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형법 제138조에 규정된 ‘법원’에는 헌법재판소도 포함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권영국 정의당 노동본부장
권영국 변호사

권영국 변호사는 2014년 12월 19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진행된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사건 선고공판에 참석했다.

당시 박한철 헌재소장이 통진당 해산 및 소속 국회의원들의 의원직 상실을 주문하자 권영국 변호사는 “오늘로써 헌법이 정치 자유와 민주주의를 파괴하였습니다. 민주주의를 살해한 날입니다. 역사적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역사적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라고 외쳤다.

검찰은 “권영국 변호사가 재판을 방해할 목적으로 헌법재판소장이 심판선고를 최종적으로 마치기 이전에 심판정 전체에 들릴 정도의 고성으로 소리쳐 법정에서 소동했다”며 기소했다.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등법원이 있는 서울법원종합청사

하지만 1심인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9단독 장두봉 판사는 2019년 8월 권영국 변호사의 법정소동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장두봉 판사는 “고성의 내용 등을 보면 재판을 방해할 목적 등이 있다고 볼 수 없고, 오히려 재판 결과에 대해 비판을 한 것으로 볼 수 있어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검찰이 항소했으나,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5-3부(재판장 이관형 부장판사)는 2020년 8월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며 권영국 변호사의 법정소동 혐의에 대해 1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형법 제138조의 ‘법원’에 헌법재판소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봐 1심 무죄 판결을 유지했다.

형법 제138조(법정 또는 국회회의장 모욕)는 “법원의 재판 또는 국회의 심의를 방해 또는 위협할 목적으로 법정이나 국회회의장 또는 그 부근에서 모욕 또는 소동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건은 검사의 상고로 대법원으로 올라갔는데, 대법원은 1심ㆍ2심과 달리 판단했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대법원 제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지난 8월 26이 권영국 변호사의 법정소동 무죄부분을 파기하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환송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법원’에 헌법재판소가 포함되는지 여부다. 2개월 지난 판결이나 그 중요성을 감안해 대법원의 판단을 자세히 짚어본다.

대법원 재판부는 “법원의 재판 또는 국회의 심의를 방해 또는 위협할 목적으로 법정이나 국회회의장 또는 그 부근에서 모욕 또는 소동한 자를 처벌하는 본조(형법 제138조)의 규정은, 법원 혹은 국회라는 국가기관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법원의 재판기능 및 국회의 심의기능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본조의 보호법익 및 입법취지에 비추어 볼 때 헌법재판소의 헌법재판기능을 본조의 적용대상에서 제외하는 해석이 입법의 의도라고는 보기 어렵다”과 봤다.

그 이유로 “본조 제정 당시 헌법재판소가 설치돼 있지 않았고, 오히려 당시 헌법재판의 핵심적 부분인 위헌법률심사 기능을 맡은 헌법위원회가 헌법상 법원의 장에 함께 규정돼 있었으며, 탄핵심판 기능을 맡은 탄핵재판소 역시 본조의 적용대상인 국회의 장에 함께 규정돼 있었다”며 “이는 본조의 적용대상으로 규정한 법원의 ‘재판기능’에 ‘헌법재판기능’이 포함된다고 보는 것이 입법취지나 문언의 통상적인 의미에 보다 충실한 해석임을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헌법재판소

재판부는 “본조 ‘법원의 재판’에서 ‘법원’은 실체법상 의미의 법원 또는 조직법상 의미의 법원이 아니라 소송법상 의미의 법원으로, 구체적인 사건에 대해 재판권을 행사해 공권적 법률판단을 하고 의사를 표현하는 주체로서의 재판기관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며 “헌법재판기능을 담당하는 재판기관으로서의 헌법재판소도 이러한 소송법상 의미의 법원에는 해당한다고 할 것이므로, 본조의 ‘법원’이라는 문언이 헌법재판에 관한 소송을 담당하는 헌법재판소를 적용대상에 포함시키는 데에 장애가 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헌법의 규정에 따라 광의의 재판기능의 각 일부를 나누어 담당하는 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헌법상 국가기관으로서의 기능의 동질성 측면에서 살펴보더라도 그러하다”며 “헌법재판소는 본질적으로 사법권 행사의 일환으로서 사법작용을 담당하는 사법기관의 일부”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정치적 성격이 강한 헌법재판에 관한 사법권 담당기관으로서의 헌법재판소를 규정해 형식상 별도의 국가기관으로 구별하고 있으나, 이는 광의의 사법기관 간의 권한 분장에 관한 헌법적 결단의 결과일 뿐, 그 때문에 사법기관으로서의 본질을 달리하게 된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또 “법관 및 헌법재판관의 자격이 유사하게 규정돼 있는 점도 이를 뒷받침하고, 다수결의 원리가 작동하거나 그에 의해 구성되는 입법부와 행정부와 달리 다수권력으로부터 독립해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소수자를 보호하고 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최후의 보루인 사법권의 본질적 기능을 나누어 담당하는 점에서 보더라도 그러하다”며 “이는 본조의 적용범위와 관련해 헌법재판소의 헌법재판기능과 달리 행정부 소속 심판원의 각종 심판기능을 배제할 수 있는 근거”라고 제시했다.

법정 안내판

이와 함께 재판부는 “본조 ‘법정’의 개념도 재판의 필요에 따라 법원 외의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재판의 공간이 이에 해당하는 것과 같이(법원조직법 제56조 제2항) 법원의 사법권 행사에 해당하는 재판작용이 이루어지는 상대적ㆍ기능적 공간 개념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으므로, 헌법재판소의 헌법재판이 법정이 아닌 심판정에서 이루어진다는 이유만으로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오히려 헌법재판소법에서 심판정을 ‘법정’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심판정에서의 심판 및 질서유지에 관해서는 법원조직법의 규정을 준용하는 것은(헌법재판소법 제35조) 법원의 법정에서의 재판작용 수행과 헌법재판소의 심판정에서의 헌법재판작용 수행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결국, 본조에서 법원의 재판에 헌법재판소의 심판이 포함된다고 보는 해석론은 문언이 가지는 가능한 의미의 범위 안에서 입법 취지와 목적 등을 고려해 문언의 논리적 의미를 분명히 밝히는 체계적 해석에 해당할 뿐, 피고인에게 불리한 확장해석이나 유추해석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그럼에도 원심은 본조의 법원에 헌법재판소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봐 법정소동 공소사실을 무죄로 인정했다”며 “이러한 원심판단에는 법정소동 등 죄에서 법원과 법정, 재판의 의미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판시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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