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영상녹화에 수록된 성폭력범죄 미성년 피해자 진술에 있어 원진술자에 대한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배제해 피고인의 방어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은 과잉금지원칙에 반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법정에서 피고인이 미성년 피해자를 증인으로 불러 질문할 반대신문권을 보장하지 않은 것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판단이다.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A씨는 위력으로 13세 미만 미성년자를 수차례 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 대구지방법원은 2018년 2월 A씨에게 유죄를 인정해 징역 6년을 선고했다.

그런데 A씨는 공판에서 영상녹화 CD에 수록된 성폭력범죄 피해자의 진술에 관해 증거부동의 했다. 그러나 1심은 조사 과정에 동석했던 신뢰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법정진술을 근거로 영상녹화에 수록된 피해자의 진술을 유죄 판결의 증거로 사용했다.

A씨는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으나, 항소심인 대구고등법원도 2018년 9월 A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영상녹화에 수록된 피해자의 진술을 유죄 판결을 증거로 사용했다. 1심과 2심은 피해자를 증인으로 소환해 신문하지는 않았다.

A씨는 상고하면서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21조의3 제4항,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30조 제6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했다.

대법원은 A씨의 상고를 기각해 징역 6년이 확정됐다. A씨는 위헌법률심판제청도 기각되자, 2018년 12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A씨는 “법원은 신뢰관계인 등 다른 사람의 진술에 따라 영상물에 수록된 미성년 피해자 진술의 증거능력을 인정해 유죄판결의 결정적인 증거로 사용했다”며 “이처럼 심판대상조항은 피고인이 자신에게 불리한 증인을 신문할 권리, 즉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박탈하는 것이므로 헌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헌법재판소는 23일 옛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 제30조 6항은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청구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며 재판관 6대3 의견으로 위헌 결정했다.

헌재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30조 제6항 중 ‘제1항에 따라 촬영한 영상물에 수록된 피해자의 진술은 공판준비기일 또는 공판기일에 조사 과정에 동석하였던 신뢰관계에 있는 사람 또는 진술조력인의 진술에 의하여 그 성립의 진정함이 인정된 경우에 증거로 할 수 있다’ 부분 가운데 19세 미만 성폭력범죄 피해자에 관한 부분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심판대상조항의 목적은 ‘미성년 피해자’가 증언과정에서 받을 수 있는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것으로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봤다.

그러나 헌법재판관 다수의견은 “성폭력범죄의 특성상 영상물에 수록된 미성년 피해자 진술이 사건의 핵심 증거인 경우가 적지 않고, 이러한 진술증거에 대한 탄핵의 필요성이 인정됨에도 심판대상조항은 그러한 주요 진술증거의 왜곡이나 오류를 탄핵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인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보장하지 않고 있으며, 이를 대체할 만한 수단도 마련하고 있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심판대상조항에 의해 피고인은 사건의 핵심적인 진술증거에 관해 충분히 탄핵할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유죄 판결을 받을 수 있게 되므로, 그로 인한 피고인의 방어권 제한의 정도는 매우 중대하다”고 밝혔다.

헌재는 “미성년 피해자에 대한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보장하면서도 증언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미성년 피해자의 2차 피해를 방지할 수 있는 조화적인 방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심판대상조항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헌재는 “미성년 피해자는 증언과정에서 고통스러운 범죄 경험에 대한 반복적 회상과 진술로 인해 2차 피해를 받을 수 있는데, 성폭력범죄 사건 수사의 초기단계에서부터 증거보전절차를 적극적으로 실시함으로써 피고인에게 반대신문 기회를 부여하면서도 미성년 피해자의 반복진술로 인한 2차 피해를 적절히 방지할 수 있다”고 했다.

즉 “미성년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사실과 피의자(피고인) 측의 반대신문 등에 관해 사건 초기에 ‘증언’함으로써 법원의 판단에 필요한 증거를 충분히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헌재는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보장하면서도 미성년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조화적인 방법을 상정할 수 있음에도, 영상물의 원진술자인 미성년 피해자에 대한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실질적으로 배제해 피고인의 방어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심판대상조항은 피해의 최소성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말했다.

헌재는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범죄의 피해자가 겪게 되는 심각한 피해를 고려할 때 신체적ㆍ정신적으로 성인에 비해 취약할 수 있는 미성년 피해자의 2차 피해를 방지하는 것이 중요한 공익에 해당함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헌재는 “그러나 심판대상조항으로 인해 피고인의 방어권이 제한되는 정도가 중대하고, 미성년 피해자의 2차 피해를 방지할 수 있는 여러 조화적인 대안들이 존재하는 점들을 고려할 때, 심판대상조항이 달성하려는 공익이 제한되는 피고인의 사익보다 우월하다고 쉽게 단정하기는 어렵다”며 “따라서 심판대상조항은 법익의 균형성 요건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심판대상조항은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청구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고 판시했다.

반면 이선애 재판관, 이영진 재판관, 이미선 재판관은 반대(합헌) 의견을 냈다.

이들 재판관은 “심판대상조항은 미성년 피해자가 법정 진술과정에서 받을 수 있는 심리적ㆍ정서적 충격 등 새로운 추가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입법목적이 정당하고, 원진술자인 미성년 피해자의 법정 진술 없이도 일정한 요건 하에 전문증거인 영상녹화물을 성폭력범죄의 본증으로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여 미성년 피해자의 법정에서의 조사와 신문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하므로, 입법목적 달성에 기여하는 적합한 수단”이라고 봤다.

세 재판관은 “미성년 피해자의 경우는 성년 피해자에 비해 법정 진술로 인해 2차 피해를 입을 우려는 훨씬 큰 반면, 실체진실의 발견에 대한 기여는 적을 수 있다”며 “미성년 피해자는 유도신문과 암시적 질문 등 부적절한 신문방법에 비해 기억과 진술이 왜곡될 가능성이 성인에 비해 크다”고 말했다.

또 “피고인이 친족 등 가까운 관계에 있는 경우, 피고인에 대한 이중적인 감정이나 주변인의 계속되는 회유와 압박 등으로 인해 법정에서 진술하는 미성년 피해자가 추가 피해를 입을 위험성도 크다”고 덧붙였다.

재판관들은 “이처럼 성폭력범죄의 미성년 피해자는 증언 시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심각한 심리적ㆍ정서적 충격이나 그로 인한 후유 장애를 입을 개연성이 있으므로, 미성년 피해자의 법정 증언을 일정한 요건 하에 최소화하는 등 미성년 피해자를 사법절차의 남용으로부터 특별히 보호할 필요성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밝혔다.

세 재판관은 “형사소송절차에서 피고인의 반대신문권 보장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구현하는데 중요한 요소임은 부인할 수 없다”면서 “그러나 헌법상 재판절차진술권의 주체인 형사피해자가 궁극적으로 그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형사소송절차 진행 도중 오히려 2차 피해를 입는 현상을 방지해야 할 공익 또한 매우 중대하다”고 봤다.

재판관들은 “이러한 공익의 중요성이 형사소송절차가 발전해온 과정에서 최근에서야 비로소 주목받게 되었음을 고려하면, 성폭력범죄에 관한 형사재판의 경우 피고인의 반대신문 절차에서 발생할 수 있는 2차 피해로부터 미성년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입법자가 마련한 장치가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내용인지에 대해서는 보다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심판대상조항이 보호하고자 하는 공익의 중대성에 비추어 볼 때, 심판대상조항이 전문법칙의 예외를 정하고 있다는 사정만으로 미성년 피해자의 보호만을 앞세워 피고인의 방어권을 사실상 무력화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는바, 위 조항은 피해의 최소성 및 법익의 균형성 요건을 갖추었다”고 판단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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