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기 대한변호사협회 부협회장
김관기 대한변호사협회 부협회장

<우리는 미국과 법체계를 달리하는가>

민사, 형사 소송 사건에서 상대방이 가진 증거를 강제로 탐지할 수 있는 ‘디스커버리(증거개시) 제도’, 재판 과정에서 법률전문가가 아닌 일반 국민이 참여하여 결정하는 ‘배심 제도’ 같이 미국법이 채용하는 방식을 도입하자는 논의가 있을 때마다 단골로 제기되는 반론이 있다. 우리는 미국과 법체계를 달리하니 도입에 신중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근대화와 진보를 믿는 관점에서 본다면, 이것은 단순히 틀렸다. 미국인들이 나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면 이것은 우리도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이 사용하는 항생제라면 우리 대한국민도 먹고 질병을 치유할 수 있고, 미국인들이 개발하여 타고 다니는 보잉 여객기, 전투에 사용할 준비를 하고 있는 F35 전폭기나 아파치헬리콥터, 슈퍼컴퓨터 모두 우리 국민도 수정 없이 도입하여 사용할 수 있다.

남용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민도(民度)에 비추어 정직성을 기반으로 하는 미국의 제도를 도입하면 길 닦아 놓으니 조현병 환자 먼저 지나간다는 식으로 탐욕과 거짓이 승리하고 정직한 사람은 피해를 입고 비용만 많이 들 것이라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사업상의 채무로 인한 파산에 대하여 거의 무한정으로 관대한 파산제도에 대한 비판은 이런 관점에서 나온다. 부작용(副作用)이 더 크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어떠한 기계도 오작동의 위험으로부터의 안전장치와 함께 제공되듯이, 미국인들이 사용하는 어떠한 법제도이든 남용의 사례를 걸러내어 처벌하는 장치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니, 부작용을 걱정하여 도입하지 못한다는 것은 발전과 진보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저 조상들이 물려 준 옛 것이 좋다는 마음가짐이 되겠다.

그런데 알고 보면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법률은 옛날의 것이 아니고, 거의 그대로 서양법을 수용 즉 베낀 것이다. 지금은 역사가 되어 버린 옛 시절 관변에서 법률 실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남아 있던 위압적 태도와 부패관행을 배경으로, 우리가 지금 실행하는 법이 조선시대 이전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라는 오해가 있지만, 어디까지나 우리는 대한제국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프랑스와 독일의 법률 체계를 거의 그대로 사용하여 왔고, 해방 이후 미군의 통치 하에서 그들이 승인한 헌법에 기초하여 법률체계를 만들어왔다. 법률에 관한 한 우리는 철저히 서양의 전통을 따르고 있는 것이고, 최근에는 미국의 영향을 결정적으로 받고 있다. 상사거래에 관련한 한 그것은 유럽을 포함한 전세계가 마찬가지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

법률을 조금 배운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반론이 하나 더 있다. 우리는 민사, 형사재판에서 형식적으로 법률로 제정된 것 즉 성문법만을 적용하는 대륙법계에 속하고, 법이 법전으로 제정되지 않고 법원의 판례로 표현되는 불문법을 가지고 있는 영미법계의 제도와는 배경을 달리하는데, 배심제도나 디스커버리 같은 제도는 영미법 특히 미국에 특유한 제도이니 우리 실정과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오해이다. 대륙의 민법, 형법이 의회가 제정한 성문법의 형태를 띤 것은 기나긴 역사시대에서 짧은 기간 밖에 되지 않는다.

근대를 열었다는 나폴레옹법전이 제정된 것은 1804년, 독일 민법이 시행된 것은 1900년이었다. 그 이전에는 대륙에서도 로마법의 해석으로 운용되었고, 로마법이야말로 입법부의 결의를 거치지 않은 불문법이었던 것이다. 반면에 불문법국가라고 지목되는 영국, 미국도 법률을 제정한다. 각 주의 형사법전은 우리의 형법보다 훨씬 자세하게 규정되어 있고, 민사법리를 설명한 리스테이트먼트도 우리의 주석서보다도 방대하다. 세법전, 파산법전은 제각기 우리의 수험용 법전보다는 훨씬 두껍다. 영미법의 발상지인 영국도 고대 로마인들의 지배를 받은 한편 중세에 게르만인들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니 따지고 보면 실체적인 법리는 비슷한 것이다.

공법이 발달한 것이 대륙이라는 주장도 은연중에 나오는 듯하다. 이것은 더욱 부당하다. 마국혁명이 프랑스혁명에 선행한 것을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유럽대륙의 부르주아혁명은 미국의 영향을 받아 19세기까지 차례로 일어났다. 20세기에 독립한 수도 없이 많은 공화국 대부분이 미국의 헌법을 본 받아 제정되었다. 이미 공법에서도 미국이 앞선 것이다.

그렇다면 양 법계에 차이가 없는 것일까. 그것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영국, 미국과 프랑스, 독일 같은 대륙법계의 차이라고 한다면, 재판과 법 형성에 있어서 판사의 지위가 어느 정도 높으냐이다. 사법관이 “이것이 통치자도 백성도 예외 없이 따라야 하는 법이다”라고 선언할 수 있는 권능을 가지고 있고, 이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있는가에 따라 구분된다. 사법관은 현명한 자들로 가정된다. 그러기에 이들은 선거로 뽑지 않고 시험을 쳐서 선발한다. 그렇기에 이들이 법을 만드는 것에 대하여 국민의 지지를 받기 위하여는 절차가 공정한 것으로 보여져야 하고, 국민이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 배심제이고 디스커버리 제도이며, 그 성공적인 운용을 위하여는 사법의 조력자로서 변호사들의 활동이 중심이 될 필요가 있다.

공화국의 성립 이후 우리는 판사들에게 무한한 권한을 주었다. 그것은 일견 독립된 사법부를 가진 미국인들을 모방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피상적인 것이었다. 미국인들이 절차의 공정에 대한 믿음을 확보하기 위하여 장치한 기구인 배심제와 같은 제도를 도입하지 않았다. 소송절차에 있어서 변호사의 역할을 축소하고 그저 신속한 사건처리를 위하여 직권진행과 편의주의가 확대되어 있다. 그 결과는 사법에 대한 불신이다.

이제 현실을 직시할 때가 되었다. 미국과 여건이 다르다는 변명은 이미 통하지 않는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와 같은 기업은 전세계 최고 일류기업이 되어, 미국법의 합리성의 보호를 받고, 한편으로는 미국법의 규제에 단련되고 있는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고 있다. 글로벌 표준과 굳이 다르고 싶어 한다고 하여도 외부 여건이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세계시장에 물건만 팔던가? BTS는 전 세계인을 상대로 꿈을 팔고 있다. K뷰티는 또 어떤가. 미국인들의 외과의술을 충실하게 익힌 우리나라 의사들의 성취 아니던가. 전적으로 국내의 재벌기업 사이의 분쟁은 미국에 제기되었다가 화해로 종결되었다. 우리나라의 법원이나 중재기관을 거치지 않고 굳이 미국으로 간 것은 미국절차의 우월성을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K소송은 세계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법시험을 폐지하고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을 도입한 것은 법률실무의 글로벌화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법률 그 자체의 현대화, 글로벌화가 필요한 것이다. 언제까지 과거에 매여 살 수는 없다.

<위 글은 법률가의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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