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보이스피싱 조직원에게 ‘대포통장’(통장을 개설한 사람과 실제 사용자가 다른 통장)을 양도한 계좌명의인(통장 개설자)이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송금한 돈(피해금)을 마음대로 인출해 사용한 경우 보이스피싱 피해자에 대한 횡령죄가 성립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포통장 명의인이 임의로 인출한 행위를 횡령죄로 처벌함으로써 사기피해자를 보호한 판결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대법원장 김명수, 주심 대법관 고영한)는 19일 보이스피싱 조직원에게 대포통장을 양도한 통장 개설인의 횡령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유죄 취지로 서울남부지법 형사항소부로 돌려보냈다. (2017도17494)

횡령죄를 인정한 8명의 대법관 다수의견에 대해 4명(김소영, 박상옥, 이기택, 김재형 대법관)의 별개의견과 1명(조희대 대법관)의 반대의견이 있다. 별개의견은 대포통장을 양수한 보이스피싱 조직원을 피해자로 한 횡령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취지이고, 반대의견은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대법원 대법정
대법원 대법정

피고인 A씨는 보이스피싱 조직원에게 자신 명의의 예금통장, 체크카드 등 접근매체를 양도했다.

보이스피싱 조직원은 피해자 J에게 전화해 검사를 사칭하면서 ‘명의가 도용된 것 같으니 피해예방을 위해 금융기관에 있는 돈을 해약해 금융법률 전문가인에게 송금하면 범죄연관성을 확인 후 돌려주겠다’고 거짓말을 했다.

이에 속은 J씨는 2017년 2월 14일 이 사건 계좌에 613만원(사기피해금)을 송금했다. 그런데 피고인들은 이날 별도로 만들어 소지하고 있던 계좌에 체크카드를 이용해 그 중 300만원을 임의로 인출했다.

이로써 피고인들은 이 사건 계좌의 접근매체를 양도함으로써 보이스피싱 조직원은 사기범행을 방조하고, 이 사건 사기피해금 중 300만원을 인출함으로써 횡령 혐의(피해자 J씨)로 기소했다.

1심과 2심은 이들의 횡령 혐의에 대해 문죄로 판단했다. 사기방조 혐의는 유죄로 인정했다. 이에 검사가 대법원에 상고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전기통신금융사기 범행인 이른바 보이스피싱으로 제3자 명의 사기이용계좌(대포통장 계좌)에 송금된 피해금을 그 제3자(계좌명의인)가 인출해 소비한 경우 횡령죄가 성립하는지, 성립한다면 피해자가 누구인지다.

형법 제355조 제1항은 횡령죄에 관해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몰을 횡령하거나 그 반환을 거부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전원합의체 대법관 8명은 보이스피싱 피해자에 대한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하며, 항소심 법원으로 파기환송했다.

재판부는 “계좌명의인은 보이스피싱 범행에 이용된 계좌(대포통장)에 송금된 사기피해금을 보관하는 지위에 있고, 사기피해자에게 이를 반환하지 않고 이를 가질 의사로 인출하면 사기피해자에 대한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밝혔다.

또 “어떤 계좌에 계좌명의인과 송금인 사이에 법률관계 없이 자금이 송금된 경우 그 돈은 송금인에게 반환되어야 하므로 계좌명의인은 이를 그대로 보관하고 있어야 한다”며 “이를 영득할 의사로 인출하면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계좌명의인이 개설한 예금계좌가 보이스피싱 범행에 이용돼 그 계좌에 피해자가 사기피해금을 송금ㆍ이체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계좌명의인과 사기피해자에게 송금된 사기피해금을 반환해야 하므로 이를 보관하는 지위에 있다”며 “이를 영득할 의사로 인출하면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다만 계좌명의인이 보이스피싱의 공범이라면 피해금을 인출해도 이는 사기범행의 실행행위에 지나지 않으므로 별도로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반면, 계좌명의인과 전기통신금융사기의 범인 사이의 위탁관계는 횡령죄로 보호할 가치가 없으므로 사기범에 대한 횡령죄는 성립할 수 없다고 봤다.

사기범이 제3자 명의 사기이용계좌를 이용하는 행위나 그 계좌로 피해금을 송금ㆍ이체하게 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범죄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계좌명의인과 사기범 사이의 관계를 횡령죄로 보호하는 것은 그 범행으로 송금ㆍ이체된 돈을 사기범에게 귀속시키는 결과가 돼 옳지 않다고 판단했다.

한편 김소영, 박상옥, 이기택, 김재형 대법관은 “사기피해자에 대한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고, 대포통장 양수인에 대한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봤다.

대법관 다수의견과 결론과 같으나 피해자를 달리 본 것이다.

4명의 대법관들은 “사기피해자가 사기이용계좌에 피해금을 송금ㆍ이체하면 전기통신금융사기 범죄는 기수에 이르므로 더 이상 그 돈에 대한 소유하지 않게 된다”며 “사기피해자와 계좌명의인 사이에 위탁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계좌명의인은 대포통장 양수인과의 약정상 계좌에 들어온 돈을 그대로 보관하고 임의로 인출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조희대 대법관은 “사기피해자에 대한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고, 대포통장 양수인에 대한 횡령죄도 성립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대법원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범죄에 이용된 대포통장 명의인에 대해 사기피해자를 위해 그 통장에 입금된 사기피해금을 그대로 보관해야 할 자의 지위에 있음을 전제로 대포통장 명의인이 임의로 인출한 행위를 횡령죄로 처벌함으로써 사기피해자를 보호한 판결”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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