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짜 두산밥캣을 적자 두산로보틱스 자회사로…주주들 충격 날벼락”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밸류업에 얼음물 끼얹는 두산"

2024-07-18     신종철 기자

“알짜인 두산밥캣을 떼어내는 두산에너빌리티의 70% 일반주주들도 당황스럽겠지만, 연 매출이 10조원에 육박하고 영업이익이 1조 3000억 넘는 상장회사 두산밥캣의 54% 일반주주들은, 매출 규모가 두산밥캣의 183분의 1인 530억원에 불과하고 무려 192억원의 영업손실을 낸 두산로보틱스와 같은 기업가치로 주식을 바꿔야 하는 충격적인, 날벼락을 맞는 상황”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이 지난 12일 “밸류업에 얼음물 끼얹는 두산, 그리고 그걸 방관하는 자본시장법”이라고 발표한 논평의 핵심이다.

포럼은 “자본시장법의 상장회사 합병비율 조항을 최대로 악용한 사례가 나왔다”고 두산을 지목하며 “매출 규모가 183배 차이 나는 두 계열회사 주식을 1:1(금액기준)로 교환할 수 있게 만드는 30년 묵은 자본시장법 시행령 도대체 언제 개정할 건가?”라고 국회를 겨냥했다.

두산그룹

◆ 두산그룹 “두산에너빌리티, 두산밥캣, 두산로보틱스 3사 모두 ‘윈-윈-윈’”

지난 11일 두산그룹은 사업 시너지 극대화, 주주가치 제고를 목표로 사업구조를 3대 부문으로 재편하기로 하고, 이를 위해 지배구조 개편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두산은 “소형 건설기계 시장, 협동로봇 시장에서 각각 글로벌 탑티어로 자리 잡은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가 사업적으로 결합하게 된다”며 “현재 두산에너빌리티 자회사인 두산밥캣은 인적 분할, 두산로보틱스와의 합병 및 포괄적 주식교환을 거쳐 두산로보틱스의 완전 자회사가 된다”고 밝혔다.

두산그룹 사업구조 재편

두산밥캣은 미니굴착기 등 소형장비와 지게차 등 산업차량을 생산하는 건설장비회사로, 연 매출이 10조 원에 육박하고 영업이익이 1조 3000억 넘어 두산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두산그룹은 두산밥캣을 자회사로 두고 있는 두산에너빌리티를 사업회사(존속법인)와 두산밥캣 지분 46%를 보유한 신설 투자법인으로 인적분할하고, 두산로보틱스는 신설 투자법인과 합병한다. 그런 다음 두산로보틱스는 두산밥캣 주주와 포괄적 주식교환을 통해 100% 지분을 확보한 뒤, 두산밥캣을 상장폐지하고 완전 자회사로 만들 계획이다.

두산에너빌리티, 두산밥캣, 두산로보틱스 3개사는 이날 각각 이사회를 열고 분할, 합병, 포괄적 주식교환 등을 결정했다. 두산 관계자는 “이번 재편의 대상이 된 두산에너빌리티, 두산밥캣, 두산로보틱스 3사 모두 ‘윈-윈-윈’할 수 있도록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밸류업에 얼음물 끼얹는 두산, 그걸 방관하는 자본시장법”

하지만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회장 이남우, 부회장 천준범 변호사)의 평가는 냉담하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우리나라의 기업 거버넌스를 개선해 자본시장의 건전한 성장 발전을 도모하고자, 기업의 가치를 중시하는 금융투자업계의 기관투자자 및 전문가(법조인, 교수 등)들을 중심으로 자율적으로 결성돼 활동하고 있는 비영리 공익법인이다.

포럼은 “7월 11일 두산그룹의 지주회사인 (주)두산을 비롯해 두산에너빌리티, 두산로보틱스, 두산밥캣 4개 회사가 일제히 대단히 복잡한 일련의 자본거래 공시를 냈다”며 “그리고 두산그룹의 승부수, 시너지를 알리는 기사가 인터넷을 도배했다. 하지만 모두 지배주주의 관점”이라고 말했다.

포럼은 “알짜인 두산밥캣을 떼어내는 두산에너빌리티의 70% 일반주주들도 당황스럽겠지만, 조금 더 쉬운 쪽을 생각해 보자. 연 매출이 10조 원에 육박하고 영업이익이 1조 3000억 넘는 상장회사 두산밥캣의 과반수인 54% 일반주주들은 어떤 상황에 처하는 것인가?”라며 “매출 규모가 두산밥캣의 183분의 1인 530억원에 불과하고 무려 192억원의 영업손실을 낸 두산로보틱스와 같은 기업가치로 주식을 바꿔야 하는 충격적인 상황”이라고 황당해했다.

포럼은 “작년 10월 상장한 (두산로보틱스) 이 회사는 폭등과 폭락을 거듭하는 테마주 성격이 강하고, 작년 매출 대비 시가총액 (PSR)이 100배(아직 이익이 나지 않아 PER 계산은 불가능)가 넘는 초고평가 상태로서 아직 시장에서 제대로 된 가치 평가를 받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두산로보틱스를 언급했다.

포럼은 “그런데 두산밥캣 주주는 그게 싫으면 그냥 최근 주가로 현금을 받고 주식을 회사에 팔아야 한다”며 “좋은 회사인데 주가가 낮다고 생각해서, 결국 본질가치를 찾아갈 것이라 고 믿고 오래 보유하려던 수많은 주식 투자자들이 로봇 테마주로 바꾸던지 현금 청산을 당하던지 양자 선택을 강요 받는 날벼락을 맞는 상황이 된 것”이라고 짚었다.

◆ 두산밥캣 2023년 매출 9조 7589억원, 영업이익 1조 3899억원
◆ 두산로보틱스 2023년 매출 530억원, 영업손실 192억원

두산그룹이 사업구조 재편을 발표한 지난 11일 기준 두산밥캣의 주당 가격은 5만 2000원에 시가총액은 5조 2130억원이었고, 두산로보틱스의 주가는 8만 5300원에 시가총액은 5조 5291억원이었다.

외관상 시총이 비슷하다 보니 주가를 고려해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 간 주식교환 비율이 1(두산밥캣) 대 0.63(두산로보틱스)으로 정해진 것이다.

그러나 실제 기업가치는 완전 딴판이다. 두산밥캣은 2023년 매출 9조 7589억원, 영업이익 1조 3899억원을 기록했다. 반면 두산로보틱스는 2023년 매출 530억원에 불과하고 게다가 영업손실 192억원을 기록했다.

7월 18일 양사의 주가순자산비율(PBR)도 두산밥캣 0.79배, 두산로보틱스 12.13배로 차이가 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포털사이트 주식 종목 토론실에는 “두산은 다시는 쳐다도 보지 않겠다”, “한심한 개미들 털리기 시작”, “주주들을 개잣으로 보는 거지”, “합병 철회”, “합병 무산” 등의 반응들이 쏟아지고 있다.

◆ “이게 바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민낯”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왜 이런 일이 발생했나? 자본시장법이 상장회사의 합병에서는 예외 없이 기업가치를 시가로 정하도록 강제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정확히는 직전 한 달, 일주일, 전날 주가의 가중평균이다. 누구나 엑셀 한 번만 돌리면 회사의 가치를 측정하는 모든 재무적 기법을 제치고 상장회사의 기업가치를 계산할 수 있는 전 세계에서 가장 쉽고 강력한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포럼은 “하지만 이런 방식은 오로지 한국에만 있다. 작년 자본시장연구원 연구 결과에 잘 나타나 있듯이, 미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상장회사라고 해서 주식시장의 시가만으로 합병에 필요한 기업가치를 산정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시가와 30% 이상 차이 나는 경우가 다수”라고 말했다.

포럼은 “그런데 최근 우리 금융위원회는 이런 상장회사 합병비율 산정 방식에 문제가 있어 제도를 개선한다고 하면서 비계열회사 간 합병에만 적용하고, 오히려 계열회사 간 합병에서는 시가를 강제하는 현행 방식을 유지한다고 했다”고 지적했다.

포럼은 “우리나라 합병의 99%는 계열회사 간 합병이고, 이때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같은 지배주주가 사실상의 의사결정을 하는 계열회사 사이에서 지배주주에게 가장 유리한 시기와 시가를 기준으로 합병 또는 주식교환이 이루어지면서 그 과정에서 일반주주들은 회사 성장에 따른 수익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일이 반복돼 온 역사인데 말이다”라고 말했다.

◆ “저평가 우량회사(두산밥캣)에 투자한 54% 일반주주에게 매출 규모 1/183인 고평가 테마주(두산로보틱스)와의 주식교환이라는 얼음물을 끼얹은 두산의 지배주주”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이게 바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민낯”이라며 “진정한 밸류업은 바로 이런 거래를 근본적으로 막아야 비로소 가능하다”고 밝혔다.

포럼은 “실제 행동을 해서 모두가 기대하는 밸류업 기조에 얼음물을 끼얹은 것은 두산이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을 넘어서 오히려 이런 일을 누구도 저지할 수 없도록 손발을 묶고 있는 것은 우리의 법과 제도, 자본시장법과 시행령”이라고 지목했다.

포럼은 “게다가 주주에 대한 일반적인 충실의무, 보호의무도 없으니, 두산밥캣의 이사가 아무리 이 상황이 상식적으로 부당하다고 생각해도 ‘이런 가격과 시기에 엄청난 고평가 테마주인 로보틱스 주식과 교환하는 것은 안 된다’고 말할 법적 근거가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포럼은 “이렇게 1주일이 멀다 하고 지배주주에게 유리한 새로운 기법이 나오는 한국의 자본시 장에서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보호의무와 같은 일반 원칙이 없으면 항상 법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기’ 밖에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저평가 우량회사(두산밥캣)에 투자한 54%의 일반주주에게 매출 규모 1/183인 고평가 테마주(두산로보틱스)와의 주식교환이라는 얼음물을 끼얹은 두산의 지배주주, 이것을 방관하고 오히려 촉진시키는 자본시장법과 시행령, 둘 중에 누가 더 책임이 있나?”라고 반문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