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과거사위 “김근태 고문은폐, 검찰 사과와 안보수사조정권 폐지 권고”

2018-10-11     신종철 기자

[로리더] 검찰과거사위원회(위원장 김갑배)는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으로부터 ‘김근태 고문은폐 사건’의 조사결과를 보고받고 심의해 “검찰은 경찰의 고문수사를 용인, 방조한 사실 및 고문을 은폐하는데 검찰의 권한을 남용한 사실을 인정하고 국민과 피해 당사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해야 할 것”과 “정보기관의 ‘안보수사조정권’을 폐지해야 할 것”을 권고했다고 11일 밝혔다.

‘김근태 고문은폐 사건’은 민청련 의장이었던 김근태가 국가보안법 및 집시법 위반 혐의로 1985년 9월 4일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강제 연행돼 23일간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검찰에 송치된 후 대공분실의 고문사실을 폭로하고 수사를 요구했다.

그러나, 검찰이 이를 묵살하고 고문경찰관에 대한 피해자와 관련자들의 고소ㆍ고발 사건을 무혐의 처분했으며, 오히려 당시 안기부 등 관계기관대책회의를 통해 고문사건 은폐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건이다.

검찰과거사위원회는 본 사건과 관련해 국가기관의 인권침해 의혹에 대해 검찰이 당시 안기부 등 관계기관대책회의를 통해 고문사건 은폐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는 의혹이 있다고 판단해 조사대상 사건으로 선정했다.

사진=법무부

- ‘김근태 고문은폐 사건’ 관련 의혹사항 -

 남영동 대공분실의 고문사실에 대한 검찰의 인지 여부 및 고문에 대한 수사 방기 등 직무유기를 했다는 의혹

검찰과거사위원회는 “검찰 송치 당시 김근태의 상태에 대한 여러 진술, 김근태 본인과 배우자 인재근의 진술 등을 종합하면, 검사는 적어도 검찰 송치일에 김근태가 고문을 당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위원회는 “김근태가 경찰 수사 과정에서 고문을 당했다는 주장을 구체적으로 했고 구두로 수사 요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건을 송치받은 검사는 고문사실 여부에 대한 진위확인을 하지 않았다”며 “이는 국민의 인권을 보장해야 하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수사과정에 대한 사법적 통제라는 검사의 직무를 유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근태 고문사건 은폐에 검찰이 가담하였다는 의혹.

검찰과거사위원회는 “2007년 국정원 과거사 조사 결과 확보된 안기부의 문건을 확인한 결과, 당시 안기부, 검찰, 치안본부 등이 관계기관대책회의를 개최해 김근태의 고문 폭로에 대한 대책을 수립했고, 이 대책이 검찰과 법원에서 실제로 시행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검찰이 고문 등 불법수사에 대한 수사를 소홀히 한 채, 김근태 고문사건 은폐를 위해 안기부가 제공한 대응방안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통해 김근태의 면회 및 접견금지 등을 논의하고 그대로 실행한 것은 수사 및 기소권을 독점적으로 가지고 있는 준사법기관으로서의 직무를 유기한 것은 물론, 고문사건 은폐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안기부가 1985년 10월 작성한 ‘학원 및 노조 배후 조직 민청련 수사 진행상황 보고’에 의하면, 김근태의 변호인들이 고문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신체감정 증거보전청구를 했으나, 안기부가 신체감정 증거보전 사건 담당재판부를 ‘강력 조정’ 하여 기각하도록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위원회는 “당시 안기부가 고문사실 은폐의 배후에 있었고, 법원과 검찰의 조직적인 공모가 있었음을 드러내고 있다”고 판단했다.

서울지검 공안부가 1985년 11월 작성한 ‘고문 및 용공조작시비에 대한 대응논리’에도 “동인이 앞으로 가족이나 변호인들을 만날 때 수사기관에서의 고문사실을 왜곡 주장할 가능성이 있음”이라고 기재돼 있다.

위원회는 “당시 김근태에 대한 접견금지는 국가보안법위반 사건의 죄증인멸 우려라는 표면적인 이유와 달리 김근태를 고문한 사실이 외부로 전파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보인다”며 “이는 검찰의 변호인 접견 방해를 통한 고문은폐였다고 평가된다”고 말했다.

김근태는 구치소에 접견 온 이돈명 변호사에게 전기고문의 흔적인 발뒤꿈치에서 떨어진 상처 딱지를 전달하려고 했으나 교도관에게 제지당했고, 1985년 12월 13일 서울구치소 보안과장 송선홍 등 10명의 교도관들에게 보관 중이던 상처 딱지를 압수당했다.

김근태의 고문사실을 구체적으로 기재한 장문의 탄원서가 검찰에 의해 재판기록에서 장기간 누락됐다.

검찰과거사위원회는 “이와 같이 검찰과 법원은 고문사실을 증명하려는 변호인의 증거보전청구를 기각하고, 변호인 접견 방해와 피고인 접견금지, 피고인의 탄원서를 열람등사하지 못하게 하는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 김근태 고문사건을 은폐하는 데 적극적으로 가담했다”고 지적했다.

 불법수사를 바탕으로 한 공소제기가 위법ㆍ부당하다는 의혹.

검찰과거사위원회는 “안기부는 김근태가 남영동 대공분실로 연행된 지 5일 후인 1985년 9월 9일 수사 초기 단계에서 이미 민청련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며, 이를 어떻게 홍보, 이용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을 세워놓았고, 검찰은 안기부의 ‘수사처리 방향’을 그대로 시행했다”고 밝혔다.

또 “검찰이 남영동 대공분실에 대해 현장검증을 했거나, 구속 장소 감찰을 했다는 어떠한 기록도 확인할 수 없고,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은 많은 사람들이 고문 등 가혹행위를 당했다는 주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이에 대해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조치를 취했다는 자료를 확인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위원회는 “검찰이 ‘수사기관의 고문’이라는 반인권적인 중대 범죄에 대해 적극적인 수사에 나서지 않고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오히려 공안 경찰관들의 불법체포와 불법감금을 경미하게 본 것은 수사절차에서 적법 수사 원칙과 인권 보호라는 검찰의 기본적인 직무를 유기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검찰과거사위원회는 “또한 김근태가 진술을 거부하자, 진술을 강요하기 위한 수단으로 민청련 간부들을 구속 수사하기도 했다”며 “결국 김근태의 국가보안법위반 사건은 안기부의 기획, 치안본부 대공분실의 수사, 검찰의 수사 및 기소, 법원의 재판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수사 착수 단계부터 이미 ‘민청련 조직 와해’와 ‘관련자 엄단’을 의도했던 안기부의 계획에 따라 결론을 내려놓고 진행됐고, 김근태의 고문사실은 검찰의 수사와 법원의 재판과정에서도 안기부의 방침대로 완전히 묵살됐으며, 이 과정에서 검찰과 법원은 김근태의 고문사실을 은폐하는 데 적극적으로 협조했다”고 지적했다.

 고문경찰관들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처분에 문제가 있었다는 의혹.

검찰과거사위원회에 따르면 불기소처분 수사기록이 보존되어 있지 않아 구체적인 수사내용이나 불기소이유는 정확히 확인할 수 없었다. 다만, 확인된 것에 의하면, 검찰이 김근태 국가보안법위반 사건이 대법원에서 유죄로 확정되기까지 김근태 고문사건에 대한 고소ㆍ고발사건을 방치하고 있다가 1986년 12월경 고문경찰관(피고소인)들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위원회는 “그런데 검찰이 고문경찰관들의 부인과 변명을 그대로 받아들인 점, 김근태의 국가보안법위반 사건에서 고문사실을 은폐하는데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점 등을 보면, 검찰은 처음부터 고문경찰관들에 대한 수사 및 기소 의지가 없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한편, 이근안으로부터 고문을 당한 또 다른 피해자인 김성학은 1986년 3월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 국가보안법위반죄로 구속기소 됐으나, 같은 법원에서 1986년 7월 무죄판결을 선고받고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이 사건에서 김성학이 72일간 영장 없는 불법 감금을 당했음이 기록상 명백하고 법원이 허위자백의 의심으로 무죄를 선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이근안 등 고문경찰관들에 대해 “원래 간첩 등 죄의 조사에는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고 피혐의자 신체의 자유를 보장하여 줄 때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주하므로 그 수사가 불가능함이 통례인 점” 등을 이유로 기소유예 처분을 했다.

위원회는 “당시 김근태 사건 등으로 고문 등 불법수사가 사회적으로 문제되었던 시기였음에도 위와 같이 기소유예 처분을 한 것은 검찰이 불법체포와 감금, 수사과정에서 고문, 가혹행위에 대해 얼마나 안일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검찰과거사위원회는 “검찰이 김근태 고문사건에서 고문경찰관, 특히 이근안에 대한 수사를 철저하게 했다면, 이후 김성학이 이근안에 의해 고문피해를 당하는 일을 방지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검찰의 불기소처분은 더욱 문제가 된다”고 판단했다.

 이근안의 10년 도피 경위와 검찰 수사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의혹.

검찰과거사위원회는 “검찰은 김근태를 전기고문한 자가 누구인지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근안의 다른 피해자인 김성학이 이근안 등 고문경찰관들을 고소한 사건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함으로써 고문경찰관들을 비호했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그 결과 이근안의 신원이 뒤늦게 밝혀지고 10년간의 장기간 도피생활을 할 수 있었는데, 결국 검찰이 이근안의 신원파악에 의지가 없었다고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검찰과거사위원회(위원장 김갑배)는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으로부터 ‘김근태 고문은폐 사건’의 조사결과를 보고받고, “검찰은 준사법기관으로서 수사를 주재하고 경찰의 불법수사에 대한 사법적 통제 권한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의 고문수사를 용인, 방조한 사실 및 고문을 은폐하는데 검찰의 권한을 남용했다”고 결론 내렸다.

이에 위원회는 “검찰은 경찰의 고문수사를 용인, 방조한 사실 및 고문을 은폐하는 데 검찰의 권한을 남용한 사실을 인정하고 국민과 피해 당사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해야 할 것”이라고 권고했다.

또 “정보기관의 이른바 ‘안보수사조정권’을 폐지해야 할 것”을 권고했다.

위원회는 “김근태에 대한 국가보안법위반 처벌과 그 과정에서 벌어진 고문은폐 사건은 안기부의 기획과 조정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관련 사건기록과 국가정보원 자체조사보고서 등 여러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며 “이러한 상황이 벌어졌던 것은 안기부가 이른바 ‘안보수사조정권’을 행사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검찰과거사위원회는 “김근태 고문은폐 사건에서 ‘관계기관대책회의’를 통한 안기부의 조정에 따라 검찰이 수사와 공소를 수행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이른바 ‘안보수사’ 또는 ‘공안사건’의 수사를 다른 사건과 다르게 취급하고 정보기관이 그 수사에 관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냉전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권위주의 정부 시대의 유물에 불과한 것으로 이에 대한 검찰의 인식 전환과 새로운 접근이 요청된다”고 지적했다.

위원회는 “특히 기소 여부의 결정은 검찰권의 핵심적 내용인 바, 안보 분야에 대한 제한된 수사권을 가지는데 불과한 정보기관이 검찰의 공소권을 통제하는 규정은 상위법인 형사소송법에 저촉되는 것이며, 이를 검찰이 용인하는 것은 스스로의 권한을 방기하는 것”이라고 봤다.

위원회는 “따라서 정부는 관련 규정의 개정 또는 폐지를 통해 정보기관이 검찰의 수사와 공소를 조정할 수 있는 근거를 하루 속히 없애고, 앞으로는 정보기관이 검찰의 수사와 공소제기에 관여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할 것”이라고 권고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