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민변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 의혹 사태와 관련해 “청와대와의 과거사 사건 재판거래 의혹은 사법부 수장에 의해 사법부 독립이 훼손된 사건으로 헌정질서 파괴 범죄”라며 “책임자들을 반드시 처벌함으로써 헌정질서 파괴세력을 일소하고, 법원이 국민 위에 군림하는 곳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곳임을 다시금 일깨워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법농단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T/F(단장 천낙붕)’가 지난 18일 발간한 “긴급조치 등 과거사 사건 재판거래 의혹”을 담은 ‘사법농단 이슈페이퍼9’를 통해서다.

◆ 긴급조치 국가배상 사건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2010년 12월 16일 선고한 판결(2010도5986)에서 긴급조치가 위헌ㆍ무효라고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2014년과 2015년 국가의 책임을 부정하는 판결을 잇달아 내놓았다.

대법원은 2014년 10월 27일 긴급조치가 당시로서는 유효한 법규였던 만큼 이를 따른 공무원의 직무행위가 곧바로 불법행위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라는 판결(2013다217962)을 했다.

또 대법원은 2015년 3월 26일에는 긴급조치 9호는 위헌이지만 긴급조치 발령은 고도의 정치적 행위로 국가가 배상할 필요가 없다는 판결(2012다48824)을 했다.

민변은 “이 판결들은 기존 대법원 판례와도 배치되는 것으로서, 과거사 단체들은 물론 법조인과 법학 연구자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비판은 시민사회나 학계 뿐 아니라 하급심 판결로도 이어져, 대법원 판결과 결론을 달리하는 판결이 잇달아 선고됐다.

2015년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재판장 이옥형)이 긴급조치에 따른 수사의 불법성을 인정하는 판결을, 2015년 9월 서울중앙지방법원(재판장 김기영)과 2016년 광주지방법원(재판장 마은혁)에서는 긴급조치 발령의 위법성을 인정하는 판결을 했다.

◆ 민간인 학살 국가배상 사건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의 희생자들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실규명 신청을 해 결정을 받은 후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2011년 6월 30일 선고한 판결(2009다72599)에서 원고들 청구를 인용하면서 “진실을 은폐하고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조차 게을리 한 국가가 이제 와서 뒤늦게 문경학살 사건의 유족들이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에 따라 진실을 알게 된 다음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 대해 미리 소를 제기하지 못한 것을 탓하는 취지로 소멸시효완성의 항변을 해 채무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해 신의칙에 반하는 것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며 국가의 소멸시효 항변을 배척해왔다

그런데 2013년 5월 16일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2012다202819)을 통해, 기존 판례 변경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면서 일방적으로 ‘시효정지 규정’을 준용해 ‘상당한 기간’(6개월, 특수한 사정이 있는 경우 3년) 내에 소송을 제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판결을 했다.

이어서 대법원은 2015년 4월 17일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실규명 신청도 하지 않고 직권조사 개시 결정도 나지 않은 사건에서는, 국가의 소멸시효 주장이 권리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는 판결(2014다234155)을 선고했다.

민변은 “이 또한 종래 대법원의 판결례 배치되는 것이었다”며 “이렇게 과거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을 제한하는 대법원의 판결 역시 과거사 피해자들이나 시민사회는 물론, 학계에서도 많은 비판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 공개된 문건의 내용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은 지난 5월 25일 조사보고서를 통해 공개한 문건 중, 과거사 판결과 관련이 있는 것은 ①‘법관의 잘못된 재판에 대한 직무감독 [412]’, ② ‘대법원 판례를 정면으로 위반한 하급심 판결에 대한 대책 [73] [395]’, ③‘상고법원 입법추진을 위한 BH 설득방안 [80]’ 등 크게 3개로 볼 수 있다.

◆ 법관의 잘못된 재판에 대한 직무감독 [412]

이 문건은 대법원의 판례에 반하는 판결을 선고한 하급심 법관에 대해 직무감독을 행할 필요성이 있으며(직무감독 가부 및 범위에 대한 검토 포함), 직무감독권행사 시 부정적 영향 발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외적으로 물의가 야기된 경우에 한해 절차적으로 정당ㆍ투명한 방법을 고안해 행사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 언급돼 있다.

“법관의 재판상 판단이 문제되어 국민과 여론의 비난과 비판을 받은 사례”의 하나로 “법령해석의 통일을 위하여 선고된 대법원 판결에 반하는 판결을 선고하여 논란이 된 사례”를 들면서, 긴급조치 관련 대법원 판결과 배치되는 하급심 판결을 한 김OO 전 부장판사와 이OO 전 부장판사를 명시적으로 특정한다.

◆ 대법원 판례를 정면으로 위반한 하급심 판결에 대한 대책 [73] [395]

이 문건에는 긴급조치 관련 대법원 판례에 반하는 판결을 선고를 한 김OO 부장판사를 특정해, “대법원 판례를 정면으로 위반하였다”고 단정하고 나서, 징계를 포함해, 회피 및 재배당, 법관 연수 강화, 선례 구속 원칙 확립을 위한 연구 등의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대법원 판례에 반하는 판결 선고가 “매우 부적절한 행동으로서 직무윤리 위반”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한 대응방안으로 ‘직무감독권 발동’ 자체는 “판사들의 심각한 반발” 또는 “한겨레, 경향 등 진보언론과 야당에서 법원을 공격할 것”이라는 등의 이유로 ‘소극’적이라고 하면서도, 회피 및 재배당(하급심 판사가 정당한 이유 없이 대법원 판례의 적용을 거부하고 자신의 개인적 양심을 앞세우는 것을 불공정한 재판을 할 것이라는 의혹이 생기는 경우라고 함), 사건신속 처리 트랙 개발(1심에서 대법원 판례에 반하는 판결이 선고되면 적시처리 필요 중요사건으로 선정하여 신속한 처리), 법관연수 강화(법관들에게 판례의 구속력에 대한 경각심 고취), 한국형 선례 구속의 원칙 확립을 위한 연구를 실시한다는 등을 제시하고 있다.

◆ 상고법원 입법추진을 위한 BH 설득방안 [80]

이 문건은 긴급조치에 관한 대법원 판결을 사법부의 청와대에 대한 구체적인 협력 사례로서 활용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사법부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최대한 노력한 사례로 크게 ▲과거 정권의 적폐 해소 ▲미래지향적 경제부흥과 국민행복을 들고 있는데, 이 중 과거 정권의 적폐 해소와 관련된 사례로 ①과거사 정립, ②자유민주주의 수호 관련 판결을 들고 있다.

“과거사 정립”을 위한 사례로, ‘과거사 정리위원회 사건’과 ‘대통령 긴급조치 사건’을 들면서, “부당하거나 지나친 국가배상을 제한하고 그 요건을 정립”한 것과 “대통령 긴급조치가 내려진 당시 상황과 정치적 함의를 충분히 고려”한 것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국가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를 제한한 판결들과 긴급조치로 인한 국가배상 책임 자체를 부인한 판결들을 열거하고 그 내용을 설명했다.

◆ 표적 징계

과거사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부당한 판결과 그에 대해 이견을 표명한 하급심 법관에 대한 징계 추진 시도가 있었다.

민변은 “이 사안은, 긴급조치의 위헌성을 인정하면서도,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통치행위라는 이유로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할 수 없다며 국가의 불법행위에 면죄부를 주었던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는 소신 있는 판결을 선고한 법관을 표적으로 삼아 징계를 추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계속된 ‘소극’ 의견에도 불구하고, 부처를 바꾸어 재차 검토를 지시하고, 심지어 ‘수시부과과제’로서 해외 사례까지 수집을 지시하는 등으로 징계를 적극 추진하는 모습을 보였다.

민변은 “부당한 대법원 판결을 바로잡는 하급심 판결에 대해 대법원 판결과 다른 내용의 판결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법관에 대한 징계를 시도한 것은, 헌법상 법관의 재판상 독립(헌법 제103조)과 신분상 독립을 정면으로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라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또한 민변은 “법관에 대한 징계 권한이 있는 대법원장이 징계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사항에 대해 자신의 권한을 현저하게 남용해 법관의 징계를 실무적으로 담당하는 법원행정처로 하여금 ‘사찰’에 가까운 징계의 검토를 지시함으로써 법적으로 의무 없는 일을 강요한 것이므로, 이는 징계절차가 구체적으로 진행됐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형법 제123조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 재판거래 의혹

대법원은 상고법원을 관철시키는 수단으로서 긴급조치 관련 문제의 대법원 판결 등을 BH(청와대)에 적극 홍보하고,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과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오찬회동 과정에서도 상고법원 추진의 동력을 확보하려 했다.

‘상고법원 입법추진을 위한 BH 설득방안[80]’의 내용은, 2015년 8월 6일자 ‘현안말씀자료’의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인데, 이에 따르면 대법원은 “과거왜곡을 광정하고 과거사를 정립한다”는 명분 하에 ①‘과거사정리위원회 사건’은 부당하게 지나친 국가배상을 제한하고 요건을 정립한다는 이유로, ②‘대통령긴급조치 사건’은 대통령 긴급조치가 내려진 당시 상황과 정치적 함의를 충분히 고려한다는 이유로, 각 국가배상 책임을 제한하는 판결을 선고했다고 내세운 것을 알 수 있다.

그동안 과거사 판결이 “과거 정권에서의 이념ㆍ정파 간 소모적 대립ㆍ논쟁의 결과, 과거사 문제가 오히려 갈등과 반목을 조장하는 방향으로 접근” 돼온 것으로 자의적으로 진단하고, “진정한 화해와 국민통합을 이룰 수 있는 해결책”으로서 국가배상책임을 제한하는 과거사 판결들을 “BH 설득의 구체적 방안” 중 “정부 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구체적 협력 사례”로써 제시했다(2015. 7. 28.자 ‘상고법원 입법추진을 위한 BH설득방안[80]’).

민변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직 당시 추진했던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대법원의 과거사 관련 판결에 영향을 미쳤고, 그 결과를 취합해 청와대에 보고함으로써 재판결과를 상고법원 입법추진과 관련한 청와대와의 거래 수단으로 사용하려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변은 “특히 위 대법원 판결은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의미에서, 양승태 대법원은 위 대법원 판결을 BH에 적극적으로 부각시키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게다가 이들 사건이 모두 국가범죄의 피해자들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사건으로 국가를 상대한 소송에서 청와대와 대통령을 해당 사건의 실질적 피고라는 점까지 고려한다면, 소송 당사자 일방과 ‘판결 거래’를 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심지어 ‘대통령 긴급조치 사건’은 대통령 긴급조치가 내려진 당시 상황과 정치적 함의를 충분히 고려했다고 함으로써 스스로 긴급조치 사건을 법리적 판단이 아닌 ‘정치적 판단’을 했음을 자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현안관련말씀자료”에 언급된 판결들은, 대법원이 무리하게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거나 판례를 변경하거나 기존의 법리와 다른 법리를 적용한 것으로 비판받아 왔던 것들이다.

민변은 “재판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일관된 기획과 업무 추진 등은 재판거래를 위해 이 사건들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거나, 그 결론을 당시 박근혜 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했을 것이라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한 정황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정치적 목적을 위한 법관 징계 시도

민변은 “과거사 사건 판결을 둘러싼 표적징계와 재판거래 의혹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의 맥락으로 꿰어 볼 수 있다”며 “2015년 8월 6일 박근혜 대통령과의 회동 직후 한 달 만에 위 긴급조치 관련 대법원 판결에 반하는 하급심 판결이 선고되자, 상고법원 추진에 혹여 차질을 빚을까 우려해, 그 직후부터 지속적, 반복적으로 해당 하급심 판결 재판부의 부장판사에 대한 일련의 징계권 행사의 검토를 지시했던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2015년 9월 18일 및 19일 두 차례에 걸쳐 징계에 소극적인 검토 의견이 보고되자, 다른 법원행정처 소속 법관에게 재차 징계 가부 등에 대한 검토를 지시하거나, 심지어 해외연수 법관에게조차 관련 징계 사례와 자료 등에 대한 수집까지 지시하는 등 특정 판사를 표적으로 삼

아 징계권 행사에 집요한 모습을 보였다고 민변은 전했다.

◆ 특조단 조사의 한계 및 수사의 필요성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 조사보고서는 직권남용죄의 해당 여부에 대해 긍정의견과 부정의견을 병렬적으로 나열하면서 명확한 판단을 회피했으며, 이를 토대로 법관들에 대한 고발 등 형사 조처를 하지 않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민변은 “그러나 현재 과거사 판결을 대상으로 한 재판거래가 있었다는 합리적 의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에 충분한 조사나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이 부분에 대한 강제수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민변은 “정치권력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판결을 위해 전원합의체 회부를 결정하거나 재판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대법관들의 재판권을 침해해 권리행사를 방해한 것으로 직권남용죄(형법 제123조)에 해당할 것이며, 이에 못 미친다고 하더라도 판결을 청와대와의 거래 목적물로 삼고서 해당 재판의 진행경과, 사건을 담당하는 대법원 재판부 및 담당 대법관의 심증, 선고시점과 같은 절차적 사항 등을 청와대에 전달했다면, 이는 재판의 독립과 공정을 보장하기 위한 직무상 비밀을 타인에 누설한 행위로서 공무상 비밀누설죄(형법 제127조)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 “행정부와 독립해 재판을 해야 할 사법부가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적극 협조하기 위해 판결을 하고, 법리적 판단이 아닌 정치적 함의를 고려해 판결을 내렸다고 한다면, 이러한 판결들은 대통령(정부)과 거래의 대상이 됐다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변은 “대법원이 상식과 법리를 벗어나 정치적 판단에 따라 판결을 내린 것이라면, 이는 형식상 대법관의 재판일 뿐 그 실질은 헌법이 규정한 법원과 법관의 독립을 침해해 내린 부당한 판결로서, 주권자인 국민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것”이라고 질타했다.

민변은 그러면서 “이 사건은 (양승태 대법원장의) 사법부 수장에 의해 사법부 독립이 훼손된 사건으로 헌정질서 파괴 범죄”라며 “반드시 철저한 수사가 이루어져 그 책임자들을 반드시 처벌함으로써 헌정질서 파괴세력을 일소하고, 법원이 국민 위에 군림하는 곳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곳임을 다시금 일깨워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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