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각급 법원 100미터 이내의 집회ㆍ시위를 절대적으로 금지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조항은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나왔다.

헌법재판소는 국회 100미터 집회금지와 국무총리공관 100미터 집회금지에 이어, 법원 100미터 집회금지까지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7월 26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누구든지 각급 법원의 경계지점으로부터 100미터 이내의 장소에서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할 경우 형사처벌 한다고 규정한 집시법 관련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날 헌법불합치 결정이 선고된 헌법소원사건은 2015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가 집시법 위반으로 기소된 활동가가 청구한 사건이다. 해당 활동가는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는 전단지를 배포한 것이 명예훼손죄 혐의로 압수수색 등 수사를 받게 되자, 대검의 과도한 수사를 비판하기 위해 시민 10여명과 함께 대검찰청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20분가량 개최했다.

법원을 대상으로 한 집회가 아니었음에도 대법원 담장에서 100미터 이내에 포함된다는 이유로 집시법 제11조 제1호 위반으로 기소되고 1심에서 유죄까지 선고받자, 이 활동가는 항소심에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했으나 기각되자, 집시법 제11조에 대해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대검찰창과 대법원은 바로 인접해 있다.

이 활동가는 “검찰을 상대로 한 기자회견은 법관의 독립이나 재판의 공정에 위해를 가할 우려가 없음에도 이를 금지하고 처벌하는 것은 집회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이유였다.

대검찰청 옆에 대법원 청사가 보인다
대검찰청 옆에 대법원 청사가 보인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제11조(옥외집회와 시위의 금지 장소)는 누구든지 ‘국회의사당’, ‘각급 법원’, ‘헌법재판소’ 청사의 경계 지점으로부터 100미터 이내의 장소에서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돼 있다. 또한 제23조(벌칙)는 이를 위반하면 주최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집시법 조항의 ‘각급 법원’에 관한 부분은 모두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며 “위 법률조항은 2019년 12월 31일을 시한으로 개정될 때까지 계속 적용한다”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먼저 “법관의 독립은 공정한 재판을 위한 필수 요소로서 다른 국가기관이나 사법부 내부의 간섭으로부터의 독립뿐만 아니라 사회적 세력으로부터의 독립도 포함한다”며 “심판대상조항의 입법목적은 법원 앞에서 집회를 열어 법원의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를 막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입법목적은 법관의 독립과 재판의 공정성 확보라는 헌법의 요청에 따른 것이므로 정당하다”며 “각급 법원 인근에 집회ㆍ시위금지장소를 설정하는 것은 입법목적 달성을 위한 적합한 수단”이라고 봤다.

그러나 헌재는 “법원 인근에서 옥외집회나 시위가 열릴 경우 해당 법원에서 심리 중인 사건의 재판에 영향을 미칠 위협이 존재한다는 일반적 추정이 구체적 상황에 따라 부인될 수 있는 경우라면, 입법자로서는 각급 법원 인근일지라도 예외적으로 옥외집회ㆍ시위가 가능하도록 관련 규정을 정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법원 인근에서의 집회라 할지라도 법관의 독립을 위협하거나 재판에 영향을 미칠 염려가 없는 집회도 있다”며 “예컨대 법원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검찰청 등 법원 인근 국가기관이나 일반법인 또는 개인을 대상으로 한 집회로서 재판업무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없는 집회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법원을 대상으로 한 집회라도 사법행정과 관련된 의사표시 전달을 목적으로 한 집회 등 법관의 독립이나 구체적 사건의 재판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없는 집회도 있다”며 “입법자로서는 집회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 가능성이 완화될 수 있도록, 법관의 독립과 구체적 사건의 재판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없는 옥외집회ㆍ시위는 허용될 수 있도록 그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심판대상조항은 다중의 압력으로부터 법원을 보호함으로써 법원에서 심리 중인 구체적 사건의 재판에 대한 영향을 차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며 “그런데 집시법은 심판대상조항 외에도 집회ㆍ시위의 성격과 양상에 따라 법원을 보호할 수 있는 다양한 규제수단을 마련하고 있다. 각급 법원 인근에서의 옥외집회ㆍ시위를 예외적으로 허용한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수단을 통해 심판대상조항의 입법목적은 달성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심판대상조항은 입법목적을 달성하는데 필요한 최소한도의 범위를 넘어 규제가 불필요하거나 또는 예외적으로 허용 가능한 옥외집회ㆍ시위까지도 일률적ㆍ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있으므로,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심판대상조항은 법관의 독립이나 법원의 재판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집회ㆍ시위를 제한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각급 법원 인근의 모든 옥외집회를 전면적으로 금지함으로써 법익의 균형성 원칙에도 어긋난다”며 “심판대상조항은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집회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시했다.

헌법불합치 결정과 관련 헌재는 “각급 법원 인근에서의 옥외집회ㆍ시위를 금지하고 있는 심판대상조항에는 위헌적 부분과 합헌적 부분이 공존하고 있다”며 “또한, 입법자로 하여금 법관의 독립이나 법원의 재판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없는 상황 등 제반 사정을 감안해 어떤 경우 예외적으로 옥외집회ㆍ시위가 허용된다고 할 것인지 정하도록 하는 것이 입법자의 입법재량을 존중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헌재는 “심판대상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결정을 선고하되, 심판대상조항에는 합헌적 부분이 있으므로 입법자가 2019년 12월 31일 이전에 개선입법을 할 때까지 계속 적용돼 그 효력을 유지하도록 하고, 만일 위 일자까지 개선입법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심판대상조항은 2020년 1월부터 그 효력을 상실하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종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1조 제1호 중 ‘각급 법원’ 부분에 대해 2차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선고했으나(2004헌가17 결정, 2006헌바13 결정), 이 사건에 있어서는 재판관 전원일치의 의견으로 심판대상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하며 선례를 변경했다.

헌법재판소는 “심판대상조항이 법관의 독립이나 법원의 재판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집회ㆍ시위를 제한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각급 법원 인근의 모든 옥외집회를 전면적으로 금지함으로써 집회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 참여연대 “집회ㆍ시위의 자유와 재판의 공정성 조화롭게 달성될 수 있게”

한편, 이번 소송을 기획하고 진행한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소장 양홍석 변호사)는 이번 헌법재판소 결정을 환영하며, 국회가 헌법재판소 결정 취지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할 것을 촉구했다.

참여연대는 “법관의 독립과 재판의 공정성은 매우 중요한 헌법적 가치이다. 직접적인 물리력 행사나 위협을 통해 법관의 독립을 해하려는 시도는 금지되어야 한다”면서도 “법관이 부당한 압력으로부터 보호되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렇다 하여 재판과 관련된 집단적 의견표명 자체가 절대적으로 금지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다른 국가권한과 마찬가지로 국가의 사법권한 역시 직ㆍ간접적으로 국민의 의사에 정당성의 기초를 두고 행사되어야 하고, 재판에 대한 정당한 비판은 오히려 사법작용의 공정성 제고에 기여할 수도 있다”며 “이와 같은 점을 고려해 국회는 법원 인근이라 하더라도 집회ㆍ시위가 가능한 방식을 충분히 다양하고 넓게 상정해 국민의 집회ㆍ시위의 자유와 재판의 공정성이 조화롭게 달성될 수 있도록 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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