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범 변호사(법무법인 민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김정범 변호사(법무법인 민우)

채권양도 후 양도통지를 하기 전 채무자로부터 변제를 받아 사용한 채권자에게 횡령죄가 성립하는지(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 2022. 6. 23. 선고 2017도3829)

사례)

A씨는 2013년 인천 남구의 한 건물에서 그가 운영하던 식당 점포를 부동산 중개업자를 통해 B씨에게 양도했다. A씨는 식당 점포와 순창군 토지, 500만원을 교환하는 조건의 교환계약서를 작성했다. 계약서에는 식당 점포에 관한 임차 보증금 채권 양도가 포함됐다. 그 후 A씨와 B씨는 토지의 시가 차이로 인해 교환 대상 토지를 순창군 토지에서 안동시 토지로 변경하는 문제를 두고 갈등을 빚었다. 건물주는 보증금반환청구권의 양도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식당 임대기간이 끝나자 A씨에게 연체된 임료 일부를 공제하고, 남아 있는 임대차 보증금 1146만 원을 돌려줬고, A씨는 이를 받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했다가 횡령 혐의로 기소 당했다.

해설)

이 사건에서 피고인은 자신이 임차하여 운영하던 식당(피고인이 받을 임대차보증금 반환청구권을 포함해서)을 피해자에게 넘겨주면서 A소유의 토지와 현금 500만원을 받았다. 따라서 식당의 소유자인 임대인을 포함해서 3자가 합의하지 않는 한 피고인은 임차인을 피해자로 변경해 정상적으로 식당을 운영하도록 해야 할 의무, 피고인이 식당 소유자로부터 받아야 할 임대차보증금 반환청구권을 피해자에게 이전해야 할 의무를 부담한다. 문제는 채권양도인이 채권양도의 대항요건을 갖추어주기 전 채무자로부터 채권을 추심하여 수령한 금전에 관하여, 횡령죄의 구성요건으로서 재물의 타인성과 보관자 지위를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된다.

과거의 대법원 판례는, 이미 채권을 양도하여 그 채권에 관한 한 아무런 권한도 가지지 아니하는 양도인이 양수인에게 귀속된 채권에 대한 변제로서 수령한 것이므로, 채권양도의 당연한 귀결로서 그 금전을 자신에게 귀속시키기 위하여 수령할 수는 없는 것이고, 오로지 양수인에게 전달해 주기 위하여서만 수령할 수 있을 뿐이어서, 양도인이 수령한 금전은 양도인과 양수인 사이에서 양수인의 소유에 속하고, 여기에다가 위와 같이 양도인이 양수인을 위하여 채권보전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양도인은 이를 양수인을 위하여 보관하는 관계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대법원 1999. 4. 15. 선고 97도666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위 전원합의체 판결에 대하여는 횡령죄의 성립을 부정하는 반대의견이 있음)면서 횡령죄의 성립을 인정하였다.

채권양도는 채권의 동일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양수인에게 이전하는 계약을 말한다. 채권양도에 의해서 채권자의 지위는 양도인에서 양수인에게 넘어가는 것이며, 일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 양도인은 채권자의 지위를 떠나 양수인만이 채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채권양도는 양도인과 양수인 사이에 채권양도 계약이 존재해야 하고, 양도되는 채권이 특정돼 있거나 특정할 수 있어야 하며, 양도대상의 채권이 양도할 수 있어야 한다. 위와 같은 요건을 갖추어서 채권이 양도되면 채권이 그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양도인으로부터 새로운 채권자(양수인)에게 이전되는 것이다. 이처럼 채권(지명채권)의 양도는 양도인과 양수인의 계약만으로 곧바로 그 효력이 발생한다.

그런데 채무자 입장에서는 채권이 양도된 사실을 모르고 과거의 채권자인 양도인에게 지급하는 경우가 있어서 이중지급의 위험성이 발생한다. 여기서 채무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지명채권의 양도는 양도인이 채무자에게 통지하거나 채무자가 승낙하지 아니하면 채무자 기타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민법 제450조 제1황)’고 규정한다. 그리고 ‘위 통지나 승낙은 확정일자 있는 증서에 의하지 아니하면 채무자 이외의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는 규정(제2항)’을 두어 채권이 이중으로 양도된 경우 어느 양수인에게 우선적인 권리가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분명히 한 것이다.

결국 우리 민법은 양도인과 양수인 사이에서의 채권양도 효력은 두 당사자 사이의 계약만으로 그대로 효력이 발생하므로 양도인은 더 이상 채권자가 아니어서 변제를 받아서는 안 된다. 그리고 변제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당연히 양수인에게 반환해야 할 의무를 부담한다. 양도인이 채무자에게 양도통지를 하거나 채무자가 승낙한다는 것은 이중지급을 방지하여 채무자를 보호하기 위한 대항요건에 불과하다. 이처럼 채권양도 계약을 체결하고 대항요건을 갖추기 전에 채무자가 양도인에게 채무를 변제해 채권자가 이를 수령해 처분한 경우에 형사적으로 횡령죄로 처벌할 수 있느냐가 과거부터 논의돼 왔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대법원은 양도인은 양도계약에 의해서 더 이상 채무자가 아니므로 그가 채무자로부터 변제받은 돈은 횡령죄의 구성요건으로서 타인(양수인)의 재물로 봐야 하고, 당연히 양수인을 위해서 보관하는 자의 지위를 갖는다고 보아서 횡령죄로 처벌해 왔다. 위와 같은 논리는 앞서 설명한 채권양도의 성질에 대한 민법의 법리를 그대로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 대법원은 위 사례에 대하여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서 ‘채권양도인이 채권양도 통지를 하는 등으로 채권양도의 대항요건을 갖추어 주지 않은 채 채무자로부터 채권을 추심하여 금전을 수령한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금전의 소유권은 채권양수인이 아니라 채권양도인에게 귀속하고, 양도인이 양수인을 위하여 이를 보관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없어서 횡령죄는 성립하지 않는 다고 판결하였다. 그 이유는 채권양도인이 대항요건을 갖추어 주기 전에 추심하여 수령한 금전의 소유권은 채권양도인에게 귀속할 뿐이고 채권양수인에게 귀속한다고 볼 수 없고, 채권양도인과 채권양수인은 통상의 계약에 따른 이익대립관계에 있을 뿐 횡령죄의 보관자 지위를 인정할 수 있는 신임관계에 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대법원 2022. 6. 23. 선고 2017도3829 전원합의체 판결). 그러면서 과거 대법원 1999. 4. 15. 선고 97도666 전원합의체 판결 등 같은 취지의 판결을 모두 변경하였다.

이에 대하여는 ‘채권양도인이 채권양도 통지를 하기 전에 채권을 추심하여 금전을 수령한 경우 원칙적으로 그 금전은 채권양수인을 위하여 수령한 것으로서 채권양수인의 소유에 속한다고 보아야 하고, 채권양도인은 실질적으로 채권양수인의 재산 보호 내지 관리를 대행하는 지위에 있으므로, 채권양도인이 채무자로부터 채권을 추심하여 수령한 금전에 관하여 채권양수인을 위하여 보관하는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있으므로 종래의 판결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반대의견이 있다.

채권양도의 효력요건과 대항요건에 대한 민사법의 법리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대항요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더라도 양도인과 양수인 사이에서는 채권양도의 효력이 그대로 발생하므로 종전의 판례를 유지하는 소수의견이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다수의견은 채권양도 후 양도통지를 하기 전 채무자로부터 변제를 받아 사용한 채권자에게 횡령죄가 성립하는지에 대한 위 사례에서 더 이상 횡령죄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면서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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