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지법 “뚜껑 없는 맨홀에 자전거 빠져 부상…지자체 절반 책임”
[로리더] 야간에 도로 갓길을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뚜껑(덮개)이 열려있던 맨홀에 바퀴가 빠지면서 곤두박질치는 사고를 당해 자전거 운전자가 크게 다친 사건에서 도로관리의 주체인 지방자치단체에게 손해배상책임이 있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수원지방법원의 판결문에 따르면 40대 A씨는 2013년 11월 12일 21:30경 자전거를 타고 아산시 온천대로의 왕복 4차선 도로 갓길을 따라 진행하던 중 도로에 설치돼 있던 맨홀 부근에서 넘어져 코뼈가 부러지고 얼굴을 다치는 등의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A씨는 “이 사고는 도로 위에 있던 덮개가 열려있는 맨홀에 자전거 앞바퀴가 빠져 중심을 잃고 넘어져 발생한 것으로, 피고의 도로 관리상 하자로 발생한 것”이라며 치료비와 위자료 등 1940만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반면 도로의 관리 주체인 아산시는 “원고 자전거가 맨홀에 빠졌다거나 이로 인해 원고가 넘어졌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고, 설령 맨홀에 자전거가 빠졌다고 하더라도, 이 사고는 전적으로 원고의 자전거 운행상의 과실로 발생한 것이지, 도로 관리ㆍ보존상의 하자로 인해 발생한 사고가 아니다”며 반박했다.
당시 맨홀엔 덮개(뚜껑)가 없었으며, 맨홀 앞에 주의를 알리는 라바콘(꼬깔콘) 2개와 오뚜기콘 1개가 놓여 있었다.
수원지법 제5민사부(재판장 최창석 부장판사)는 최근 야간에 자전거를 타고 도로 갓길을 가다가 맨홀에 빠져 다친 A씨가 아산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항소심(2017나83010)에서 아산시에 50%의 책임을 인정, “아산시는 A씨에게 757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것으로 21일 확인됐다.
손해배상액은 일실수입, 연가보상비(10일 입원치료), 기왕치료비와 향후치료비, 산악자전거 및 손목시계 파손 수리비 그리고 사고와 상해에 따른 위자료 100만원 등을 합한 금액이다.
재판부는 먼저 “이 사고는, 원고가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지나가다 자전거 앞바퀴가 덮개 없는 맨홀에 빠지는 바람에 땅으로 곤두박질치면서 발생한 것이라고 봄이 상당하다”고 봤다.
그 판단 근거로 “원고는 사고 당시 코뼈와 두개골 부분의 골절 등의 상해를 입고, 상당한 양의 피를 흘리는 등으로 심각한 부상을 입었는데, 피고가 가정적으로 주장하는 원고가 운전하던 중 단순히 옆으로 미끄러져 넘어진 정도에 불과하다면 위와 같은 정도의 상해를 입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원고의 상해 정도에 비추어 보면, 사고 당시 충격은 매우 컸던 것으로 보이고, 이런 점에서 자전거 앞바퀴가 맨홀에 빠져 몸이 공중으로 떴다가 땅으로 떨어졌다는 원고의 주장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또 사고 직후 사고지점을 목격한 목격자 역시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A씨 자전가 앞바퀴가 맨홀에 빠져서 뒷바퀴가 들려있는 상태였고, 당시 현장에 잇던 동료가 자전거를 맨홀에서 꺼냈다고 증언했다.
재판부는 “도로를 관리ㆍ보존하는 피고로서는 운전자 및 보행자들의 안전한 통행을 위해 야간에도 충분히 식별할 수 있는 안전 표지판, 맨홀 안으로 추락하지 않도록 안전 칸막이 등의 교통안전시설을 설치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해야 할 주의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게을리해 사고를 발생시켰다”며 “따라서 피고는 이 사고로 인해 원고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도로교통법 13조의2 제2항에 따르면, “자전거의 운전자는 자전거 도로가 설치되지 아니한 도로에서 도로의 ‘우측가장자리’에 붙어서 통행하여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런 규정에도 불구하고 통상 차도의 ‘갓길’은 자전거나 오토바이가 운행하는 것이 예견되고, 게다가 사고가 난 도로는 왕복 4차선 도로로서 사고현장과 같이 일몰 후이고 가로등의 점멸 등으로 시야가 좋지 않은 경우 자전거 운전자가 도로 우측 가장자리에서 이탈해 갓길로 진행할 가능성이 크고, 자전거 진행 방향 옆으로 차량이 진행하는 경우 이를 피하기 위해 맨홀이 설치된 갓길 지점까지 운행할 필요가 있을 수 있다”고 봤다.
이어 “이처럼 운전자나 보행자들의 갓길 진입이 충분히 예상될 수 있는 상황임에도, 피고는 미리 맨홀 근처에 자전거나 차량 등의 통행이나 접근을 금지하는 경고 표시나 안전 칸막이, 안전망 등을 설치하지 않고, 야간에 멀리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표시를 하는 등의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단지 맨홀 직전에 어두운 곳에서는 가까운 거리에서조차도 발견하기 어려운 라바콘과 오뚜기콘 몇 개를 세워뒀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재판부는 아산시의 주의의무 위반을 인정하면서도 손해배상책임을 50%로 제한했다.
재판부는 “당시는 야간으로서 시야 장해가 있었으므로 원고도 도로에서 자전거를 운행함에 있어 전방 및 좌우를 잘 살펴 진로의 안전함을 확인해 진행해야 함에도 이를 게을리한 채 안전모도 착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하는 바람에 사고를 당한 사실이 인정되고, 이런 원고의 과실은 사고의 발생과 손해의 확대에 기여했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이런 사정을 참작해 피고의 책임을 50%로 제한한다”고 말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