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참여연대 실행위원으로 활동하는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3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 사태에 대해 “헌법기관인 법원의 기능을 방해해 국헌을 문란케 한 내란행위 수준”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상희 교수는 또한 김명수 대법원장에 대해 사법농단의 진실규명을 포기했다고 질타하면서, 해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좌측부터 토론회 좌장을 맡은 장주영 변호사, 한상희 교수, 김지미 민변 사법위원장
좌측부터 토론회 좌장을 맡은 장주영 변호사, 한상희 교수, 김지미 민변 사법위원장

이날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법원행정처 추가공개 문건을 계기로 보는 사법농단 실태 긴급 토론회 : 사법농단 실태 톺아보기”에 참석해서다.

이번 토론회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민주주의법학연구회(민주법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참여연대, 국회의원 박주민 의원실, 박지원 의원실, 송기헌 의원실, 채이배 의원실이 공동 주최했다.

“사법농단 사태 : 법원행정처 사찰행위의 문제점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발제자로 나선 한상희 교수는 “아직까지도 제대로 청산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체제의 전방위적 사찰 및 재판거래의 패악”을 우려하면서 “양승태 체제에서 이뤄졌던 사법농단들 역시 헌법의 근간이 되는 법치주의의 핵심을 건드리고, 사법농단 작태는 헌정질서 자체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더욱 불길하다”고 진단했다.

한 교수는 “양승태 전 대법관장과 하수인들이 자행한 사법농단은, 사법권을 정치권력의 손아귀에 헌납하면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켜야 할 재판이라는 행위를 완전한 요식행위 내지는 권력이 관통하는 통로로 만들고자 했다”며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했다는 이유로 국정농단의 박근혜 정권은 통합진보당을 강제해산시켰지만, 양승태 체제는 사법농단으로써 우리 헌정질서의 핵을 이루는 입헌적 민주주의 자체를 밑바닥에서부터 무너뜨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래서 사법농단 사태에 ‘사법행정권 남용’이라는 순화된 표제를 붙이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꼬집으며 “그것은 남용의 수준을 넘어, 사법권 자체의 부정이며 따라서 헌법기관인 법원의 기능을 방해해 국헌을 문란케 한 내란행위의 수준에까지 이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상희 교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대법관 제청권을 기반으로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대법원과, 자신의 사람으로 구성해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법원행정처를 베이스캠프 삼아 사법권을 자기도취적인 권력욕의 수단으로 전락시켜 버렸다”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제왕적 대법원장’을 거론하며 관료사법의 문제점을 짚었다.

한상희 교수는 “수많은 단계로 구성되는 수직적 위계구조와 선민적 엘리트주의를 조성하는 순혈주의식 법관충원제도, 대법원장 및 이를 보좌하는 법원행정처 등에 집중된 인사권, 도제식의 법관훈련체계와 그로부터 파생되는 가부장적 선후배문화 등은 대표적 사례”라며 “우리의 정치문화가 제왕적 대통령제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듯, 법원 내부에서 작동하는 일그러진 구조가 제왕적 대법원장제로까지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법원은 하나의 법관동일체처럼 작동한다”며 “대통령이 임명하는 대법원장과 대법원장을 매개로 임명되는 대법관, 그리고 이들이 장악하는 인사권에 복종하면서 승진의 사다리를 타는 것을 일생의 목표로 삼도록 내면화돼 있는 법관들, 이 모든 것들이 사법부가 국민 위에 군림하는 또 하나의 권력기관이 되도록 만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상희 교수는 “최근 공개된 법원행정처의 문건에서 극명하게 본색을 드러낸다”며 “이 문건은 전국의 법관들을 승진경쟁에 뛰어든 법관과 ‘승진을 포기한 판사’(승포판)로 양분하고는 승포판은 마치 무능과 게으름과 반항의 상징처럼 오도하고, 승진을 목을 매지 않기에 인사권자의 지휘나 명령에 맹목적으로 복종할 이유가 없는 이들을 두고 일탈자의 낙인을 찍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들이 아니라 다른 집단에 있다”며 “실제 사법농단 사태에서 ‘승진을 포기하지 아니한 판사’들의 일부는 인사권을 장악하고 있는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 및 차장의 명령이라면 거의 죽는 시늉까지 할 정도로 영혼 없는 법률기계의 역할에 충실했다”고 승포판과 비교했다.

이어 “그들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권력을 위해 권력의 눈에 벗어난 법관들을 사찰했을 뿐 아니라, 사법관이라면 어떤 이유에서든 도저히 쓸 수 없는 보고서까지도 서슴지 않고 작성 보고했다. 양승태 대법원 체제의 패악질에 대한 충실한 실무역으로서의 역할을 아무런 의심도 저항도 없이 받아들인 그들은 승진이라는 개인적 탐욕을 위해 ‘사법과 국민을 포기한 자’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고 질타했다.

그는 “이렇게 볼 때, 법원행정처에서 몇몇 심의관(판사)들이 불철주야로 황당한 사법농단의 보고서를 작성한 이유가 제대로 설명될 수 있다”고 정리했다.

또한 한상희 교수는 “법원행정처의 구성은 전국의 법관을 통제하는 장치라는 점에서, 거대조직으로서의 법원행정처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한 교수는 “사법조직이 철저하게 관료화돼 가고 있는 상황에서 법관의 인사에서부터 사법정책에 이르기까지 거의 대부분의 사법적 병폐가 발생하는 중심지역이 바로 법원행정처”라며 “특히 이번의 사법농단파동은 법원행정처가 법관의 재판을 보조하는 업무의 수준을 넘어 스스로가 법관에 대한 감시ㆍ감독의 기관으로 기능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대법원장의 제왕적 권력은 바로 매머드급의 거대행정조직의 존재로 인해 가능해진다”며 “현직 법관 혹은 모임에 대한 사찰파동과 같은 사법농단의 사건들은 모두가 거대조직 법원행정처의 존재로부터 가능했는데, 문제는 법원행정처가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에서만 패악의 원천으로 기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라고 우려했다.

한상희 교수는 “사법농단 사태의 또 다른 문제점은 사법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사법권력의 경계를 넘어서는 전방위적 사찰을 행했다는 점”이라며 “법원행정처의 문건에 의하면 양승태 체제는 법관 및 그들의 결사에 대한 사찰을 넘어, 변협과 변호사의 동향을 사찰해 그에 상응하는 불이익을 부여할 것을 고려하거나 혹은 국회의원들의 성향과 그들이 연루되거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재판사건을 조사해 이를 빌미로 자신들의 사적 욕망을 충족할 수 있는 거래수단으로 삼거나 혹은 민간인과 시민단체에 대한 사찰을 통해 그들이 내세우는 상고법원안을 가로막지 못하도록 사전예방조치를 취하고자 도모했다”고 비판했다.

한 교수는 “반입헌적, 반민주적 비행에 해당하는 사찰행위는 양승태 체제의 직권남용이라는 범법의 수준을 넘어 우리 헌법이 지향하는 민주적 기본질서의 틀을 붕괴하고 입헌적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행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양승태 체제하에서 자행됐던 사찰행위들은 그것이 헌법의 근간을 부정하며 헌정질서를 무력하게 만드는 반체제적, 반헌법적 국사범(國事犯)으로서의 성격을 가짐을 알 수 있다”며 “실제 사찰 사태는 입헌적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구성되는 민주공화국의 체제에 대한 도전이자 동시에 헌법질서의 근간을 이루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에 해당한다”고 지목했다.

한상희 교수는 “사찰행위들은 헌법의 핵에 해당하는 입헌적 민주주의 자체를 침훼한다”며 “양승태 체제에서의 사찰이나 블랙리스트 행위는 입헌적 민주주의라는 국가 정체성의 헌법명령을 정면으로 부정한다”고 질타했다.

이와 함께 “변협이나 민변 혹은 특정한 변호사에 대한 법원행정처 등의 사찰행위는 전문직으로서의 법률가집단에게 실효적으로 보장돼야 하는 전문직의 자율성ㆍ독립성을 훼손한다”며 “민변과 같은 특정 법률가단체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변협에 대한 지원 거부, 재판과정에서의 편의제공 거부, 심지어 형사사건에서의 성공보수에 관한 관행까지도 무효화하는 판결 등의 조치를 통해 변협을 압박하고 그를 통해 변협을 자신들의 권력체제에 종속시키고자 하는 시도는, 사법권력의 감시자로서의 법률가집단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자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상희 교수는 “국회의원에 대한 사찰은 보다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며 “그것은 일반적인 입법로비의 문제로 거론할 바가 이니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우리의 통치구조를 이루는 가장 핵심적인 두 가지의 원리는 대의제와 권력분립”이라며 “하지만 양승태 체제의 국회의원 사찰행위는 국회의원의 성향과 정치적 행태 혹은 그가 관여하거나 관심을 가지는 재판사건 등을 조사해 이를 바탕으로 상고법원안이라는 정책목표의 달성을 위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잇는 틀을 모색한 것으로 양자를 동시에 무력화시켜 버릴 지경으로까지 나아갔다”고 짚었다.

한 교수는 “사법농단 사태의 처리는 간단하다”며 “과거사청산의 문법에 따라 사법농단과 그 적폐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며, 다시는 그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적ㆍ구조적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피해자들의 피해를 구제하는 일련의 작업이 그것”이라고 해법을 제시했다.

한편 한상희 교수는 김명수 대법원장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한 교수는 “김명수 대법원장은 법원행정처의 구조개혁과 함께 발탁인사라는 비판의 십자포화를 받던 고법부장승진제를 비롯한 법관인사제도를 개선하겠다는 공약을 내놓기도 했지만, 이런 조치는 현재의 사법농단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잠재우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수준”이라며 “오히려 그런 조치가 역으로 국민들에 팽배해 있는 사법불신을 재확인하는 결과만 초래할 수도 있다. 처방은 있으되, 진단이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한상희 교수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내놓은 개혁안은 사법농단의 실태에 대한 정확한 파악 없이 이뤄졌기에 사상누각처럼 불안한 것이 된다”며 “실제로 3차에 걸친 법원의 자체 조사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사법농단 혹은 재판거래의 실체는 드러나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박근혜 청와대와 어떤 재판거래를 했으며, 그 결과는 어떤 경로와 어떤 과정을 통해 재판에 영향을 미쳤는지, 혹은 법원행정처는 어떤 기준과 과정으로써 인사권을 자신의 권력기반으로 활용할 수 있었는지, (법원행정처) 심의관의 직을 맡았던 법관들은 왜 법원행정처의 하수인이 돼 위법한 명령에 하등의 대꾸도 없이 굴종했는지, 그리고 왜 전국의 법관들은 이런 불법의 사태 앞에서 그동안 아무런 항거도 못한 채 무력한 존재로 남아 있었는지 혹은 그래야 했는지 등등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의문들은 지금껏 하나도 응답되지 못했다”며 “김명수 대법원장의 개혁안이 안고 있는 문제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꼬집었다.

한 교수는 “김명수 대법원장은 스스로 진실규명의 책무를 포기했다”며 “그럼에도 여전히 김 대법원장의 책무를 남아 있다. 검찰이 요구하는 (법원행정처) 컴퓨터 하드디스크의 제출을 비롯해 법원이 가지고 있는 진실규명에 필요한 자료의 제출은 물론, 앞으로 예상되는 압수수색영장이나 구속영장의 발부 과정에서도 터무니없는 ‘사법부의 독립’이라는 허위의식이나, ‘조직의 안정과 통합’과 같은 전시대적 관념이 통용되지 않도록 조치할 책임이 그것”이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현재의 법원은 이런저런 견강부회의 논리로 지금까지 검찰의 압수수색영장조차 허용하지 않고 있다”며 “대법원장이 진실규명의 국민적 요구 앞에서 머뭇거리는 사이에 법원은 이미 자기 보신의 방어벽을 강고하게 쳐 놓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상희 교수의 “국회의 책무는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는다”며 국회의 역할도 주문했다.

한 교수는 “범죄수사에 한정돼 있는 검찰의 직무영역이 처리하지 못하는 부분의 진실규명은 의당 국회의 국정조사권의 발동을 통해 처리되어야 할 것”이라며 “나아가 김명수 대법원장이 예고한 관련 법관에 대한 징계절차를 국회가 가로채어서 그들에 대한 탄핵소추절차로 나아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사법권의 독립이라는 가장 중차대한 헌법명령을 저버린 법관이라면 징계절차에서 허여되는 정직ㆍ감봉의 수준이 아니라, 파면이라는 가장 중한 처벌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사법농단 피해자들에 대한 구제는 논리적으로는 그 다음의 문제”라며 “양승태 체제의 사법농단의 사실관계가 규명되어야 가느다란 재심의 기회라도 열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호철 민변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호철 민변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한편 이날 토론회 자리에는 김호철 민변 회장과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참석해 인사말을 했다. 검사 출신 조웅천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참석하며 관심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토론회 발제는 판사 출신 유지원 변호사가 “상고법원을 위한 법원행정처의 ‘홍보’ 행태, 적절한가”를 주제로,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법원행정처의 입법기관/시민사회에 대한 광범위한 사찰, 정당한가’를 주제로, 민변 사법위원장인 김지미 변호사가 ‘법원행정처에게 변호사단체란 무엇이었나’를 주제로 발표했다.

또 민변 사법농단 TF 간사인 최용근 민변 사무차장이 ‘법원행정처의 또 다른 거래 의혹: 국민의 기본권이 거래목적물이었나’를 주제로, 최정학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교수가 ‘사법부의 잇따른 영장기각의 문제점, 향후 검찰 수사의 바람직한 방향과 방법’을 주제로 발표했다.

이날 토론자로는 판사 출신 박판규 변호사, 경실련 시민입법위원회 정책위원인 김연정 변호사, 민변 언론위원장인 이강혁 변호사, 이범준 경향신문 기자가 참여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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