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손주를 자녀로 입양할 수 있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친생부모가 미성년 자녀를 양육하지 않아 조부모가 손자녀에 대한 입양허가를 청구하는 경우에도, 입양의 요건을 갖추고 입양이 자녀의 복리에 더 부합한다면 입양을 허가할 수 있음을 처음으로 밝힌 것이다.

대법원에 따르면 A씨는 고등학생 때 아이를 임신했고, 친생부와 혼인신고 후 아들을 출산했다. 그런데 친생부모는 출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혼했고, A씨가 아들의 친권ㆍ양육자로 지정됐다.

A씨는 아들이 생후 7개월 무렵 자신의 부모의 집에 아들을 두고 갔고, 그때부터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외손자인 B군을 키워 왔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B가 친생부모와 교류가 없고, 자신들을 부모로 알고 성장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B의 입양에 대한 허가를 청구했다. B군의 친생부모는 입양에 동의했다.

하지만 제1심(울산지방법원)은 C씨 부부(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입양허가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B의 친생모가 생존하고 있어, C씨 부부가 B를 입양하면 외조부모가 부모가 되고, 친생모는 어머니이자 누나가 되는 등 가족 내부 질서와 친족관계에 중대한 혼란이 초래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현재 상태에서 C씨 부부가 B를 양육하는데 어떠한 제약이나 어려움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장애가 있더라도 미성년후견을 통해 그 장애를 제거할 수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나아가 “장래에 B가 진실을 알게 돼 받을 충격 등을 고려하면, 신분관계를 숨기기보다 정확히 알리는 것이 B에게 이롭다고 볼 여지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입양을 통해 친생부모가 B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B의 복리를 위해 바람직하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이에 C씨 부부가 항고했다. 하지만 2심도 1심 결정을 인용하며 항고를 기각했다.

민법 제867조(미성년자의 입양에 대한 가정법원의 허가) ①미성년자를 입양하려는 사람은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②가정법원은 양자가 될 미성년자의 복리를 위하여 그 양육 상황, 입양의 동기, 양부모(養父母)의 양육능력, 그 밖의 사정을 고려하여 제1항에 따른 입양의 허가를 하지 아니할 수 있다.

사건은 대법원으로 올라갔고, 이 사건은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서 심리했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 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12월 23일 조부모인 원고들의 외손자 입양을 불허한 원심 결정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며 울산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전원합의체는 조부모가 손자녀를 입양하기 위한 허가를 청구하는 경우에 입양의 요건을 갖추고 입양이 자녀의 복리에 부합한다면 입양을 허가할 수 있고, 다만 양부모, 자녀, 친생부모 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해 입양이 자녀의 복리에 미칠 영향에 관해 세심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10명의 대법관들은 “조부모가 손자녀의 입양허가를 청구하는 경우, 입양의 요건을 갖추고 입양이 자녀의 복리에 부합한다면 입양을 허가할 수 있다”며 파기 이송했다.

대법원은 “가정법원이 미성년자의 입양을 허가할 것인지 판단할 때에는 ‘입양될 자녀의 복리에 적합한지’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미성년자에게 친생부모가 있는데도 그들이 자녀를 양육하지 않아 조부모가 손자녀의 입양허가를 청구하는 경우, 입양의 합의 등 입양의 요건을 갖추고 입양이 자녀의 복리에 부합한다면 입양을 허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민법은 존속을 제외하고는 혈족의 입양을 금지하고 있지 않다”며 “조부모가 손자녀를 입양해 부모ㆍ자녀 관계를 맺는 것이 입양의 의미와 본질에 부합하지 않거나 불가능하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조선시대에도 혈족을 입양하거나 외손자를 입양하는 예가 있었으므로 우리의 전통이나 관습에 배치된다고 할 수 없고, 비교법적으로 혈족의 입양을 허용하는 예가 많다”고 전했다.

대법원은 “다만 양부모될 사람과 자녀 사이에 조손관계가 존재하고 있고, 입양 후에도 양부모가 자녀의 친생부모라는 특수성이 있으므로, 법원은 이러한 사정이 자녀의 복리에 미칠 영향에 관해 세심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조부모가 단순한 양육을 넘어 양친자로서 신분적 생활관계를 형성하려는 실질적인 의사를 가지고 있는지, 입양의 주된 목적이 부모로서 자녀를 안정적ㆍ영속적으로 양육하고 보호하기 위한 것인지, 친생부모의 재혼이나 국적 취득, 그 밖의 다른 혜택을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닌지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법원은 가사조사나 상담 등을 통해 친생부모에게 관련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고, 친생부모가 자녀를 스스로 양육할 의사가 있다면 입양 동의를 철회하도록 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그 밖에 조부모가 양육능력이나 양부모로서의 적합성과 같은 일반적인 요건을 갖추는 것 외에도, 자녀와 조부모의 나이, 현재까지의 양육 상황, 입양에 이르게 된 경위, 친생부모의 생존 여부나 교류 관계 등에 비추어 조부모와 자녀 사이에 양친자관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될 것을 기대할 수 있는지를 살피고, 조부모의 입양이 자녀에게 도움이 되는 사항과 우려되는 사항을 비교ㆍ형량해 개별적ㆍ구체적인 사안에서 입양이 자녀의 복리에 적합한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그러면서 “이와 같은 구체적인 심리와 비교ㆍ형량의 과정 없이, 전통적인 가족공동체 질서의 관점에서 혈연으로 맺어진 친족관계를 변경시키는 것이 혼란을 초래하거나 자녀의 정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막연히 추단해 입양을 불허해서는 안 된다”며 “조부모가 부모ㆍ자녀 관계를 맺기 위해 입양을 청구하는 경우 후견제도의 존재를 이유로 입양을 불허할 것은 아니다”고 판단했다.

◆ 조재연 대법관, 민유숙 대법관, 이동원 대법관 반대의견

이들 대법관들은 먼저 “법률상 조부모가 미성년 손자녀를 입양할 수 있다는 점, 다만 조부모의 미성년 손자녀 입양은 이미 조손의 혈연관계가 존재하고 입양 후에도 양부모와 조부모의 친족관계가 병존하게 된다는 특수성이 있어 자녀의 복리에 미칠 영향에 관해 세심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는 점은 다수의견과 견해를 같이 한다”고 말했다.

세 대법관들은 “그러나 직계혈족인 조부모가 손자녀를 입양하는 것은, 혈연관계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법률에 따라 친자관계를 인정하는 법정친자관계의 기본적인 의미에 자연스럽게 부합하지 않는다”고 봤다.

대법관들은 “특히 조부모가 입양 사실을 비밀로 하고 친자녀인 것처럼 키우기 위해 입양을 하는 경우, 양부모로서 양육하기 위한 것이 아니어서 입양의 의사

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입양 사실을 숨기는 상황에서는 자연스러운 양친자 관계가 형성될 것을 기대하기 어렵고, 향후 자녀의 정체성 혼란을 야기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대법관들은 “조부모가 후견인으로 자녀를 양육하는 경우 친생부모가 다시 친권ㆍ양육권을 회복할 수 있다”며 “조부모는 친생부모의 자녀 양육을 지지하고 원조할 지위에 있는데도, 조부모가 입양을 통해 부모의 지위를 대체하고 친생부모의 지위를 영구적으로 박탈하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대법관들은 “이러한 점에 비추어 친생부모가 생존하고 있는 경우 조부모의 입양에 대한 허가는 엄격하게 이루어져야 하고, 우려가 모두 해소될 수 있음이 밝혀진 경우에만 허가할 수 있다”며 “가정법원은 후견적 입장에서 직권으로 제반 사정을 심리한 다음 자녀의 복리를 위해 입양허가 여부를 결정할 넓은 재량을 가진다”고 말했다.

◆ 이 사건의 결론 : 파기이송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사건본인(B)의 친생모가 생존하고 있다고 해서 재항고인(C씨 부부)들의 B 입양을 불허할 이유가 될 수 없고, 재항고인들의 입양으로 가족 내부 질서나 친족관계에 혼란이 초래될 수 있더라도, 이 사건의 구체적 사정에 비추어 입양이 B에게 더 이익이 된다면 입양을 허가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대법원은 “원심은 친생부모나 B에 대한 가사조사나 심문 등을 통해, 입양이 B에게 도움되는 점과 우려되는 점을 구체적으로 심리하고 이를 비교ㆍ형량해, 입양이 B의 복리에 더 이익이 되는지, 반하는지를 판단했어야 하는데, 이러한 점을 충분히 심리하지 않은 채 입양을 불허한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한편, 대법원 공보관실은 “이번 결정을 통해 미성년자에게 친생부모가 있는데도 그들이 자녀를 양육하지 않아 조부모가 손자녀에 대한 입양허가를 청구하는 경우에도, 입양의 요건을 갖추고 입양이 자녀의 복리에 더 부합한다면 입양을 허가할 수 있음을 처음으로 밝히고, 구체적인 사정에 대한 심리나 고려 없이 가족내부 질서나 정체성 혼란, 현재 양육에 지장이 없음만을 이유로 입양을 불허해서는 안 되고, 조부모 입양의 특수성을 고려해 입양허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기준과 고려 요소를 상세하게 제시했다”고 이번 판결에 의미를 부여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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