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기 대한변호사협회 부협회장
김관기 대한변호사협회 부협회장

<불구속이 능사는 아니다>

29년 전의 경험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니 우리나라의 발전 속도로 볼 때 석기시대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인생은 매우 짧더라. 각설하고, 오토바이를 훔쳐서 타고 다니다가 발각된 소년이 있었다. 경찰관은 체포하여 조사하여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검사는 영장을 신청하고, 판사는 영장을 발부하였다. 소년의 부모님 희망에 따라 변호인은 구속적부심을 신청하였다. 판사가 발부한 영장이나 그 적부심은 형사합의부의 관할. 세상사 경험 없는 배석판사는, “초범이고, 학생이고, 반성하고 있고 피해자도 피의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으니 석방하심이 어떤가” 하는 의견을 낸다. 향후 법원에서 재판이 진행되면 기껏해야 소년부 송치가 예상되는 사안이니 어쩌면 당연한 의견이다. 재판장은 “물론 그래도 되겠지만, 이것은 며칠 더 가두어 놓았다가 검사가 처리할 사안이니 기각하자”면서 그 이유를 “소년이 형사범죄를 저질렀을 때 너무 온정적으로 대하면 재범의 우려가 있다”고 하면서 씨익 미소를 짓는다. “검사도 따먹고 살 사건이 있어야지”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결국 소년은 사건을 송치받은 검사가 구속 기간 대략 17일 정도를 채우고 “선도조건부 기소유예”로 석방하여 선처는 판사가 아니라 검사가 한 것이 되었다. 검찰에서 어차피 석방할 것인데, 굳이 구속까지 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법률판단이 아니라 형사정책적인 결정은 행정기관인 검사가 하는 것이 바람직한 면도 있다는 생각에 별로 의문이 들지는 않았다.

세월이 흘러흘러 과거의 인신구속 실무는 많이 변해서 이제는 소년이 오토바이 훔쳐서 타고 다닌 것 정도로는 구속을 안 하는 듯하다. 아니 아예 구속할 생각을 안 하는 것 같다. 어떤 도산 사건에서 당사자인 채무자의 아들인 중학생 소년은 오토바이만 보면 환장을 해서 훔쳐서 타고 다녔다. 그런 아이들이야 과거에도 늘 있었지만 지금도 마찬가지이리라. 처음에 걸리고, 불구속 상태로 경찰 조사를 거쳐 검사의 기소유예나 가정법원 송치 처분 정도 받았을 것이다. 두번째 걸리고 또 불구속, 세번째 걸렸는데도 또 불구속이었다고 한다. 역시 가정법원 송치 정도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데 그 소년이 16세 때 결국 일을 냈다. 또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다가 넋놓고 지나가던 사람을 치어 식물인간 상태를 만든 것이다. 형사미성년자도 아니고, 변별력 없는 애도 아니다. 소년의 비행을 들어 부모에게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을까? 민사법원의 판단은 “그렇다”였다. 아이의 부모는 소송에서 졌다. 아이가 세 번이나 오토바이 무면허 운전을 할 동안 부모로서 감시하고 선도하지 못한 잘못이 있다는 것이다. 피해자 보호를 위하여는 부모에게 손해의 배상을 명한 민사판결의 그럴 듯한 면이 있다.

근데 과연 그러한가? 지금 우리나라에서 아이를 훈육 못하는 것이 부모만의 책임인가? 중학교, 고등학교 다니는 신체건장한 아이를 쇠사슬로 묶을 수도 없고, 나가지 못하게 할 수 없다. 그런 것은 이제 부모로부터 국가가 권력을 빼앗지 않았던가? 애가 오토바이만 보면 환장하게 좋아한다고 오토바이 없는 곳으로 묶어서 끌고 갈 수도 없다. 아이들을 훈육한다고 체벌이라도 할라치면 부모의 학대라고 지탄 받고 처벌 받지 않던가.

하여튼 부모는 그야말로 패가망신하였다. 회사의 중견 직원으로 재직하던 소년의 아빠는 일단 초기에 당시 5억원 정도 하던 아파트를 날렸고, 기대여명이 5년으로 단축되었던 피해자가 10년을 넘어 생존하였기에 추가로 손해배상청구를 받아 배상하였다. 감독을 게을리한 것에 중대한 과실이 있으니, 파산 회생의 보호를 받기도 힘들었다.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566조 제4호는 채무자가 중대한 과실로 타인의 생명 또는 신체를 침해한 불법행위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배상을 파산절차에 의한 면책의 범위에서 제외한다. 같은 법 제625조 제2항 제5호는 개인회생절차에 의한 면책에 관하여도 같은 취지이다.

소년의 부친은 자기도 억울하다고 한다. 이쯤 되면 아이가 재범하지 않도록 할 의무가 국가에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듣고 보니 그럴싸하다. 이것을 오로지 부모에게만 방치하는 것은 폭력을 독점한 국가가 그 의무를 게을리하는 것 아닐까? 부모가 아이를 가두는 경우 국가는 부모가 아이를 학대한다고 할 것이면서, 아이가 포악한 행위를 하면 그것을 부모 책임이라고 한다. 그럼 국가가 왜 있는 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오토바이 소년이 처음 훔쳤을 때 경찰이 구속하고, 검사가 진지하게 선도하면 부모의 말을 조금 더 잘 들더 재범을 할 가능성이 줄지 않았을까? 잘못을 저질렀을 때 초기에 따끔하게 훈계할 기회가 있을 필요가 있다.

사소해 보이는 범죄라도 무조건 불구속원칙을 관철하다 보면, 질서가 안 잡힌다. 잡범의 구속에 관하여는 어느 정도의 정책적 고려가 필요한 것 아닌가 싶다. 국가는 폭력을 독점해야 하고, 독점하는 만큼 개인에게 책임을 미루지 말고 일을 해야 한다.

신체의 자유를 원칙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헌법 정신을 형사소송법은 구현하고 있다고 가정할 수 있다. 제70조에 의하면, 죄를 지었다고 하더라도 1. 피고인이 일정한 주거가 없는 때, 2. 피고인이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때, 3. 피고인이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는 때에 법원이 피고인을 구속할 수 있다고 함으로써 구속 사유는 법원의 형사 공판절차의 진행을 위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다만, 제2항에서 범죄의 중대성, 재범의 위험성, 피해자 및 중요 참고인 등에 대한 위해우려 등을 고려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사법경찰관이나 검사가 구속할 수 있는 근거규정인 제201조 제1항은 위 제70조 제1항 각호에 열거한 사유를 구속사유로 제시하고 있을 뿐, 재범의 위험성 같은 사유는 고려사항으로 명시하고 있지 않다. 즉, 경찰은 범죄의 억지를 위하여 사람을 구속할 명분이 없는 것이다.

이런 문제가 한둘이랴. 무릇 절도 같은 범죄는 한 번에 그치지 않는다. 보통은 거의 습벽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범한 것이 어쩌다가 법망에 포착되어 들킨다. 이런 범죄에 대하여 초범이므로 향후 재판에서 징역형을 선고 받아 복역할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피의자를 구속하지 못한다면, 경찰이 지속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세상도 아니고, 국가는 피해자를 보호해 줄 수단이 없어진다.

신당역에서 여성 역무원이 스토킹 범죄로 불구속 재판을 받던 피고인에게 잔인하게 살해된 사건이 있었다. 스토킹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범행의 지속을 개념요소로 하는 것이므로, 국가가 사전에 보호할 필요성은 분명하다. 웬만하면 구속을 해 주어야 범행이 지속되지 않는다.

또 무엇이 있을까. 피의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필요한 때도 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부패 사건의 피의자가 된 주요 인물들이다. 이들은 늘 자살의 충동을 느낄 수 있고 또 이들이 없어지기를 은근히 바라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 즉 증거가 인멸될 염려가 있는 것이다.

상장기업체 사장이나 부장검사 같은 사회적 지위가 높았던 지도급 인사가 검찰의 소환장을 받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가 종종 보도되는 것을 보면, 정신적인 압박감과 상실감은 다른 세상으로의 도피까지도 감행하게 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이 막상 구치소에서 3박4일만 지내면 현실을 마주하고 운명과 맞설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이다. 진정한 인권보호는 구속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재판은 불구속이 바람직하지만, 그것은 일단 구속을 하였다가도 쉽게 보석을 허가하는 것으로 달성할 수 있다. 불구속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는 것일 뿐이다.

<위 글은 법률가의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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