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암과 합병증으로 고통을 겪던 여성이 생전에 ‘언니에게 힘든 부탁을 했다. 언니도 피해자다’라는 유서를 작성해두고, 동거하는 언니에게 ‘수면제를 먹고 잠들면 죽여 달라’고 부탁한 촉탁살인 사건에서 법원은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

광주지방법원에 따르면 A씨(여)는 20년 전 직장에서 알게 된 B씨와 언니ㆍ동생으로 지내며 2011년부터 자신의 집에서 같이 살았다. B씨는 2014년 암 진단을 받은 후 합병증으로 고통을 겪어왔다.

2020년 12월 암과 합병증으로 고생하던 B씨는 “몸이 아파 살 수가 없으니, 제발 죽여 달라”고 A씨에게 부탁했다. 2021년 1월 A씨는 B씨의 부탁에 따라 수면제를 먹고 잠이 든 B씨의 목을 졸랐으나, B씨가 깨어나 그만두라고 해 멈췄다.

B씨는 암 진단을 받은 이후 경제적 어려움으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병세가 굉장히 악화돼 제대로 일어나 걷지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두 사람은 A씨가 노래방에 나가 번 수입으로 생활했으나, 코로나가 터진 이후에는 더욱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2021년 3월 대소변을 가리지 못할 정도로 건강상태가 악화된 B씨는 “아파서 고통스럽다”며 다시 “죽여 달라”고 부탁했다. A씨는 수면제를 먹으면 편하게 죽을 것 같다며 수면제를 먹고 잠이 든 B씨의 목을 졸라 사망하게 했다.

검찰은 “A씨가 오랜 기간 암과 합병증으로 고통을 받던 동거인인 피해자로부터 ‘죽여 달라’는 부탁을 받고, 한 차례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 뒤에 마침내 부탁에 따라 살해하기에 이르렀다”며 기소했다.

광주지법 제12형사부(재판장 노재호 부장판사)는 지난 10월 22일 촉탁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유죄를 인정해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사람의 생명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하고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다”며 “피고인의 범행은 비록 피해자의 부탁을 받고 저지른 것이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사람의 생명을 앗은 것으로서, 그에 따른 피해를 회복하는 것이 불가능한 중대한 범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가족이 아니고 피해자를 돌봐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장기간 같이 생활해 온 동거인으로서 피해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촉탁살인보다는 더 나은 방법을 찾아보려는 노력을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재판부는 다만 피고인에 대한 구체적인 형을 정함에 있어서 유리한 사정들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짚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범행을 할 무렵에는 피해자의 몸 상태가 심하게 나빠져 피해자 스스로 큰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던 것 같다”며 “피고인은 신체적 고통을 겪고 있던 피해자의 간절한 부탁을 받고 아픔을 줄여주려는 동기에서 각 범행에 이르렀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가족과 단절된 채 장기간 피고인에게만 의존하며 생활해왔던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인은 자신의 능력 범위 내에서는 피해자를 잘 돌보기 위해 애썼던 것 같고, 피해자로부터 간절한 부탁을 받은 사정을 빼면 피해자를 살해할 다른 동기도 찾을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두 사람은 피고인이 노래방 등에서 일한 수입으로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코로나 사태로 일자리가 없어져 범행 당시 1년 이상 경제적으로도 매우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며 “피고인이 피해자를 생전에 병원에 데려가지 않은 데에는 이러한 경제적 사정도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특히 재판부는 “피해자는 생전에 작성한 유서에서 ‘언니(피고인)에게 힘든 부탁을 했다. 언니도 피해자이다’라는 취지의 글을 적었다. 이로부터 추단되는 망자의 생전 의사는 피고인을 선처해 달라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며 “이러한 점은 피고인에 대한 양형에 유리하게 반영할 요소”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첫 번째 촉탁살인 범행은 피해자가 깨어나 ‘그만두라’고 하자 곧바로 멈춰 미수에 그쳤고, 두 번째 범행 후에 자수한 점, 이 사건 이전까지 아무런 범죄전력이 없는 초범이라는 점도 양형에 반영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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