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코넥은 삼성전자ㆍ삼성SDI에 납품하니 당연히 삼성도 책임”
-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명숙 활동가 “삼성전자, 이미 비리 이유로 소프트웨어 협력사 거래 중단한 적 있어” - “중대재해처벌법 아직 미비, 검찰과 사법부 여전히 기업 편…대기업 책임 묻지 않을 수 없어” - “에스코넥과 거래 중단한다면, 삼성이 말한 준법경영과 인권경영에 진실성 입증”
[로리더]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명숙 활동가는 23명의 생명을 앗아간 아리셀 화재 참사와 관련해 “이제라도 (아리셀의 모기업, 에스코넥의 원청인) 삼성이 공급망 실사를 하고, 에스코넥과의 거래 중단을 표명한다면, 삼성이 말해왔던 준법경영과 인권경영에 최소한의 진실이 있다고 시민들이 생각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건강한노동세상, 기업과인권네트워크, 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 반올림,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노동위원회 등 41개 단체들은 8월 30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본관 앞에서 “에스코넥-아리셀 참사, 삼성의 책임 촉구 2차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지난 6월 24일 경기도 화성의 리튬배터리 생산업체 아리셀에서 배터리 폭발 화재로 23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는 참사가 발생했다. 8월 28일 박순관 아리셀 대표는 구속됐지만, 노동 및 시민사회단체들은 “박순관 대표는 아리셀뿐만 아니라 아리셀을 실질 지배(지분 96% 소유)하는 회사 에스코넥의 대표로, 에스코넥은 참사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단체들은 “에스코넥 총 매출 중 아리셀 비중은 1.6%에 불과하지만, 삼성전자 갤럭시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부품 납품 비중이 89.41%로 절대적”이라며 “삼성은 아리셀 화재 참사를 방조하지 말고, 삼성전자가 스스로 만든 준법경영 선언과 협력회사 행동규범을 위반한 에스코넥과의 거래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특히 단체들은 “박순관 아리셀 및 에스코넥 대표는 삼성 출신으로, 에스코넥은 삼성전자에는 휴대폰 부품을, 삼성SDI에는 2차 배터리 부품을 납품해왔다”고 강조했다.
이 자리에서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의 명숙 활동가는 “박순관 아리셀ㆍ에스코넥 대표가 구속됐으니까 이제 끝난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는 한국의 법과 제도도 미비하고 검찰과 사법부에 인권 감수성, 노동 안전 감수성, 생명에 대한 존중이 없다 보니까 실형을 살아도 1년, 길어야 1년 반일 것”이라며 “(박순관 대표는) 다시 복귀할 것이고, 그러면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어떻게 되겠냐”고 우려했다.
명숙 활동가는 “심지어 박순관 대표는 아직까지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고, 교섭조차 열리지 않고 있다”면서 “제대로 된 처벌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압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명숙 활동가는 “우리가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들 때, 경영진이 감옥에 가야 좀 달라지지 않겠냐고 얘기했다”면서 “그 외에도 징벌적 손해배상을 미국처럼 어마어마한 금액으로 매기면 안전과 생명에 대해 책임지지 않겠냐, 영업정지를 내릴 수 있으면 그러지 않겠냐고 했다”고 회상했다.
명숙 활동가는 “그러나 아직 중대재해처벌법은 미비하고, 검찰과 사법부는 여전히 기업의 편이므로 우리는 특히 대기업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면서 “국제사회에서도 기업과 인권에 대한 지침, 공급망에서 원청의 역할과 의무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명숙 활동가는 “글로벌기업인 삼성도 준법경영뿐만 아니라 인권 지침에 관련한 행동규범을 2013년부터 마련했다. 이번에 삼성의 책임을 묻기 위해 기업의 행동규범을 봤는데, 분량이 엄청나게 많았다”면서 “앞부분은 정말 화려한 수사로 돼 있다. 세계인권선언을 비롯해 각종 인권규약을 준수하며,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 등 화려한 인간 존중의 말이 첫 페이지에 쓰여 있었다”고 전했다.
삼성전자가 공개한 “삼성전자 협력회사 행동규범(버전 6.0, 2024년 3월 개정)”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다음과 같이 스스로 공급망 참여 및 책임 이행에 관한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5.12 공급망 참여 및 책임 이행’ 의무
삼성전자와 거래하는 모든 협력회사는 자사와 관련 있는 공급업체, 계약자 등과 본 규범에서 지향하는 책임있는 기업 활동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수립하고 관련 업체가 실천해 나갈 수 있도록 관련 지원과 업체의 책임 이행을 감독하는 의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협력회사는 행동규범의 목적 달성에 필요한 경우, RBA 기준이나 삼성전자에서 제공하는 기준 등을 참고하여 해당 국가의 법률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에서 주요 거래업체에 관한 실사 및 개선이행 관리를 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이행 책임을 충실히 지키지 않는 업체와의 거래 중단까지도 포함합니다.”
특히 이 내용은 올해 3월 개정된 것으로 삼성전자 스스로 “‘5.12 공급망 참여 및 책임 이행’ 의무 강화”라고 ‘내용 변경 이력’을 통해 밝히고 있다.
삼성SDI의 “삼성SDI 파트너사 행동규범(2023년 10월 개정)”에서도 다음과 같이 파트너사(협력업체)의 준법경영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모든 파트너사는 본 규범을 준수해야 하며, 해당 공급업체에 조립, 부품, 원자재 및 포장 등을 제공하는 모든 하위 파트너사에도 이를 준수하도록 요구해야 합니다. 삼성 SDI 또는 삼성 SDI 가 지정한 외부 기관은 파트너사가 본 규범을 준수하고 있는지 평가하기 위해 파트너사를 방문할 수 있습니다.
본 규범을 준수해야 할 책임은 파트너사에게 있으며, 위반 사항에 대한 개선조치가 요청 기한 내 진행되지 않을 경우 삼성 SDI 의 파트너사로서 계속적 거래관계가 불가하다고 판단되어 계약이 해지될 수 있습니다.
본 규범은 RBA 행동규범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ILO 및 ISO 등의 기관에서 제정한 글로벌 표준 및 가이드라인을 추가 정보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명숙 활동가는 “그런데 정말 그런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면서 “기업과 인권에 대해 국가의 법체계가 미비하더라도 기업의 책무는 크다는 것이 국제 기준이다. UN에서 2011년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지침’을 만들어 기업의 인권 존중 책임을 굉장히 강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명숙 활동가는 “삼성은 ‘이번에 참사가 난 곳은 아리셀이고, 우리에게 납품하는 곳은 아리셀이 아니라 에스코넥이다’라고 얘기할 수 있다”면서도 “그런데 에스코넥은 아리셀의 원청이며, 에스코넥은 삼성전자와 삼성SDI에 납품하므로 당연히 삼성에도 책임이 있다”고 꼬집었다.
명숙 활동가는 “많은 나라에서 공급망에 대한 인권 실사를 하도록 돼 있고, 한국도 마찬가지”라며 “그런데, 삼성전자는 에스코넥에 실사를 나간 적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명숙 활동가는 “삼성전자는 약 1년 전, 정기검사를 통해 일부 소프트웨어 협력사에 거래 중단 조치를 취한 적이 있다”면서 “특히 삼성에 납품하는 업체에게 거래 중단은 엄청난 타격을 줌에도, 일부 소프트웨어 협력사가 본사 임직원들에게 접대 및 향응했다는 비리를 이유로 거래를 중단했다”고 설명했다.
명숙 활동가는 “이번에는 23명이 죽었다. 참사 이전에도 여러 번 폭발과 화재가 있었지만, 어떤 조치도 없었다”면서 “과연 이것에 대해서 삼성은 그대로 묵과할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명숙 활동가는 “삼성의 행동규범에는 노동 안전이 분명히 들어가 있어, (에스코넥과) 거래 중단을 할 수 있는데, 왜 하지 않느냐”면서 “결국, 삼성전자와 삼성SDI도 아리셀 참사에 대한 책임을 부인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명숙 활동가는 “삼성은 2019년 위험성 평가와 준법경영 평가에서 에스코넥을 우수협력사로 지정했다”는 “삼성에서 준법경영 우수협력사로 지정한 기업에 대해 많은 노동자나 시민들은 ‘삼성이 그렇게 평가할 정도면 괜찮은 곳이겠네’라고 생각하고, 국방부도 이에 대해 눈 감을 수 있게 하는데 동조했던 책임이 있다”고 꼬집었다.
명숙 활동가는 “이런 책임이 없더라도 국제인권 지침에 따르면 삼성은 거래를 중단할 의무가 있고, 행동규범에도 분명히 쓰여 있다”면서 “더 이상 삼성은 ‘내가 납품받은 게 아니니까 상관없다’고 얘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명숙 활동가는 “얼마 전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위원장 이찬희)는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의 파업에 대한 입장을 밝힌 적이 있다”며 “왜 아리셀 참사와 에스코넥의 불법에 대해, 노동자의 생명을 앗아간 것에 대해 아무런 입장표명도 없느냐”고 물었다.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 위원장은 지난 4월 22일 전국삼성전자노조(전삼노)가 쟁의행위에 돌입한 것을 두고 “회사가 발전하는 과정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면서 “경제가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노사가 소통과 화합으로 결론을 내리길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명숙 활동가는 “이제라도 삼성이 공급망 실사를 하고, 에스코넥과의 거래 중단을 표명한다면, 삼성이 말해왔던 준법경영과 인권경영에 최소한의 진실이 있다고 시민들이 생각할 것”이라며 “삼성은 에스코넥과의 거래를 중단하고, 에스코넥을 2019년 준법경영 우수협력사로 선정한 것에 대해 잘못했음을 시인하라”고 촉구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은 권영은 반올림 상임활동가의 사회로 김태윤 아리셀 참사 유가족협의회 공동대표, 권영국 정의당 대표,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명숙 활동가, 조영훈 노동인권실현을위한노무사모임 사무국장, 이수열 민변 노동위 변호사, 김계월 비정규직노동자의집 ‘꿀잠’ 활동가,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금속노조 삼성SDI지회 조합원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기자회견 후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부터 강남역 일대를 행진하며 피켓팅을 했다. 피켓팅 도중 다음과 같은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삼성은 스스로 만든 준법경영 선언, 협력사 행동 규범을 따르라!”
“23명의 앗아간 아리셀-에스코넥 중대재해 참사에 삼성은 책임있게 행동하라!”
“삼성은 아리셀의 모기업, 에스코넥과의 협력업체 관계를 즉시 중단하라!”
[로리더 최창영 기자 ccy@lawlead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