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기 대한변호사협회 부협회장
대한변호사협회 부협회장 김관기 변호사

<수원 세 모녀 소식을 듣고>

자본주의는 평등에 대한 약속을, 사회주의는 자유에 대한 약속을 기반으로 존립한다. 경영학의 창시자로 간주되는 피터 드러커가 했다는 이 말을 필자는 최근까지 이해하지 못했다. 사적 소유권에 기한 분권화된 의사결정에 의하여 생산과 분배가 이루어지는 자본주의에서 평등하지 못한 것이 당연한 것이고, 이것을 폐지하고 중앙집권적 경제계획을 따르라고 하는 사회주의에서 자유라니 도대체 무슨 말인가.

그렇지만 잘 생각해 보면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 우선 사회주의의 약속을 보자. 자유의 기반은 물질에 있다. 사회주의는 부르주아 계급이 독점한 자원을 해방함으로써 노동계급에 필요한 자원의 희소성을 해결한다고 선전했다. 그것은 노동계급에게 자유를 약속한 것이었다. 사회주의가 실현되면 모든 사람이 “낮에는 물고기를 잡거나 사냥을 하고 저녁에는 철학을 한다”거나, 낮에는 농사를 하고 밤에는 학습을 한다는 식이다. 이것을 자유에 대한 약속이라고 하지 못할 바 아니다. 그런데, 현실은 자유의 말살이었다. 생산수단에 대한 개인의 소유권을 전부 폐지하고 중앙집권적 ‘계획’에 따라 생산과 분배를 조직한 것은 자유의 압제로 실현되었다.

예를 들어 정부가 모든 윤전기와 컴퓨터 서버를 독점한다면 언론, 출판의 자유는 말살될 것이다. 모든 생업을 정부가 통제하는 세상에서 정부의 말에 항거하는 자유는 서서히 굶어 죽는 것을 의미한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그들의 주장은 그렇게 실현되는 것이다. 사회주의의 자유에 대한 약속은 실현될 수 없었다. 결국은 인권의 압살 및 전체주의의 실현으로 귀결되게 마련이다.

다음 자본주의의 평등에 대한 약속을 보자. 생산수단의 사유 및 이에 근거한 계약의 자유라는 법률적 기초는 생산과 분배에 있어서 분권화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분권화’라는 것이 이루어지려면, 이것은 재산이나 소득이 개인에게 완벽하게는 아닐 지라도 어느 정도는 평등하게 분배되어 있는 출발점을 전제로 한다. 왜냐하면, 소유권이라는 것은 타인을 배제할 수 있는 권력을 뜻하기 때문이다. 소유권이 소수 집단에게 집중되어 있다면, 그의 의사결정이 사회 전체의 생산과 분배를 결정하게 된다. 이것은 앞에서 본 사회주의적 계획경제나 왕조와 다를 것이 없다. 계약의 자유에 근거하여 다수의 분권화된 의사결정을 통하여 생산과 분배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환상이 된다.

따라서 자본주의가, 시장경제가 원활하게 운영되기 위하여는 어느 정도까지는 모든 사람에게 물질적인 기반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현실의 자본주의는 그 약속을 지킬 수 없다.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론이 말하듯 출발점부터 어떤 사람은 더 평등하고 다른 어떤 사람은 덜 평등하다. 자본주의가 약속하는 평등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불황이 닥치면 불평등이 심화된다. 긴 가뭄에 실개천부터 마르지만, 뿌리 깊은 나무는 가뭄을 견디고 샘이 깊은 물은 바다로 간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불평등의 심화를 해결하지 못했을 때, 사회적 관계의 불안정을 거쳐 혁명과 전쟁으로 이어졌다. 그럴 때 대중은 불안정 보다는 안정이라는 가치를 택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평등에 대한 약속도, 사회주의의 자유에 대한 약속도 지켜질 수 없음을 깨달았을 때 독일의 대중은 안정을 제공해 주겠다는 파시즘에 빠져버렸다고 피터 드러커는 지적하였다. 자유로부터 도피하여 자발적 복종으로 단결하여 세계 규모의 전쟁으로 이끌어갔다는 것이다. 이런 역사가 어찌 서양뿐이겠는가. 농민들이 반란세력이 있는 변방으로 도망가서 세력을 키워 침략자들과 같이 국경을 넘어 와 기존의 제국을 타도하고, 그 제국은 얼마간 지속되다가 다시 같은 방식으로 타도되는 중국의 역사도 바로 이런 사회통합의 실패를 증거한다. 실패하는 제국은 대중을 억압하고 묶기 위하여 테러와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지금이라도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는 출발부터 강한 평등을 추구해 왔다. 1950년 실행된 농지개혁은 일제가 과거 친일지주계급의 소유권을 혁파하고 광범위한 자작농을 창출하였고, 1961년 실행된 농어촌고리채정리는 또 농민이 부채 때문에 농지를 잃지 않도록 지지하여 주었다. 큰 틀에서 볼 때 이들과 이들의 후손은 산업화 과정에서 도시 근로자로 전환하면서도 아파트나 빌라 같은 작은 자산을 가진 서민, 중산층이 되었다. 자본주의가 약속한 바 비교적 평등한 바탕 위에 계약 자유를 통하여 어느 정도는 자유로운 거래를 하면서 풍요한 삶을 누려왔다. 이제 구매력purchasing power parity 기준으로는 일본보다도 앞서는 경제력을 가지게 된 번영은 이와 같은 평등한 자산, 소득 분포에 힘입은 바 크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러한 평등을 해치는 것은 주기적 불황이다. 1997년의 동아시아금융위기, 2008년의 서브프라임,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의 불황, 그리고 2020년 코로나 사태 이후의 경제 붕괴와 2022년의 전쟁 같은 것이다. 우리가 어쩔 수도 없는 불황과 전쟁 상황에서 재산을 축적해 놓지 못한 사람들은 부채의 늪에 빠지게 된다. 이들에게 손을 내 밀어 지원하지 않으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미래는 불안하기 그지 없다.

빚에 찌들어 살았지만 마지막에 월세를 집 주인에게 내고 극단적 선택을 한 송파 세 모녀 사건이 일어난 지 10년이 채 안 된 엊그제, “수원 세 모녀” 사건이 일어났다. 아버지는 사업 부도 후 빚을 남기고 숨지고, 생활능력 있던 장남도 사망한 후 어머니는 암으로 투병하고 40대 두 딸은 난치병을 앓던 상태에서 “지병과 빚으로 생활이 힘들었다”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등졌다는 것이다. 주민등록이라도 했으면 복지 시스템에 잡혔을 터인데 전입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니, 필경 채권추심을 두려워했으리라. 지금도 어딘가 수원 세 모녀 같은 선택을 하는 사람은 수도 없이 많다. 우리가 채무자를 용서하는 것은 우리가 좋은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니다. 평화로운 삶을 희망하기 때문이다. 보다 과감한 정책이 필요한 때이다.

<위 글은 법률가의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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