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관기 변호사, ‘코인 부채 탕감 조치 진부’ 도덕적 해이란?
[칼럼] 김관기 변호사, ‘코인 부채 탕감 조치 진부’ 도덕적 해이란?
  • 로리더
  • 승인 2022.07.2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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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변호사협회 부협회장 김관기 변호사(김박법률사무소)
김관기 대한변호사협회 부협회장
김관기 대한변호사협회 부협회장

<도덕적 해이란 무엇인가>

코인 빚까지 탕감해 주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부채 탕감 조치 발표는 진부한 것이었다.

그것이 실제로 적용되는 정도는 이전 정부가 취한 조치에 비해, 또 법원이 사법절차인 파산, 개인회생 절차로 이미 일상적으로 적용하는 정도에 비해 더 나아간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러한 종류의 정책에 대하여는 도덕 타락을 야기한다는 상투적인 비판이 있었다. 갚겠다는 서약을 하고 빌려 간 돈을 갚지 않게 해 주다니 법감정에 어긋나고, 자기책임의 법원칙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금융산업의 홍보전단을 그대로 옮겨 적는 기자들이 ‘도덕적 해이’라는 말을 노래하듯이 지면과 화면에 도배할 것이라는 점을 정책당국자가 몰랐을 리가 없지만, 자신들도 무엇인가 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싶었던 것이겠다.

그런데 도대체 ‘도덕적 해이’란 무엇이기에 식당에서 MSG 사용하듯이 이런 상황에서 마구 사용하는가. 해이(解弛)라고 하니 도덕적 긴장이 풀린 상태인가 도덕의 타락(墮落)인가. 주류 경제이론에서 기술적인 술어로 쓰이는 모럴 해저드(moral hazard)라는 용어를 번역한 것인데, 도덕적인 위험요소, 즉 사람이 빠질 수 있는 유혹이라는 의미이겠다.

골프장에 널려 있는 해저드와 마찬가지로 누가 친 공이라도 또 누구라도 빠질 수 있는 함정이라는 의미이다. 차라리 도덕적 함정, 행동적 함정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나았을 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일반의 용어로 정착해 버린 도덕적 해이라는 말에서 사람을 도덕타락이라며 비난하는 의미를 제거하기는 과연 가능할 것인가 의문도 들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도덕적 해이는 보험과 관련하여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자동차보험에 가입한 사람이 자동차의 열쇠를 방치한 채 놓아두는 상황이다. 도난사고가 나서 손해가 발생하여도 보험회사가 보상해 줄 것이니, 자동차 소유자는 차를 지킬 인센티브가 약화된다. 차 키를 방치하는 것이다. 차는 도난 사고에 취약하게 된다. 극단적으로는 자기 자동차를, 공장에 불을 지르고 보험금을 청구하는 자도 생길 수 있는데, 이런 자들이 먼저 보험에 가입하려고 한다. 이를 역선택(adverse selection)이라고 한다.

물론 이런 부정적 인센티브는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다. 보험법과 보험약관은 그러한 쪽으로 진화되어 왔다. 보험금을 지급할 때 손해 중 일부를 가입자에게 부담하게 하는 소손해면책 또는 자기부담금(copayment) 제도나 손해방지비용의 보험자부담제도(상법 제680조)는 도덕적 해이를 감경하는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보상을 보험가액을 한도로 제한하는 것(상법 제669조)은 보험사고로 인하여 초과이득을 볼 가능성을 배제하려고 한다.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에 의한 사고발생에는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며(상법 제659조), 이를 속이고 보험금을 수령하면 사기죄로 형사처벌을 받는다.

한편, 위험이 큰 자만이 보험에 가입하는 역선택을 억제하기 위하여 사회보험이라는 명목으로 보험가입을 강제하기도 한다.

이런 도덕적 해이와 역선택의 문제를 보험산업은 늘상 당면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보험제도를 없애자는 이야기는 아무도 하지 않는다. 남용을 통제 가능한 수준으로 제어하고, 중대한 위반은 가려내어 처벌하는 것이 모든 제도의 운용방식인 것이다. 흔히 조성행정이라고 부르는 영역에서 실시되는 정책금융, 보조금지원, 국책연구 뿐만 아니라 따지고 보면 모든 종류의 경제규제법이 제공하는 사회안전망에도 그러한 문제가 있지만, 극단적인 자유주의자를 제외하고는 그러한 정책과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부채탕감정책도 일종의 사회보험이라고 이해한다면 도덕적 해이 논란에도 불구하고 실행할 수밖에 없는 정책당국의 의지를 이해할 수 있겠다. 감당할 수 없는 개인 부채는 사람을 실질적으로 노예의 처지로 떨어지게 한다. 이것은 개인의 불행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족, 이웃까지 불행하게 한다. 부정적 외부효과를 내는 것이므로 경제규제의 정당성은 충분하다. 우리가 좋은 사람들이라서 남의 부채를 용서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평화롭게 살 수 있기 위해서인 것이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Forgive us out debts, as we also have forgiven our debtors)”라는 거룩한 말씀(마태복음 6장 12절)은 말 뿐만의 기도가 아니라 고대 중근동에서 주기적으로 시행되기 시작하여 현대의 파산법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전통인 것이다.

혁신을 설파하였다는 슘페터는 기업가는 생래적으로 채무자일 수 밖에 없음을 설파하였다. 은행으로부터의 차입이라는 형식으로 사회로부터 자원을 미리 끌어다가 마중물 격으로 생산활동에 투입하여 그 판매대가로부터 금융부채를 상환하는 흐름이 정상적이라는 것이다. 혁신은 위험한 것이기에 그것에 자신의 자원을 투입하기는 주저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혁신기업가를 꿈꾸는 대부분의 청년은 자기자본이 거의 없기도 하다.

당연히 혁신 기업활동은 거의 실패하고 그 결과는 부채로 남는다. 이 부채를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가게 한다면, 재벌을 제외하고는, 성실한 청년은 아무도 혁신기업활동에 나서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기업활동을 장려하기 위한 인센티브로서 금융부채의 탕감이라는 인센티브의 필요성은 명백하다. 이것은 가진 것이 없는 자도 시장경쟁에 뛰어들게 함으로써 소비자 후생도 진작할 수 있다.

또 소비자 부채의 조정은 거시경제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가계가 부채 상환에 짓눌려 있는 상황에서는 제대로 소비하지 못한다. 그것은 내수에 의존하는 기업의 판매기반이 없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의 대기업은 거의 예외 없이 대중의 소비에 의존한다. 대중의 소비여력이 없어지면 대기업도 망하거나 정부의 수요에 의존하게 된다. 그것은 전반적인 사회화로의 길로 인도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약속은 지켜야 하고, 부채는 갚아야 한다는 법률상 대원칙에도 불구하고 모든 금융계약서에 보이지 않는 잉크로 “아니면 말고” 조항이 쓰여져 있는 것처럼 취급하는 것은 일종의 경제규제로서 나름의 합당한 이유가 있다. 이런 제도를 확립한 미국은 경제적 번영을 오랜 동안 구가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부채탕감 정책이 금융산업을 전반적으로 황폐화시킨 증거는 역사적으로 발견되지 않는다. 파산법정에 이르는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가진 것 모든 것을 팔아 부채 상환에 쓰고 난 다음에 법적 보호를 구한다는 점은 제도가 그 자체로 사람들의 도덕을 타락하게 하지 않는다는 점을 의미한다.

오히려 도덕적 해이 문제는 반대편에 더 있는 것 같다. 헨리 포드는 돈의 본질이 무엇인 지 대중들이 알면 오늘 밤 안으로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세금으로 받아주겠다고 정부가 약속한 것으로 중앙은행이 발행한 법화는 시중은행에 대출이라는 형식으로 사용이 허용된다. 은행은 이것을 주로 기업에 보충적으로 가계에 빌려 주고 기업과 가계는 생산활동, 소비활동을 하고 그 산물로서 대출원리금 상환을 하여 금융산업은 지속한다. 이러한 기업과 가계가 실패하면 은행도, 예금자도 돈을 떼이고 연쇄파산의 위험에 놓이게 되므로, 누구든지 자신의 경제적 선택에 대하여 미리 주의를 하여야 하지만, 파산이라는 위험으로부터 보호를 받는다면 아무래도 도덕적 해이는 발생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사실 은행 등 금융기관이야말로 부채비율이 높아 파산의 위험에 가장 크게 노출되어 있어 대출을 해 간 기업과 가계의 상태를 늘 감시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잘 안 하는 경향이 있다. 예금자보호가 법률로 강제되고, 중앙은행이 최종적 대부자로서의 역할을 하여 뱅크런(Bank-run) 같은 사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즉 은행 자신은 결코 파산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할 때에는 금융산업 종사자들은 도덕적 해이에 빠지게 된다. 낮은 금리에 무차별적으로 대출을 실행하여 부동산 가격이 오르게 하고 그렇게 부풀어 오른 담보를 잡고 다시 대출을 실행하는 식의 무분별한 신용팽창은 바로 그러한 도덕적 해이의 산물인 것이다.

“부처의 눈에는 부처가, 돼지의 눈에는 돼지가 보인다”고 무학대사는 자신을 돼지라고 부른 태조를 들이받았다고 한다. 금융산업 종사자들이 도덕적 해이를 높이 외칠 때, 그들은 자신들의 정신적 용태를 부르짖는 것처럼 보인다.

<위 글은 법률가의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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