 연장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재벌특혜 반도체특별법 저지ㆍ노동시간 연장 반대 공동행동

한편, 이날 기자회견은 권영은 반올림 상임활동가가 전체 사회를 맡은 가운데, 천지선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조승규 노무사(반올림), 유청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공동행동 건강권팀장), 강미희 한국노총 금속노련 여성국장, 우하경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 대의원, 정향숙 씨(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자) 등과 산업재해 피해 당사자 3인(유OO 씨, 정OO 씨, OOO 씨/이슬아 노무사 대독)가 발언자로 참석했다.

이들은 다음과 같은 구호를 제창했다.

“과거 피해자 배제하는 태아산재법 개정하라!”
“노동자 건강 파괴하는 반도체 특별법 반대한다!”
“반도체 노동자 자녀 건강권 외면하는 국회를 규탄한다!”

[로리더 최창영 기자 ccy@lawlead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