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자신의 작은 창고가 하천 정비사업 부지에 포함돼 강제철거에 처하게 되자 불만을 품고 창고에 불을 냈다가 겁을 먹고 스스로 불을 껐다면 어떤 처벌을 받을까.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은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다. 배심원들은 대부분 무죄 평결을 했으나, 재판부는 유죄를 인정했다.

춘천지방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강원도의 시골 마을에 있는 자신의 토지 및 지상에 건축된 10㎡ 크기의 콘크리트조의 단층 창고가 하천 정비사업 부지에 포함돼 수용으로 소유권이 군으로 이전되는 것에 불만을 있었다.

이에 A씨는 2021년 8월 창고 내부에 있는 신문지와 폐지 등을 바닥에 놓고 불을 붙여 건물을 태우려했다. 그러나 A씨는 불을 보고 겁이 나 주변에 있던 소화기로 스스로 불을 껐다.

A씨는 불을 붙인 이후 112신고 하면서 “창고에다 불을 질렀다. 강제 철거를 하러 와서 제가 불을 질렀어요”라고 말했다. 또한 A씨는 경찰 피의자신문에서도 “강제 철거를 막기 위해 창고에 불을 질렀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검찰은 “A씨가 건조물에 불을 놓아 소훼하려고 했으나, 겁을 먹고 꺼버려 미수에 그쳤다”며 일반건조물방화미수 혐의로 기소했다.

이 사건 재판은 배심원 7명이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했다.

법원

춘천지법 제2형사부(재판장 이영진 부장판사)는 지난 5월 26일 일반건조물방화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또 보호관찰을 받을 것을 명했다.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한 A씨와 변호인은 “창고 내부가 개방된 형태로 과거 주차장으로 사용한 장소이므로 방화죄의 객체인 건조물에 해당하지 않고, 창고가 강제철거를 당할 상황에서 죽으려는 마음에 불을 놓은 것으로 창고를 방화한다는 고의가 없었으며, 창고는 콘크리트로 지어진 구조물로 재질을 고려할 때 연소가 가능하지 않아 피고인의 행위로 방화의 결과발생이 불가능했다”고 주장했다.

배심원 7명의 평결은 무죄가 우세했다. 6명이 무죄로 판단했고, 1명만 유죄로 판단했다.

하지만 재판부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일반건조물방화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불을 놓아 건조물 등을 소훼한다는 점에 대한 고의가 필요하다”며 “그러나 고의는 계획적이거나 확정적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고, 자신의 행위로 위와 같은 결과를 발생시킬만한 가능성 또는 위험이 있음을 미필적이나마 인식하고 그 결과를 의욕하면 충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피고인에게 일반건조물방화의 고의가 있었는지 여부는 범행에 이르게 된 경위, 범행 동기, 불을 붙인 목적물, 방법, 장소, 범행 전후 피고인의 언동, 범행 현장 및 주변의 상황, 매개물의 종류와 성질 등과 같은 객관적인 사정과 정황을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 창고는 방화죄의 객체인 건조물에 해당하고, 피고인은 창고에 대한 방화의 고의를 가지고 매개물인 신문지 및 폐지 등에 불을 붙였다고 보이고, 피고인의 행위로 창고에 대한 방화의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과 위험성이 있었음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며 “따라서 피고인과 변호인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구체적으로 “창고는 토지에 정착되고 콘크리트 구조로 건축됐으며 사람이 출입할 수 있는 점, 창고는 별도의 출입문이 있는 방실이 존재하며, 해당 방실 역시 사람이 들어가 있기에 충분한 크기로 보이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이 창고가 주거용은 아닐지라도 사람이 사실상 기거ㆍ취침에 사용할 수 있는 정도는 된다고 판단된다”고 봤다.

또 “피고인이 불을 붙인 방법, 112신고, 경찰 피의자신문 진술 내용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이 고의로 신문지 등에 불을 붙여 창고를 소훼하려고 했음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며 “피고인이 비록 자살하기 위해서 창고 내에서 바닥에 있는 신문지에 불을 붙였더라도 그와 같은 사정은 방화죄의 고의 인정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양형과 관련해 재판부는 “방화 범행은 공공의 안전과 평온을 해치는 중대한 범죄로서 자칫 불이 번질 경우 무고한 다수의 생명과 재산에 중대한 피해를 야기할 수 있는 위험성이 높아 죄질이 가볍지 않다”며 “피고인은 수사기관뿐만이 아니라, 법정에서도 군청 공무원에 대해 부적절한 발언을 하는 등 진지하게 반성하고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다만, 피고인이 불을 낸 직후 겁을 먹고 112신고를 하고, 스스로 소화기로 불을 진화해 범행이 미수에 그친 점, 이 창고는 피고인의 소유였던 점 등 여러 양형 조건들을 종합해 형을 정한다”고 양형이유를 설명했다.

한편, 재판부는 배심원 평결 결과와 다른 판결을 선고하는 이유에 대해 “배심원들은 범죄사실에 관해 다수결로 무죄 평결을 했으나, 피고인이 건조물에 불을 놓아 소훼하려고 했으나 겁을 먹고 꺼버려 미수에 그친 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며 “따라서 배심원 평결결과와 달리 유죄로 인정한다”고 밝혔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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