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금융회사 직원에게 다른 사람의 은행 계좌번호 등 금융거래정보를 요구하는 것을 금지하고, 위반하면 형사처벌하는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금융실명법) 조항은 헌법에 위반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A씨는 2018년 한 은행원에게 B씨 명의 은행 계좌번호를 요구했다는 내용의 공소사실로 약식기소 되자 정식재판을 청구해 재판을 받고 있다.

금융실명법 제4조(금융거래의 비밀보장) 1항 등은 ‘누구든지 금융회사 등에 종사하는 자에게 거래정보 등 제공을 요구해선 안 된다. 이 규정을 위반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A씨는 재판 중 “이 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반돼 국민의 일반적 행동자유권뿐만 아니라 행복추구권과 알권리도 침해한다”며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이에 서울중앙지법은 A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했다.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소는 지난 2월 24일 재판관 8대 1의 의견으로 금융실명법 제4조 제1항 등에 대해 헌법에 위반된다는 위헌 결정을 했다.

헌재는 먼저 “심판대상조항은 금융거래정보 유출을 막음으로써 금융거래의 비밀을 보장하기 위해 명의인의 동의 없이 금융기관에게 금융거래정보를 요구하는 것을 금지하고 위반행위에 대해 형사처벌을 가하는 것으로 입법목적의 정당성과 수단의 적합성이 인정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헌재는 “금융거래의 역할이나 중요성에 비추어 볼 때 비밀을 보장할 필요성은 인정되나, 금융거래는 금융기관을 매개로 해서만 가능하므로 금융기관 및 종사자에 대해 정보의 제공 또는 누설에 대해 형사적 제재를 가하는 것만으로도 금융거래의 비밀은 보장될 수 있다”고 밝혔다.

헌재는 “심판대상조항은 금융거래정보의 제공요구행위 자체만으로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고 있으나 제공요구 행위에 사회적으로 비난받을 행위가 수반되지 않거나, 금융거래의 비밀 보장에 실질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 행위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봤다.

또한 “명의인의 동의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타인의 금융거래정보가 필요해 금융기관 종사자에게 제공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 등 금융거래정보 제공요구행위는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죄질과 책임을 달리한다”고 짚었다.

헌재는 “그럼에도 심판대상조항은 정보제공 요구의 사유나 경위, 행위 태양, 요구한 거래정보의 내용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금지하고, 위반 시 형사처벌을 하도록 하고 있다”며 “이는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최소침해성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금융거래의 비밀보장이 중요한 공익이라는 점은 인정할 수 있으나, 심판대상조항이 정보제공요구를 하게 된 사유나 행위의 태양, 요구한 거래정보의 내용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일반 국민들이 거래정보의 제공을 요구하는 것을 금지하고, 위반 시 형사처벌을 하는 것은 공익에 비해 지나치게 일반 국민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제한하는 것으로 법익의 균형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헌재는 그러면서 “심판대상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반해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하므로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시했다.

◆ 이선애 재판관 “금융거래 비밀보장 공익이 일반적 행동자유권 사익보다 커” 합헌

한편, 이선애 재판관은 헌재의 법정의견에 반대의견(합헌)을 냈다.

이선애 재판관은 “심판대상조항은 금융실명제의 실시와 관련한 금융거래의 비밀보장이라는 공익을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고, 이러한 공익은 타인의 금융거래에 관한 정보제공을 자유롭게 요구할 수 있는 일반적 행동자유권으로 인한 사익보다 크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며 “심판대상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반해 청구인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하지 않으므로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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