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시비로 대리기사가 승용차를 도로에 세워둔 채 가버리자 주인이 승용차를 300m 운전해 인근 주유소에 정차한 다음 112에 신고한 사건에서, 법원은 피고인의 운전은 자신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한 상당한 이유 있는 행위에 해당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울산지법에 따르면 30대 A씨는 2017년 7월 24일 저녁 지인들과 술을 마셨다. 술자리가 끝나자 A씨는 대리운전 기사를 호출해 자신의 집까지 승용차를 운전하도록 했다.

대리운전 기사는 25일 자정 무렵 전화를 받아 A씨 승용차를 운전하기 시작했다. 대리기사는 부산 북구에 살고 있었던 까닭에 울산 동구 방어진 부근의 길을 확실하게 알고 있던 것은 아니어서, 내비게이션을 다리 사이에 끼워 놓고 운전했다.

이에 A씨가 “길을 잘 모르느냐?”, “운전을 몇 년 했느냐?”는 등으로 대리운전 기사의 운전능력에 대한 의문을 표시했다.

결국 A씨와 대리운전 기사 사이의 시비가 진행돼 A씨는 대리운전 기사에게 화를 내면서 승용차에서 내리라고 말했고, 대리운전 기사는 승용차를 정차시키고 차에서 내린 후 가버렸다.

A씨는 대리운전 업체에 전화를 걸어 대리기사를 다시 보내달라고 요청했으나, 대리운전 업체의 부장은 대리기사를 보내 줄 수 없다는 답변을 했다.

대리기사가 승용차를 정차한 곳은 울산 북구의 편도 2차선의 도로이다. 이 도로에 대해 대리운전 기사는 법정에서 “이 도로는 갓길이 없고, 2차로 옆에는 가드레일이 있다. 이 도로는 자동차전용도로는 아니나 자동차전용도로와 유사해서 차가 주차해 있으리라 예상하기는 어려운 도로”라고 진술했다.

A씨의 승용차 블랙박스 영상을 보면, 정차된 A씨의 승용차 옆을 지나가는 다른 차량들은 경적을 울리면서 빠른 속도로 지나가기도 했다. 법정에 나온 경찰관에 따르면 이 도로는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도로로서, 제한속도는 시속 70㎞인데, 사람들이 80㎞로 운전하기도 한다.

A씨는 승용차를 정차 장소에서부터 운전해 약 300m 떨어진 인근 주유소에 정차했다. A씨는 스스로 112로 신고해 대리운전 기사가 운전을 하다가 그냥 가버렸는데 위험할 것 같아서 주유소 안쪽으로 운전해서 들어왔다고 통화했다. 당시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40%였다.

A씨는 자신의 운전을 긴급피난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울산지방법원 형사9단독 송영승 판사는 최근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무죄를 선고(2017고정1158)한 것으로 31일 확인됐다.

송영승 판사는 “대리운전 기사가 승용차를 정차해 둔 도로는 새벽 시간에 장시간 승용차를 정차할 경우 사고의 위험이 상당히 높다고 보이는 사정, 피고인이 승용차를 운전해 간 거리는 약 300m에 불과해 피고인은 임박할지도 모르는 사고의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필요한 만큼의 거리를 운전한 것으로 보이는 사정, 피고인은 승용차를 안전한 곳에 정차해 둔 후 경찰에 112로 자발적으로 신고하면서 자신의 음주운전 사실을 그대로 진술한 사정, 피고인의 행위로 인해 침해되는 사회적 법익과 그로 인해 보호되는 법익을 형량해 볼 때 후자가 보다 우월한 법익에 해당하는 사정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송 판사는 “위 사정을 법리에 비추어보면, 비록 피고인이 대리운전 기사에게 화를 내면서 차에서 내리라고 말한 사정도 있기는 하나, 피고인의 운전은 자기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한 상당한 이유 있는 행위에 해당해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다”라고 봤다.

또 “검사가 의견서에서 밝힌 바와 같이 피고인이 지인이나 경찰에게 연락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긴급피난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은, 지인이나 경찰이 새벽시간에 음주운전 차량을 이동해 줄 기대가능성이 현실적으로 높지 않음에도 지인이나 경찰에 대한 연락행위를 형사처벌로 강제하는 취지여서, 설득력이 떨어진다”며 “게다가 경찰에게 음주운전 차량을 이동시켜야 하는 업무까지 추가로 부과하는 것은 정책적으로도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송영승 판사는 “따라서 공소사실은 형법 제22조 제1항의 긴급피난에 해당해 범죄로 되지 않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에 의해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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