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주유소 직원이 실수로 고객의 ‘경유’ 차량에 ‘휘발유’를 넣는 이른바 ‘혼유사고’를 발생했다면 주유소 운영자에게 손해배상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또한 자동차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적극적인 수리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봐 연료계통 라인의 단순한 세척을 넘어 부품 교환 등의 적극적인 수리를 포함해 차량의 적정 수리비를 차량의 교환가격 범위 내에서 폭넓게 인정했다.

특히 차량의 교환가격보다 수리비가 많이 나온 경우, 법원이 인정한 수리비는 교환가격(중고차값)에서 폐차할 경우의 고철수리비를 제외한 가격만을 인정했다.

대구지방법원에 따르면 A회사의 대표는 2016년 5월 회사 차량을 타고 B씨가 운영하는 주유소에서 차량 시동을 끈 채 직원에게 주유를 요청했다. 이 차량은 ‘경유’ 차량인데 직원은 ‘휘발유’ 67리터를 주유하는 ‘혼유사고’를 냈다.

대표는 주유를 마치고 약 200m 정도 주행한 뒤 차량에 진동이 발생하자 점검을 위해 주차를 하고 시동을 끈 후 주유 영수증을 통해 이 차량에 경유가 아닌 휘발유가 주유된 사실을 인지하고 시동을 켰으나 시동이 켜지지 않아 공식서비스센터에 의뢰했다.

서비스센터는 이 차량의 엔진 실린더 블록과 엔진 헤드가 손상되지는 않았으나 고압펌프 부분에 불순물(쇳가루)이 발견된 것을 확인하고, 차량 제조사의 혼유수리 매뉴얼에 따라 인젝터, 고압펌프, 연료펌프, 연료레일 등을 교환한 후 A회사에게 수리비로 1758만원을 청구했다.

이에 A회사는 차량 수리비 1758만원과 정신적 위자료 200만원 등을 구하는 소송을 냈다.

1심인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은 2017년 10월 이 사건 혼유사고로 인한 수리 범위는 연료필터 교환 및 나머지 연료라인 세척에 한정된다고 판단한 후 이를 기준으로 산정한 적정 수리비는 95만원을 인정했다.

이에 A회사가 항소했고, 항소심(2심)인 대구지방법원 제4민사부(재판장 이상오 부장판사)는 최근 A회사가 B주유소 운영자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2017나314289)에서 “피고는 원고에게 1355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것으로 26일 확인됐다.

재판부는 “주유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은 주유 대상 차량이 사용하는 연료의 종류를 확인해 그에 알맞은 연료를 선택한 후 주유해야 할 주의의무가 있다”며 “그런데 피고의 직원은 주의의무를 게을리 해 경유를 연료로 사용하는 차량에 휘발유를 주유함으로써 혼유사고를 일으켰다”며 “직원의 사용자인 피고는 혼유사고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피고는 원고 측 과실을 고려해 피고의 책임이 제한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주장하나, 재판부는 “책임제한에 관한 피고의 주장은 이유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 차량의 운전자에게 주유 과정에서 차량에 주입되는 연료의 종류를 확인할 의무가 있다거나 주유가 완료된 이후 영수증을 통해 차량에 주유된 연료의 종류를 확인할 의무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봤다.

또 “이 차량의 주유 커버 안쪽에는 흰색 바탕에 붉은색으로 ‘DIESEL FUEL ONLY’라고 선명하게 표시돼 있어 피고의 직원은 이 차량이 경유 차량인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수입차량의 경우 경유 차량이 널리 보급되고 있으므로 외관이 동일한 휘발유 차량이 있다는 것을 피고의 책임제한사유로 삼을 수는 없는 점 등을 종합해 보면, 피고의 책임제한 사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차량 수리비와 관련해 재판부는 “오늘날 자동차는 일상적인 편의를 제공하는 도구인 한편 늘 생명과 신체에 위협을 주는 도구이기도 하므로, 운전자의 입장에서 자동차를 운행한다는 것은 생명ㆍ신체의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이고, 사고로 인한 자동차 수리 시 자동차의 안정성 확보를 위한 수리 범위에 관하여는 자동차 정비업체의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자동차 정비업체의 판단과는 달리 수리의 범위를 최소한으로 제한해 자동차의 안정성에 대한 의심을 가진 채 자동차를 계속 운행하도록 하는 것은 운전자에게 가혹한 일이며 그로 인해 사고가 발생할 경우 자동차 정비업체에도 그와 관련된 책임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합리적인 수준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자동차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적극적인 수리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이런 점 등을 종합해 보면, 이 차량의 수리 범위는 혼유수리 매뉴얼에 따라 연료계통 라인의 교환이 필요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므로 이 차량의 수리비는 1758만원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그런데 혼유사고 당시 이 차량의 교환가격은 1405만원 정도였다. 즉 혼유사고 당시의 차량 가격보다 수리비가 훨씬 많이 나왔는데, A회사가 수리를 한 것이다.

이에 재판부는 “사고 당시의 피해차량의 교환가격을 현저하게 웃도는 수리비용을 지출한 경우에는 경제적인 면에서 수리불능으로 봐 사고 당시의 교환가격으로부터 고철대금을 뺀 나머지만을 손해배상으로 청구할 수 있을 뿐이라고 할 것이고, 이렇게 봐야만 손해배상제도의 이상인 공평의 관념에 합치되는 것이며, 따라서 교환가격보다 높은 수리비를 요하는 경우에 굳이 수리를 고집하는 피해자가 있는 경우에는 그 소망을 들어 주어야 하는 것이 사회통념에 비추어 시인되어야 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수리비 가운데 교환가격을 넘는 부분은 그에게 부담시켜야만 한다”고 밝혔다. 이는 대법원 판례(90다카7569)이기도 하다.

재판부는 “이 차량의 교환가격이 1405만원임에 반해 수리비는 1758만원으로 차량의 수리비가 교환가격을 상회하는데, 원고가 차량의 교환가격보다 높은 수리비를 지출하고도 차량을 수리하는 것이 사회통념에 비추어 시인될 수 있을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볼만한 자료는 없다”며 “한편 수리 불능일 경우의 교환가격에서 차량의 고철대금을 공제한 금액이 손해액에 해당하는데, 폐차 시 통상 50만원 내외로 고철값이 형성됨은 경험칙상 인정되므로, 결국 이 차량의 교환가격 1405만원에서 고철대금 50만원을 공제한 1355만원을 이 차량의 적정 수리비로 인정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A회사는 주유소 운영자에게 정신적 손해로 인한 200만원의 지급을 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일반적으로 타인의 불법행위 등에 의해 재산권이 침해된 경우에는 그 재산적 손해의 배상에 의해 정신적 고통도 회복된다고 봐야 할 것이므로 재산적 손해배상에 의해 회복할 수 없는 정신적 손해가 발생했다면, 이는 특별한 사정으로 인한 손해로서 가해자가 그러한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에 한해 그 손해에 대한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다”며 “원고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가 원고에게 재산적 손해배상에 의해 회복할 수 없는 정신적 손해가 발생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봤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저작권자 © 로리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