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이성호)는 피고인이 재판부에 국선변호인 선정 청구를 했는데도 재판부가 제1회 공판기일 전까지 국선변호인 선정 여부를 결정하지 않은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 행위라고 판단했다고 18일 밝혔다.

국가인권위는 이에 대법원장에게 ▲피고인이 경제적 어려움을 이유로 형사소송법에 따른 국선변호인 선정을 청구할 경우 늦어도 제1회 공판기일 이전까지 신속하게 국선변호인 선정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유사사례 재발방지를 위해 각급 법원에 이 사건 사례를 전파하고, 국선변호인선정 청구 관련 절차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인권위에 따르면 진정인 A씨는 상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2016년 11월 1심 재판을 받았다. A씨는 재판 전에 피진정인(판사)에게 국선변호인 선임장을 제출했으나, 며칠 후 2016년 11월 4일 첫 공판기일에 재판정에 출석했는데, 진정인을 변호할 변호인이 없다.

담당판사(피진정인)는 재판 당시 A씨의 공소사실 등에 대한 확인을 거친 후 “변호인 없이 진행합시다”라고 말했고, A씨는 이를 거부할 경우 불이익이 있을까 우려해 “네”라고 말했다.

이후 A씨는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이 선고됐는데, 당일 국선변호인이 선정됐다. 다음날 국선변호인이 접견을 와 A씨에게 “1심 형이 너무 많이 나왔으나 항소하라”고 말하고 갔다. 당시 진정인(A씨)처럼 변호인 없이 재판을 받은 사람이 2명 더 있었다.

A씨는 “변호인 없이 재판을 진행해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것은 부당하다”면서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담당판사는 “진정인이 법원 직권으로 변호인을 선정해야 하는 경우(형사소송법 제33조 제1항)에 해당하지 않고, 진정인이 공소사실을 인정하고 증거에 동의했으며, 피해자와 합의도 끝나 양형과 관련한 구체적인 주장 사유가 없었다고 밝혔다.

또한 담당판사는 “법정에서 피고인(A)에게 국선변호인의 도움이 필요한 사유가 무엇인지 확인하자 딱히 특별한 사유가 없어 선정청구를 취하하겠다고 진술해 국선변호인을 선임하지 않고 공판을 진행했으며, 선고기일에 징역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하면서 국선변호인을 선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권위 조사 결과, 진정인은 수급자증명서 등 소명자료와 함께 국선변호인 선정 청구를 했으나, 담당판사가 제1회 공판기일 전까지 선정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으며, 재판 당일 진정인에게 국선변호인 선정 청구를 유지할 것인지 의사를 물어 취하하게 한 뒤 변호인 없이 재판을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인권위 침해구제제1위원회(위원장 장상환)는 재판부의 이 같은 행위는 형사소송법과 형사소송규칙, 국선변호에 관한 예규에서 규정한 절차를 위반, 헌법이 보장하는 변호인의 조력 받을 권리를 침해한 행위라고 판단하고, 대법원장에게 의견을 표명하기로 했다.

위원회는 “피진정인(판사)은 관련 자료를 검토한 뒤 진정인이 빈곤의 사유로 변호인을 선임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지체 없이 국선변호인을 선정하고, 진정인과 변호인에게 이를 고지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피진정인은 진정인의 청구와 관련해 결정을 지연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 제1회 공판기일 전까지 아무런 결정을 하지 않았으며, 제1회 공판기일에서도 국선변호인 선정대상 여부에 대해 아무런 심리도 하지 않았다”며 “피진정인의 이러한 행위는 관련 법령 및 규정을 위반해 진정인의 국선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기회를 박탈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위원회는 “결론적으로 피진정인이 진정인의 적법한 국선변호인선정청구에 대해 제1회 공판기일 전까지 아무런 결정을 하지 않은 것은 형사소송법 제33조 제2항, 형사소송규칙 제17조 제3항 및 국선변호에 관한 예규 제6조에서 규정한 절차를 위반한 행위로서 헌법 제12조 제4항에서 보장하는 진정인의 국선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 행위이며, 적법절차를 위반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한편 인권위는 “이번 사건의 경우 국선변호인 선정에 관한 사항이 재판에 포함, 국가인권위원회법(30조 1항)의 조사대상에 해당되지 않으나, 피고인에게 변호인의 조력 받을 권리를 충분히 보장하기 위한 절차적 기본권 성격이 강하고, 특히 헌법에서 변호인의 조력 받을 권리를 명문으로 보장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관행이나 제도적 개선 필요성 차원에서 검토했다”고 밝혔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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