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기 대한변호사협회 부협회장
김관기 대한변호사협회 부협회장

<소송인지대 조정이 필요하다>

사법(司法), 그것은 정의의 실현이다. 얼핏 보기에, 그것은 우리가 사람답기 위하여 또 공동체의 보존을 위하여 무한히 추구되어야 할 궁극의 가치이다. 그것이 극명하게 나타나는 것은 소송이다. 그런데, 현실에 적용함에 당하여는 그렇지 않다. 무엇이 정의에 어긋나 있는지 조사를 해야 하고, 한편으로는 여기에 합당한 처분을 내려야 한다. 당연히 여기에는 비용이 든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니까. 판사, 검사. 집행관 같은 사법관뿐만 아니라 그들을 보조하는 공무원들이 필요하다. 이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봉급을 주고 또 이들이 일할 수 있도록 청사를 제공해야 하고, 각종 설비와 소모품을 지원해야 한다. 현대에는 당연히 전산 플랫폼도 지원하여야 한다. 법치국가인 이상 이것을 일반세입으로 충당하는 것에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그런데, 모든 사람의 정의실현요구에 사법기관이 즉각 반응하여 무엇인가 해야 한다면 아마도 전국의 모든 법원청사는 소송으로 사태가 날지도 모른다. 사법부를 유지하는 비용은 아마도 소송과 상관없는 사람들도 부담하는 일반 재정으로 감당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소송에는 수수료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비용을 소송당사자 사이에 내부화(internalize)하는 것은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 정의의 실현에도 한계가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법을 어긴 자에게 부담시키는 패소자 부담(민사소송법 제98조)을 디폴트룰로 정할 수 있고, 미국이 그렇다고 하듯이 소송을 한 자가 스스로 부담하되 특별한 경우 소송비용을 손해배상항목으로 인정할 수도 있겠으나, 어느 경우이든 소송당사자들의 부담이 된다.

이러한 소송비용은 대략 그것을 제공하는 사람들의 인건비 및 이에 부수되는 비용이 될 것이니 보통은 무리가 없는 수준에서 책정된다. 그런데, 법원의 재판 수수료인 인지대는 그렇지 않다. 요약하면, 본안 소송은 인지가 너무 비싸고, 그 밖의 신청이나 비송은 너무 싸다는 점이다.

민사소송등인지법 제2조 제1항에 의하면, 본안소송의 경우 “1. 소송목적의 값이 1천만원 미만인 경우에는 그 값에 1만분의 50을 곱한 금액, 2. 소송목적의 값이 1천만원 이상 1억원 미만인 경우에는 그 값에 1만분의 45를 곱한 금액에 5천원을 더한 금액, 3. 소송목적의 값이 1억원 이상 10억원 미만인 경우에는 그 값에 1만분의 40을 곱한 금액에 5만5천원을 더한 금액, 4. 소송목적의 값이 10억원 이상인 경우에는 그 값에 1만분의 35를 곱한 금액에 55만5천원을 더한 금액”을 인지로 붙여야 한다.

예를 들어 소가가 1억원인 경우에는 45만 5천 원의 인지를 붙여야 한다. 이 정도라면 권리보호를 구하는 통상의 중산층이 감당하지 못할 바 아닐지 모르겠다. 그런데, 소가가 10억원이라면, 405만 5천 원의 인지를 붙여야 한다. 소가가 100억원이라면, 3555만 5천 원이 된다. 활발히 조업하는 기업 사이의 민사소송에서는 인지가 수백만 원이든 수천만 원이든, 수억 원이든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반의 소비자가 대기업과 상대하는 소송에서 비싼 인지대는 재판청구권을 실질적으로 부정하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 게다가 항소심은 1심의 1.5배, 상고심은 2배에 해당하는 인지를 붙여야 하니 상소권은 더욱 제약되는 결과가 된다.

어차피 패소자가 물어내는 것이니 정의의 편에 선 당사자는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법원의 재판은 외상으로 주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재판비용 납부유예(민사소송법 제129조 제1항 제1호)라는 제도가 있으니, 인지도 이에 준하여 재판부의 판단을 받으면 되지 않느냐는 물음이 가능할 수 있겠다. 그런데 실무상 소송구조가 썩 만족스럽게 운용되고 있는가 하면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런 현실에서는 합당한 반론이 될 수 없다.

보통의 재판청구자들은 현실적인 지출을 감내하여야 한다. 패소자에게 받아낼 수 있다는 말은 공허하다. 재판청구권에 대한 억지요소로 작용하는 것은 소송인지대와 비슷하게 소송물가액에 따라 정해지고 패소자가 부담하는 것이 원칙인 변호사보수도 마찬가지이지만, 이것은 그나마 후불이므로 적어도 정당함을 확신하여 제소하는 당사자에게는 덜 가혹하다.

이에 반하여 전반적으로 신청, 가사, 비송 같은 재판의 인지대는 매우 싸다. 통상의 가압류, 가처분 같은 재판은 결코 중요성이 떨어지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1만원이고, 파산 신청은 채권자가 하면 3만원, 채무자가 하면 1천원이다. 회생신청은 채권자가 하든 채무자가 하든 3만원이다. 현금 시재가 수십억 원 이상 있는 거대기업이 스스로 회생신청을 하더라도 법원이 재판수수료로 챙기는 인지대는 3만원이다. 가사소송은 2만원이다. 소송에서는 인지대가 비싼 것을 이유로 구제해 주는 제도라도 있지만, 인지대가 싸다고 하여 증액하는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인들이 물가상승율에 따라 소득세 계산이나 개인회생 가능 기준금액을 조정하는 것처럼, 우리도 물가 변동에 응하여 소가에 따라 적용되는 요율을 변경하고, 신청이나 비송에 적용되는 인지도 조정하는 방식을 제도화하는 것도 한 방편이겠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소가가 턱없이 늘어난다고 하여 인지를 거기에 맞추어 무한히 증액하는 방식은 자력이 충분하지 못한 자를 차별한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런 부조리가 사법부 자신의 책임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현장의 목소리가 입법권력인 국회에 입력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겠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법개혁은 꾸준히 추구되었지만 검찰개혁이니,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니 하는 거창한 변화를 구하는 목소리에 묻혀 현업에서 느끼는 미세한 불편함에 대하여는 국회의원들의 관심이 없고, 소송인지와 소송비용 같은 미시적인 입법사항은 법원 당국의 의견을 반영하여 편적인 미세조정이 이루어질 뿐이다. 법원의 태도 변화가 필요한데, 그러기 위하여는 재야의 목소리가 실질적으로 입력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위 글은 법률가의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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