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범 변호사(법무법인 민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br>
김정범 변호사(법무법인 민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대통령 사면권, 거래의 대상이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문재인 대통령과의 회동을 앞두고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赦免)을 건의할 것이라는 기사다. 더 나아가서 문 대통령이 이를 거부할 명분이 없다면서 윤 당선자의 제안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압박하는 기사도 보인다.

잘 알고 있듯이 사면권은 죄를 용서하여 형벌을 면제해 주는 국가원수의 독자적인 권한이다. 사면은 과거 군주시대에 하나의 은전으로 여겨지던 유물이며, 현대에 와서는 법원의 판결이 가지는 경직성을 완화시켜주는 수단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현대국가에서 대부분의 나라는 3권분립의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국가의 권능을 입법, 사법, 행정으로 나눠서 각 권한 사이에 견제와 균형을 이룸으로써 권한의 남용을 방지하고, 국민들에 대한 인권침해 요소를 방지하려는 것이다.

사면권은 대통령 고유의 권한이지만, 그 형식과 절차에 대해서는 사면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사면위원회를 구성해 사면의 대상자를 선정한 다음 법무부장관이 대통령에게 건의하는 형식이다. 실질적으로는 대통령이 사면의 대상을 선정한 다음, 법무부 장관을 통해서 형식적 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물론 대통령의 권한행사이기 때문에 헌법과 법률에서 정하고 있는 행사의 방법과 통제절차에 따라야 한다.

그렇다면 사면권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기 때문에 아무런 제한 없이 행사할 수 있는 것일까? 모든 국가권한의 행사는 내재적 제한이 있다고 봐야 한다. 그 내재적 제한은 권한을 허용하는 제도적 취지를 중심으로 생각해 봐야 한다. 국민에 대한 형사처벌은 검사의 수사를 통한 공소제기, 그리고 사법부의 판결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이 행사하는 사면권은 사법부의 핵심적 권한인 판결을 무력화시킬 우려도 있다. 잘못 행사하면 국가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는 중차대한 문제다. 그만큼 조심스럽게, 그리고 예외적으로 행사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사법부의 판결은 탄력성을 갖기 어렵다. 구체적 타당성을 고려하기는 하지만 획일적으로 판결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형평의 문제나 국민적 화합이라는 여론을 고려해서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판결이 이뤄질 수도 있다. 사면권은 사법권이 갖고 있는 경직적 한계에 탄력성을 불어넣는 것이 일차적 과제다. 대통령 개인의 권리로 생각해서 주관적으로 행사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특정 정파의 이익이나, 경제적인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사면권을 언제 누구를 대상으로 행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지 끊임없는 고민을 거듭해야 한다. 다만 특정인을 대상으로 하는 사면권은 지양해야 한다. 대통령과 같은 정파를 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돼서도 안 된다. 사회정의를 부르짖다가 형사처벌을 받은 경우, 소수나 사회적 약자를 위해 목소리를 내다가 유죄판결을 받은 경우 등이 대표적인 사면권의 대상이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선거에 출마하면서 전 대통령 박근혜와 이명박의 사면을 들고 나왔다. 자신이 검사로 재직하면서 직간접적으로 수사에 관여했던 인물이다. 스스로가 자신의 수사를 부인하고 있는 꼴이다. 그러는 과정에 박근혜 전 대통령은 건강상의 이유로 사면을 받았다. 이제 이명박 전 대통령이 남았을 뿐인데, 당선되자마자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 운운의 이야기가 흘러나고 있어 당혹스럽다. 더욱이 자신의 선거운동을 도운 상당수의 사람들이 이명박 대통령 시절의 사람들이다. 일종의 보은을 위한 사면 건의로 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윤석열 당선자의 사면 건의는 몇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 사면을 할 경우 국민적 저항을 불러올 수 있다. 그러한 위험요소를 제거하기 위한 방편으로 문재인 대통령에게 건의해 미리 사면을 하려는 것이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상당수의 사람들이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반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문 대통령이 사면을 하게 되면 지지자들이 양분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윤석열 당선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숙제를 문재인 대통령을 통해서 해결하면서도 문 대통령의 지지자들을 양분시킬 수 있는 카드를 생각하면서 사면 건의를 하고 있는 셈이다.

윤석열 당선자는 대통령으로 임기를 시작한 후 언제든지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권을 행사하면 된다. 자신이 선거공약으로 내세운 약속을 스스로 해결하면 되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윤 당선자의 사면 건의를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이유다.

<위 글은 법률가의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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