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수석부장판사 출신인 김기영 헌법재판관이 ‘법관 임성근’ 탄핵심판 사건에서 파면 의견을 냈는데, 그가 결정문에 적시한 내용에 울림이 크다.

김기영 헌법재판관

김기영 재판관은 “임성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수석부장판사는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의 부당한 요구에 적극적으로 응하면서 재판의 구조와 외관을 공정하게 형성해야 할 최소한의 헌법적 요청도 무시했다”고 일갈했다.

김기영 재판관은 임성근 수석부장판사의 반복적인 재판개입 행위에 대해 “사법권 독립의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며, 위반의 정도는 헌법적으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것”이라고 엄중한 판정을 내렸다.

김기영 헌법재판관은 2008년 신영철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의 재판 관여 사건을 상기시키며 “만약 당시 사법부 내의 법관 독립 침해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반성적 고려가 있었다면, 법원의 수석부장판사로 부임한 임성근이 감히 법관들의 구체적인 재판에 개입하거나 관여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꼬집는 대목은 묵직하다.

28일 헌법재판소는 임성근 전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심판사건에서 “퇴직으로 법관직을 상실함에 따라 공직을 박탈하는 파면결정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재판관들의 다수의견에 따라 ‘각하’ 결정했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의 의견은 재판관 4인(이선애, 이은애, 이종석, 이영진)의 각하의견, 재판관 1인(이미선)의 각하의견, 재판관 1인(문형배)의 심판절차종료의견, 재판관 3인(유남석, 이석태, 김기영)의 인용(파면) 의견으로 나누어졌다. 9인의 관여 재판관 중 과반수인 5인의 재판관이 각하에 찬성해, 결국 법관 탄핵심판청구를 ‘각하’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헌법재판관 유남석, 이석태, 김기영 
헌법재판관 유남석, 이석태, 김기영 

그런데 임성근에 대한 인용의견 즉 파면의견을 낸 유남석 재판관, 이석태 재판관, 김기영 재판관이 결정문에 명시한 내용을 보면 사법부 특히 법관에 대한 울림이 컸다.

“재판의 독립을 위협함으로써 재판의 독립과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실추시킨 행위에 대해, 법관의 강력한 신분보장을 이유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탄핵심판에서까지 면죄부를 주게 된다면, 재판의 독립을 침해해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추락시킨 행위에 대해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을 그대로 용인하게 된다”

“사법부 내부로부터 발생한 재판의 독립 침해 문제가 탄핵소추의결에까지 이른 최초의 법관 탄핵 사건으로서, 헌법재판소가 헌법질서 내에서 재판 독립의 의의나 법관의 헌법적 책임 등을 규명하면,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법관의 재판상 독립침해 문제를 사전에 경고해 이를 미리 예방할 수 있다”

“임성근이 사법부 내의 사법행정체계를 이용해 구체적인 재판의 진행이나 판결의 내용에 개입한 것은, 재판의 독립과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훼손해 사법기능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한 것이므로, 헌법 위반이 중대하다”

이것은 임성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수석부장판사 재직 시절의 재판개입 행위에 대한 유남석 재판관, 이석태 재판관, 김기영 재판관의 주요 판단 내용이다.

이들 헌법재판관은 특히 임성근 수석부장판사의 재판개입 행위가 반복적 일상적이었다며, 중대한 헌법위반행위라고 판단하며 용인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고 결정문에 명시했다.

이와 함께 김기영 헌법재판관은 파면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을 따로 제시했는데, 이것 또한 울림이 크다.

이에 김기영 재판관의 보충의견의 주요부분을 전한다.

김기영 재판관은 “우리 헌정사에서 사법권 독립에 대한 헌법적 결단은 제헌헌법에서부터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며 “그러나 정부수립 전후의 전쟁과 분단, 이후 약 30년간 이어진 군사정부와 권위주의 체제를 거치면서 사법권 독립에 대한 위협은 심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권위주의 체제하에서의 정치권력과 사법행정권력의 친화성, 사법부의 권위적 위계구조와 내부 민주주의의 취약성으로 인해 정치권력과 법원 내부의 사법권 독립 침해에 대한 차이를 서로 구별하기 어렵게 되었다”고 말했다.

김기영 재판관은 “다행히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적 열망과 노력의 결실로 현행 헌법체제가 탄생했으나, 여전히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하는 법관인사제도의 위계 서열화에 따라 사법작용에 대한 사법행정의 우위 현상은 한층 심화됐다”고 진단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있는 서울법원종합청사 

수석부장판사를 지낸 김기영 재판관은 다음과 같이 사법부 과오를 상기시키며 꼬집었다.

“지난 2008년 (신영철)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의 재판 관여 사건과 그 이후의 진행경과를 보면 전국적으로 판사회의를 통한 명백한 재판권 침해라는 의견표명과 국회에서의 탄핵소추안 발의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어떠한 공적 확인과 해명은 이루어지지 못했고, 당사자 역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은 채 대법관 임기를 마무리했다.

만약 당시 사법부 내의 법관 독립 침해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반성적 고려가 있었다면, 그로부터 불과 몇 년이 지난 후 같은 법원의 수석부장판사로 부임한 임성근이 감히 법관들의 구체적인 재판에 개입하거나 관여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김기영 재판관은 “따라서 임성근의 임기만료에도 불구하고 심판의 이익이 있는지에 관하여는 ‘임기만료’라는 외견상의 현상과 결과만 놓고 보아서는 안 되며, 헌정사적 배경을 검토해야 한다”고 각하 결정한 헌재를 지적했다.

김기영 재판관은 “법관의 임기제와 연임제는 법관의 책임성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므로, 법관의 직무수행 과정에서 발생한 위헌 위법 행위에 대해 임기만료 이후에 법적 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오히려 법관의 임기제와 연임제의 취지에 부합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김기영 재판관은 그러면서 “이 사건에서 임성근은 형사수석부장판사의 지위에서 소속 법원 판사들의 재판에 개입한 것을 선배 법관의 조언이라 합리화하고 있는데, 이는 사법권의 독립에 관한 본질적 영역의 보호와 이를 침해하는 행위 사이의 규범적 경계가 설정돼 있지 않음을 반증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따라서 이 사건은 반드시 본안에 나아가 임성근의 행위가 갖는 헌법적 의미를 확인하고 해명해야 할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김기영 재판관은 “독립된 법원에 의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사법권 독립은 세계인권선언을 비롯해 각국의 헌법에서도 명문의 규정이나 일반원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며 “또한, 사법부 내부에서의 법관 독립의 중요성은 보편적으로 강조되고 있으며, 법관의 직무에 관한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판단 영역에 있어서 그 어떤 명목의 개입도 합리화될 수 없다는 것 또한 자명하다”고 말했다.

10월 28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 사진=헌재

특히 김기영 헌법재판관은 “임성근은 사법행정 담당자로서 소속 법원 법관들이 부당한 영향이나 간섭 없이 사실에 입각해 법에 따라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책무를 가지고 있음에도 이를 저버렸고, 오히려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의 부당한 요구에 적극적으로 응하면서 재판의 구조와 외관을 공정하게 형성해야 할 최소한의 헌법적 요청도 무시했다”고 질타했다.

김기영 재판관은 “이는 국제법규범의 영역에서 보편적으로 승인되고 있는 사법권 독립의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며, 각각의 행위태양뿐만 아니라 그러한 행위들이 반복된 경위와 내용에 비추어볼 때 그 위반의 정도는 헌법적으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것”이라고 엄격히 판단했다.

김기영 재판관은 “사법의 독립과 공정성은 재판의 구조와 외관에 있어서도 의심의 여지가 없어야 한다”며 “이는 사법권의 주체인 법관들과 사법행정권자의 지속적인 노력뿐만 아니라, 사법권의 독립을 침해한 위헌적 행위에 대한 확인과 그에 상응하는 법적 책임 추궁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기영 재판관은 “따라서 임성근의 행위가 우리 사법의 제도적 근간과 법의 지배에 바탕을 둔 법치주의를 훼손한 행위로서 반복되어서는 안 될 중대한 위헌적 행위란 점을 다시 확인하면서, 사법의 독립과 책임에 관해 이 사건 탄핵심판에서 담아내지 못한 제도적 한계에 대하여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이제부터라도 진지하게 시작되어야 함을 강조한다”고 결정문에 적시했다.

<김기영 헌법재판관 주요 약력>

1968년 홍성고와 서울대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제3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96년 인천지방법원 판사로 임관해 서울지방법원 북부지원 판사, 대전지법 서산지원 판사, 미국 듀크대학 교육파견, 논산지원 판사, 특허법원 판사, 서울중앙지법 판사, 서울대 대학원 박사, 광주지법 부장판사, 안산지원 부장판사, 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 및 수석부장판사 등을 역임했다.

김기영 헌법재판관은 2018년 10월 18일 헌법재판소 대강당에서 취임식을 갖고 6년 임기의 공식 직무를 시작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저작권자 © 로리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