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한국의 대표적 인권변호사이자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헌신해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창립회원 한승헌 변호사가 4월 20일 향년 8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수십 년 동안 굵직한 시국사건을 담당하며 인권변호 역사를 써온 한승헌 변호사님을 추모하고 기억하기 위해 민주인권세상을 만드는 데 함께 하고 있는 각계 인권시민사회단체들은 21일 ‘산민(山民) 한승헌 변호사 민주사회장 장례위원회’를 구성했다.

민변(회장 김도형)은 이날 추모 성명에서 “민주화 이후 감사원장과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올바른 감사제도와 사법개혁에 헌신하셨던 변호사님은 우리 시대의 큰 어른이셨다”고 밝혔다.

민변은 “우리 모임은 진실을 기록하고 밝히려 치열하게 노력하셨던 솔직한 삶, 인자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유머와 여유를 가진 언제나 담고 싶은 참 인간으로서 모습을 모든 회원들과 함께 기억하겠습니다. 한없는 그리움으로, 변호사님의 발자취를 오래동안 가슴에 새기겠습니다”람녀서 영면을 기원했다.

다음은 민변의 추모 성명 전문

<시대의 큰 어른, 산민(山民) 한승헌 변호사님을 추모합니다>

말이 넘치는 세상이라지만, 변호사님을 떠나보내는 우리 모임의 애절한 마음을 담아낼 문장을 감히 찾을 수 없습니다. 언제나 단번에 좌중을 무장해제 시켰던 변호사님의 유머와 위트, 민변 변호사라면 ‘사서 고생하는 사람이 됩시다’라는 죽비 같은 일갈, 모임에 방문한 모두가 부러워하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현판과 불과 얼마 전 몸이 불편하신 중에도 공익소송을 하는 후배 변호사들을 위해 ‘시민변론기금’ 글씨를 직접 써주셨던 모임에 대한 애정과 헌신, 서른넷 민변이 지나온 모든 순간에 한승헌 변호사님의 모습이 오롯이 남아 있습니다.

아무도 진실을 묻지 않았던 유신시대 법정에서 변호사님께서는 모든 법률가의 귀감이 되는 성실하고 훌륭한 변론을 하셨습니다. ‘법대 위에서 진실에 침묵하는 판사들이 조금이라도 부끄러워하도록’ 법리에서도 한치의 부족함이 없었고, 법정에 선 피고인들이 조금이라도 위축되지 않도록 투쟁의 정당성에서도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 용기 있는 변호인이셨습니다. ‘분지 필화사건’, ‘동백림 사건’, ‘오적 필화사건’, ‘민청학련 사건’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사건’ 등 시대의 진실이 담긴 사건들에서 변호사님은 온몸으로 ‘하나의 진실’을 지켜내는 외로운 소명을 언제나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유럽 간첩단 사건으로 사형된 김규남 의원을 애도하는 수필 〈어느 사형수의 죽음 앞에서 - 어떤 조사(弔辭)〉의 반공법 위반으로, 다른 한 번은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사건’의 피고인으로 두 차례 옥고를 치르고, 변호사 자격이 박탈되는 상황에서도 옥중에서 새롭게 저작권을 공부하고, 삶에 대한 여유와 유머를 놓지 않으셨습니다. 민주화 이후 감사원장과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올바른 감사제도와 사법개혁에 헌신하셨던 변호사님은 우리 시대의 큰 어른이셨습니다.

변호사님께서는 늘 스스로 인권변호사라고 소개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변호사라면 모름지기 인권 변호가 본연의 업무인데, 본업을 하는 사람을 그렇게 불러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인권변호사를 부르는 세상 사람들보다, 변호사 스스로 ‘인권변호사’라고 불리는 것에 경계하고 겸손해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배웠습니다.

또, ‘나를 의롭다 믿고서 남을 하대하지 말자’고 하셨습니다. ‘약한 자에게 힘을 주고, 강한 자를 바르게 하는 세상을 만들자’고 하셨습니다. 갈수록 사회적 갈등과 대립이 격해지고 있는 요즘, 변호사님의 지혜와 균형이 더욱 그립습니다.

변호사님께서는 변호사는 법정에서의 변론을 잘 수행해야 하지만 재판에 정의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할 때, 그 실상을 기록해서 동 시대인들에게 널리 알리고 또 다음 세대에게 이를 전해줄 의무가 있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변호사님께서도 자서전 <한 변호사의 고백과 증언>을 비롯해 시집, 산문집, 논문, 법학전문서적까지 폭넓은 분야에서 성실히 써내려간 방대한 시대의 기록을 남기셨습니다.

우리 모임은 진실을 기록하고 밝히려 치열하게 노력하셨던 솔직한 삶, 인자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유머와 여유를 가진 언제나 담고 싶은 참 인간으로서 모습을 모든 회원들과 함께 기억하겠습니다. 한없는 그리움으로, 변호사님의 발자취를 오래 동안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편안히 영면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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