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 논란과 사법적 문제를 일으켰던 SK그룹 최태원 회장은 세습이 이미 마무리됐고,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도 세습이 어느 정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것과 대조적으로,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회장의 세습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경제학박사인 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가 펴낸 <재벌공화국> 중에서 ‘현대자동차그룹의 딜레마’라는 꼭지에서 이렇게 정의선 회장을 다루고 있다.

서울대 경영대학원 교수인 박상인 경실련 정책위원장
서울대 경영대학원 교수인 박상인 경실련 정책위원장

박상인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 석사, 예일대 경제학 박사다. 미국 뉴욕주립대 경제학과 조교수,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특히 박상인 교수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재벌개혁위원장과 정책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재벌기업들에 대한 감시ㆍ견제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4월 1일에는 제21회 ‘공정거래의 날’ 기념식에서 김부겸 국무총리로부터 공정거래유공자 정부포상인 ‘홍조근정훈장’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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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인 서울대 교수가 펴낸 <재벌 공화국>

현대자동차그룹(현대차그룹)은 2018년 봄에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을 추진했다.

박상인 교수는 “정몽구(현대차그룹 명예회장)가 10억 원, 정의선(현대차그룹 회장)이 15억 원을 출자해 (2001년) 설립된 자본금 25억 원의 현대글로비스는 현대자동차그룹의 일부 계열사 제품의 생산ㆍ판매에 부수하는 완성차 배달 탁송, 철강 운송 등 각종 물류 업무를 비경쟁적인 사업 양수 또는 수의계약의 방식을 통해 계열사들로부터 일감을 몰아 받는 폭풍 성장을 했다”고 밝혔다.

박상인 교수는 “2013년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사익 편취를 위한 일감 몰아주기가 규제되면서, 현대글로비스에 대한 총수 일가의 지분은 29.99%로 줄어들었으나, 여전히 현대글로비스는 정의선으로의 세습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기업”이라고 봤다.

현대글로비스는 2022년 1월 5일 정의선 부자가 현대글로비스 지분 약 10%를 국제 사모펀드 운용사 칼라일그룹에 매각했다고 공시했다. 이번 매각으로 정의선 회장 지분만 19.99%만 남아도, 2021년 12월 30일부터 시행된 개정 공정거래법에 따른 총수 일가 사익편취 규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박상인 교수는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안은 현대모비스의 모듈 및 AS부품 사업부를 인적 분할해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는 방안으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처럼 정몽구로부터 정의선으로의 현대자동차그룹 세습을 위한 소유지배 구조 재편의 핵심이었다”고 밝혔다.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는 이런 분할합병 계약을 2018년 3월 29일 체결했고, 이날 각각 이사회를 개최해 이 분할합병안을 승인했다. 분할합병은 최종적으로 두 회사 주주총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주주총회는 5월29일 예정돼 있었다.

박상인 교수에 따르면 분할합병안의 핵심인 현대모비스 분할 사업 부분과 현대글로비스의 합병 비율은 0.61대 1로 결정됐다. 현대차그룹은 비상장회사로 간주되는 현대모비스 분할 사업 부문과 상장회사인 현대글로비스의 합병 비율은 전문 회계법인이 자본시장법에 준거, 각각 본질가치 미 ㅊ기준 준가를 반영해 산정했다고 발표했다.

박상인 교수는 “분할합병 이후에는 총수 일가는 기아자동차에 합병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매각하고, 그 대금으로 기아자동차, 현대글로비스, 현대제철 각 사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을 매입함으로써 정의선 회장의 세습을 완성하는 계획이었던 것”이라고 밝혔다.

박 교수는 “총수 일가와 그룹사 간 지분 매입ㆍ매각을 통해 기존 순환출자 고리도 모두 끊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분할합병 비율도 정의선 회장에게 유리하고, 현대모비스 소수주주들에게는 불리한 수치라는 비판이 거세게 제기됐다.

박상인 교수는 “현대글로비스의 1주당 가치는 15만 4911원으로 계산됐으므로, 이 분할합병 비율은 현대모비스 분할 사업부의 가치를 주당 9만 5242원(15만 4911×0.6148203)으로 인정했다는 의미가 된다”며 “이는 현대차그룹이 현대모비스의 분할 사업부의 가치를 전체 현대모비스의 40.12%라고 계산했음을 함의한다”고 말했다.

박상인 교수는 “결국 현대모비스 분할 사업부의 가치가 심각하게 저평가됐을 수 있다는 것”이라며 “합병 결의 당시에 현대모비스의 기업가치는 23조 1100억 원, 현대글로비스의 기업가치는 5조 8100억 원이었다. 따라서 합병 글로비스로 이전되는 현대모비스 분할 사업부의 실제 가치는 11조 5500억 원(전체의 50%)이라면, 현대모비스 주주는 2조 2800억 원(11조 5500억원-전체의 40.12%인 9조 2700억원) 만큼 손해를 보게 되고, 합병 현대글로비스 주주는 그 만큼의 이득을 보게 된다”고 적었다.

박상인 교수는 “총수 일가의 두 회사 지분율 차이는 8.88%이므로, 이러한 총 이득의 8.88%인 2027억 원은 총수 일가에 귀속되는 것이었다”며 “결국 합병 비율에 대한 논란으로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안을 포기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그러면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비율에 대한 문제 제기와 이를 둘러싼 주가 조작 및 분식회계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 정의선 회장에게 부담이 됐을 뿐 아니라, 실제 현대모비스 주주총회에서 분할합병 계획이 승인을 받을 수 있을지도 불확실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박상인 교수는 “그런데 이와 같은 방법으로 현대차그룹이 분할합병을 시도한 또 다른 이유는 지주회사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서였다”며 “현대차그룹 총수 일가는 지주회사 지정제도의 맹점을 이용해 금산분리ㆍ공동출자 문제 해소 등 각종 지주회사 관련 규제를 회피하려고 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박상인 교수는 “현재 현대차와 기아차는 많은 계열사에 공동으로 출자하고 있는데, 이를 해소하기란 쉽지 않다”며 “또한 주지회사가 규제를 받게 되면, 현대캐피탈과 현대카드 같은 금융회사를 동시 보유할 수도 없게 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현대차그룹이 존속 현대모비스를 지주회사가 아닌 ‘지배회사’라고 부른 것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화하지는 않겠다는 의중을 보인 것”이라고 봤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현대차그룹의 경우에는 정의선이 회장으로 취임해 실제로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으나, 그룹 지배 지분의 세습까지는 아직 이루지지 않은 실정”이라고 말했다.

박상인 교수는 “현대차그룹의 세습 문제와 더불어 삼성그룹의 향후 남매(이재용, 이부진, 이서현) 간 계열 분리와 보험업법 개정 문제까지 고려할 때, 재벌의 소유지배 구조에 대한 개혁 정책을 효과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정책 공간은 아직 열려 있다”고 밝혔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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