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디지털 권리장전’이라는 책의 제목이 참 흥미롭다. 부제는 또 어떤가. ‘디지털제국에 보내는 32가지 항소이유서’라고 달았다. 

이 책은 첨단 디지털세상에서 시민들이 자신의 디지털 권리를 지키는 내용을 담았다. 

‘디지털 권리장전’의 저자인 최재윤 변호사(법무법인 태일)는 “디지털 신세계에 던지는 논쟁적인 질문과 해답”이라고 말한다.

최재윤 변호사가 펴낸  디지털 권리장전

거창하게 말고 조금 쉽게 얘기하면, 이 책은 독자들이 디지털 시대의 전반적인 흐름을 읽고, 나의 권리를 대략적으로나마 파악함으로써 삶을 보다 능동적으로 이끌어 가는데 길잡이 역할을 해주길 바라고 있다.

이 책에 눈길이 가는 이유는, 책 제목과 부제의 호기심뿐만 아니라 저자가 유명한 변호사이고, 디지털 분야 최고전문가인데도 가상투자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있다고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 실패가 변호사로서 쑥스러울 수 있는 고백이 오히려 저자의 호탕함으로 다가온다. 

대한변호사협회 초대 홍보이사인 최재윤 변호사(사법시험 52회)는 대한변협 IT블록체인특별위원회, 블록체인법학회, 한국공유경제협회, 4차산업혁명융학법학회 등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 홍보이사 최재윤 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 홍보이사 최재윤 변호사

스타트업 법률자문을 많이 하는 최재윤 변호사는 ‘디지털 권리장전’의 머리글에서 대뜸 “변호사인 저도 당했습니다”라고 솔직하게 고백한 대목에서 “왜?”, “어떻게 당했지?” 등의 궁금증이 증폭됐다.

최재윤 변호사는 원숭이, 고양이, 해골 등 다양한 NFT를 모으고, 투자한 가상자산이 하루에도 몇 배씩 오를 때마다 웃음이 절로 났다고 한다. 가상자산을 디파이에 예치하면 연이자율이 20%에서 많게는 수백 %까지 올라갔고, 수익률에 눈이 멀어 투자금을 늘렸고, 계속 쌓여가는 이자를 보면 흥분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고 행복했던 순간을 전했다.

여기까지에서 최재윤 변호사는 분명 가상투자로 소위 ‘벼락부자’가 돼 있을 거라 짐작됐다. 그런데 큰 반전이 있었다.

최재윤 변호사는 “처음부터 작정하고 준비한 사기꾼한테 제대로 당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가상자산, NFT, 디파이 모두 관련 법률 하나 제대로 마련된 게 없으니 그야말로 무법지대!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먹튀’가 가능하다”며 “어쨌거나 변호사인 저도 당했다”고 호탕하게 고백했다.

이렇게 전문가로서 쑥스러울 수 있는 실패를 솔잭하게 고백하며 풀어가서인지 이 책은 지난 8월 16일 초판 발행됐는데, 디지털 생존권을 스스로 지키려는 시민들의 관심 속에 벌써 2쇄에 들어갈 정도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최재윤 변호사의 디지털 권리장전 

저자는 핑계를 대자면 기술발전 속도와 변화무쌍한 트렌드를 어떻게 딸라가야 할지 모를 정도로, 세상이 너무 빠르게 돌아간다고 했다. 그는 “새롭게 등장하는 비즈니스 모텔과 투자 기회는 저 같은 사람들을 쥐락펴락 한다”며 “그거 앞서간다는 것에 취해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시장에 뛰어든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결과가 좋을 리 만무”라고 자성했다.

최재윤 변호사는 “사기당한 것 같은 억울함에 사법당국에 호소해 보지만 소용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기술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법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그는 “뻥 뚫린 법적 공백 상태를 절감하는 순간 법으로 구제 받겠다는 마음을 접게 된다”며 “그야말로 각자도생해야 하는 처지”라고 꼬집었다.

‘빚투’나 ‘영끌족’ 같은 신조어가 더 이상 주식과 부동산 투자에만 국한하지 않는다고 했다.

저자는 “현실이 그런데도 각종 매스컴과 유튜브, SNS에서는 어찌나 ‘가즈아’를 외쳐대는지, 뭐라도 하지 않으면 혼자만 ‘벼락거지’될 것 같아 불안하다”며 “가상자산, NFT, 조각투자 같은 것들에 눈길이 가는 이유”라고 봤다.

대한변호사협회 홍보이사 최재윤 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 홍보이사 최재윤 변호사

최재윤 변호사의 반전은 또 있다.

그는 가상투자에서 큰 실패를 경험했는데, 여기서 낙담하지 않고 그 경험을 토대로 연구로 승화시켜 시민들이 자신과 같이 당하지 않고 디지털 권리를 지킬 수 있게 책 발간에 도전한 것이다.

실제로 최재윤 변호사는 호되게 두들겨 맞으며 NFT와 가상자산 투자에서 잃었던 돈이 값비싼 수업료가 됐다고 했다. 자신의 어리석었던 경험 속에서 생긴 수많은 의문을 깊이 파고들어 연구하는 과정에서 ‘디지털 권리장전’의 집필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이렇게 모습을 드러낸 ‘디지털 권리장전’은 크게 4가지 챕터로 구성돼 있다.

최재윤 변호사의 '디지털 권리장전'

첫 번째는 디지털 환경과 플랫폼 경제 전반에서 일어나는 법적인 문제들을 다뤘다.

저자는 “거대한 자본을 형성한 온라인 플랫폼이 ‘혁신’으로 시작해 ‘독점’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들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며 특히 플랫폼 노동자들이 겪는 부당노동행위와 재택근무에서 불거져 오는 노동환경의 유연성 문제가, 어떻게 고용불안 문제로 등치되는지를 규명했다.

두 번째 챕터에서는 블록체인 위에서 펼치지는 다양한 법리 논쟁들을 다룬다. 무엇보다 사회적으로 커다란 혼란을 초래한 테라, 루나 사태에서 불거진 가상자산의 불안정한 미래를 미국, 중국, 유럽 등 세계 주요국들의 법제도를 통해 진단했다.

세 번째 챕터에서 던진 ‘AI(인공지능)에게 인간으로서의 법적 자격, 즉 법인격을 부여할 수 있는가?라는 논쟁적인 질문도 피해갈 수 없다. 네 번째 챕터에서는 “대한민국은 데이터공화국인가, 데이터식민지인가?”라는 주제로 다룬다.

이 책에는 “디지털 산물인 온라인 플랫폼은 진정 모든 이에게 축복일까요?”와 같은 저자의 돌발질문이 많은데, 저자는 “좌충우돌 변호사가 디지털 신세계를 향해서 던지는 질문”이라고 겸손해했다.

저자는 “수없이 많은 질문을 던지다보면 질문 안에 해답이 있음을 깨닫곤 한다”며 “고백하건데 그 해답을 구하기 위해 밤을 하얗게 지새워야 했다”고 집필 과정의 고단함을 털어놨다.

최재윤 변호사의 '디지털 권리장전'

최재윤 변호사의 ‘디지털 권리장전’에는 여러 전문가들이 해준 추천사도 눈길을 끈다.

블록체인법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이정엽 서울회생법원 부장판사는 “으레 ‘법’하면 법률가들끼리만 소통 가능한 외계어라는 선입견을 일거에 해소한 저자의 사려 깊고 친절한 문장이 돋보인다”고 호평했다.

4차산업혁명융합법학회 회장인 한명관 변호사(법무법인 바른)는 “왜 법률가들은 새로운 기술에 걸맞는 법체계 마련에 소극적인가?”라면서 “저자는 탁월한 ‘디지털 리걸마인드’를 바탕으로 목이 마른 듯이 법률문제들을 짚어내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한다”고 봤다.

대한변호사협회 IT블록체인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이상직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는 “여기저기서 디지털 문명을 추앙하지만, 이 책은 혁신의 이름으로 포장된 디지털 자본주의의 부조리를 낱낱이 고발한다”고 전했다.

이의준 중소기업정책개발원 규제혁신위원장은 “오랫동안 벤처와 스타트업 현장에서 기업인들의 법률서비스에 매진해온 저자의 디지털 애민정신이 녹아 있는 책”이라고 추켜세웠다. 경제학 박사인 이의준 위원장은 또 “시장지배력을 가진 빅테크들의 위세에 맞서 디지털 생존권을 수호하려는 저자의 법률가적 혜안이 탈무드에 새겨진 유대인의 지혜와 닮았다”고 호평했다.

이영준 KBS PD(전 편성마케팅 국장)는 “디지털 ‘문명’은 풍요로워 보이지만, 실은 많은 사람들을 디지털 ‘문맹’으로 전락시킨다”며 “디지털 주권을 상실한 채 디지털 식민지를 살아내야 하는 현실은, 아프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짚는다. 이영준 PD는 그러면서 “이 책은 바로 그 가해자이자 주범들을 소환해 심판대에 세운다”며 “디지털제국주의자에게 보내는 매우 지성적이면서 용기 있는 항소이유서”라고 평가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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