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 백민 “국정원, 집회 참석 민간인 불법 사찰…국가배상청구소송”
- 피해자 대리인단장 백민 변호사 “핸드폰 보는 모습 찍어 ‘지령 수수 중’ 보고…황당” - “성일종 국민의힘 국회의원 사퇴 요구 방문에 ‘북한 배후조종’ 국정원 보고” - “윤석열 정부 반대하는 촛불집회 단순 참가도 북한 연계로 몰아가는 정부의 시각”
[로리더] 국정원감시네트워크는 23일, 국정원이 지난 3월 윤석열 정부를 규탄하는 집회에 자주 참가한 원고들이 북한과 연계돼 있을 것이라는 의심만으로 원고들을 탐문ㆍ채집하는 방법으로 비밀리에 사찰한 것과 관련해 국정원 직원과 국가를 상대로 국가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이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정원 민간인 사찰 국가배상청구 기자회견’에서 사회를 맡은 최새얀 변호사는 “이런 사찰은 한 국정원 직원이 사찰 중에 우연히 붙잡히면서 세상에 드러났고, 직원의 핸드폰 속에 시민단체 회원들을 미행하고 촬영하는 자료들이 대규모로 확인되면서 큰 충격을 안겼다”면서 “원고들은 국정원의 사찰 행위가 위법임을 확인받고, 사찰로 인해 입은 막대한 손해를 배상받고자 국가와 국정원 직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게 됐다”고 전했다.
국가배상청구 대리인단 단장을 맡은 백민 변호사는 “이 소송에는 원고가 총 12명인데, 오늘 참석한 주지은 씨와 그의 가족ㆍ동료 등 4명, 김수형 학생을 포함해 대학생진보연합 회원 등 7명, 촛불행동의 김민웅 대표가 12번째 원고로 소송에 참여한다”며 “이 사건은 올해 3월 국정원 직원의 불법 사찰 행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백민 변호사는 “당시에 적발한 국정원 직원을 지난 3월 경찰에 고발했지만, 경찰에서는 국정원법 위반이 없다는 이유로 최근 불송치 결정했다”며 “국정원이 내부 승인을 거쳐서 미행과 사찰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불송치, 혐의 없음으로 결정한 것인데, 이처럼 수사기관이 소극적으로 나서는 상황에서 원고들은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게 된 것”이라고 부연했다.
백민 변호사는 “국정원은 지난 3월, 그러니까 4월 10일 총선을 앞두고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는 집회에 자주 참가하는 원고들에 대한 대대적인 사찰을 진행했다”며 “북한과 연계돼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의심만으로 원고들의 사생활과 집회ㆍ결사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비판했다.
백민 변호사는 “이 사건 원고들에 대한 사찰 내용을 보면, 원고 주지은 씨는 평범한 가정주부이고, 라면 가게에서 아르바이트 근무를 하는 사람”이라며 “국정원의 사찰 대상이 돼서 주지은 씨와 같이 근무하는 가게 동료들, 남편과 초등학생 딸까지 국정원의 감시를 받았다”고 전했다.
백민 변호사는 “국정원은 주지은 씨의 주소지로 발송된 우편물까지 개봉했고, 일례로 주지은 씨가 길을 걸어가다가 핸드폰을 보고 있는 모습에 대해서는 ‘지령 수수 중’이라고 국정원에 보고되기도 했다. 황당하다”며 “이번 소송에서 원고가 된 대진연 회원 17명은 대학 선배 관계였던 주지은 씨와 몇 번 만나고 차를 마셨다는 이유로 역시 대학생들도 사찰 대상이 돼서 몰래 촬영을 당했다”고 밝혔다.
백민 변호사는 “일례로 대진연 학생들이 올해 3월, 이토 히로부미와 관련한 망언을 했던 성일종 국민의힘 국회의원 사퇴를 요구하기 위해 국민의힘 당사에 항의 방문했던 일을 두고 북한이 뒤에서 배후조종을 했다는 식으로 국정원에 보고됐다”며 “촛불행동의 김민웅 대표는 북한과의 연계가 의심된다는 막연한 이유로 출입국하는 비행기에 관한 정보까지 수집돼 국정원에 보고됐다”고 설명했다.
백민 변호사는 “대법원은 이러한 불법 사찰 행위에 대해서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쭉 인정해 왔다”면서 “▲정보기관이 민간인을 대상으로 평소 동향을 감시ㆍ파악할 목적으로 ▲개인의 집회ㆍ결사 활동이나 사생활에 관한 정보를 ▲비밀리에 수집ㆍ관리할 경우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불법 행위가 된다고 인정해 왔다”고 말했다.
언급된 사례는 ‘국군보안사령부의 민간인 사찰’ 관련 대법원 1998. 7. 24. 선고 (96다42789 판결), ‘기무사의 민주노동당원 사찰’ 관련 대법원 2012. 9. 13. 선고 (2012다45528 판결), ‘국정원의 조국 사찰’ 관련 서울중앙지방법원 2024. 1. 10. 선고 (2022나68331 판결) 등이다.
백민 변호사는 “형사판결에서도 직권남용죄가 된다고 본 판결이 꾸준히 있었다”며 ‘이명박 정부 비판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에서 전 국정원 방첩국장에 대한 실형(징역 7월)을 확정한 대법원 2021. 3. 11. 선고 (2019도3596 판결)를 짚었다.
백민 변호사는 “우리는 이 소송을 제기하면서, 윤석열 정부에 반대하는 집회-가령 촛불집회와 같은 곳의 단순 집회 참가자들에 대해서도 북한과 연계가 돼 있다고 몰아가는 정부의 시각에 아연실색하게 되는 상황”이라며 “지금까지 파악한 내용은 빙산의 일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고 의심했다.
백민 변호사는 “이러한 국가의 사찰 행위는 개인들의 사생활과 표현의 자유, 집회 결사 자유를 위축시키는 일”이라며 “소장에 다 쓰진 않았지만 이러한 불법 사찰에 동원된 국정원 직원들은 한 달에 특별 수당으로 700만 원씩 받고 있었다”고 꼬집었다.
백민 변호사는 “우리는 국정원이 정말로 국가 안보를 잘 지키는 유능한 기관이 되기를 바라는데, 국민의 혈세가 이렇게 (민간인 불법 사찰에) 쓰이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창피한 일”이라며 “과연 민간인들을 이렇게 사찰한 것이 국정원의 말대로 정상적인 안보 조사 활동이었는지 아니면 불법 행위였는지는 이 소송을 통해서 정식으로 가려보고자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청구금액과 관련해 백민 변호사는 “그간 이런 사찰 사건에서 손해배상 인정 금액은 1500만원 정도가 상한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과거 민주노동당원들을 사찰했던 사건에서 정치인이 국정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을 때도 최종 인정된 금액은 1000만원이었다”고 설명했다.
백민 변호사는 “앞으로는 이런 사안에서 국가가 징벌적인 배상을 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도 이뤄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서도 “우리도 그간의 손해배상 인정 금액을 감안해서 주지은 씨의 경우 2000만원, 다른 원고들은 1인당 500만원씩 위자료로 청구하는 정도로 제기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백민 변호사는 “과연 국정원의 미행과 추적 등 사찰 활동이 합법이었냐가 두 번째 쟁점인데, 이것은 경찰이나 국정원이 판단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다”며 “그래서 독립적인 사법부의 결정이 필요한 일인데, 과연 국정원 내부에서 미행ㆍ추적을 하도록 승인했다는 절차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국정원의 모든 활동이 합법화될 것이냐”고 지적했다.
백민 변호사는 “국정원 내부에서는 승인하는 행위라고 해도, 미행ㆍ추적하고 사생활을 파악하는 것이 정당한 국정원의 직무인지에 대해서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국정원법에는 반국가 단체와 연계된, 국가보안법과 관련한 혐의가 있을 때만 관련 조사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돼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는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최새얀 변호사가 사회를 맡은 가운데, 백민 변호사(민변 사법센터), 하주희 변호사(민변 사무총장), 사찰 피해자 주지은 씨와 김수형 대진연 회원, 장동엽 참여연대 선임간사, 강성국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활동가 등이 참석했다.
참가자들은 “법원은 국정원의 불법행위 인정하고 배상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로리더 최창영 기자 ccy@lawlead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